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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감정노동 - 감정노동의 주요 피해자가 여성인 이유-1

기획 [의료, 젠더를 말하다](4) 건강미디어l승인2019.01.13l수정2019.02.0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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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감정노동 - 감정노동의 주요 피해자가 여성인 이유(1)


 한인임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전국 네트워크 정책팀장

1. 감정노동의 사회적 문제

(1) 감정노동이란

국내에서 감정노동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드러나기 시작한지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다. 감정노동이라는 개념을 처음 쓴 사람은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Hochschild, Arlie Russell)였는데 1983년 「감정노동(The Managed Heart: Commercialization of Human Feeling Anniversary)」을 통해서였다. 이 책은 국내에 2009년 소개되었다. 나는 개인적 연구 경험(강원랜드 노동자 감정노동 실태 조사)을 통해 2009년 국내 노동자의 감정노동 사례를 최초로 접했다. 국내에서 감정노동 문제가 사회적 의제가 되는데 기폭제 역할을 했던 것은 2013년의 ‘라면 상무’ 사건이었다. 포스코의 상무가 항공기 내에서 컴플레인을 지속하다가 결국 승무원에게 라면을 수차례 다시 끓여 오라 시키고, 이를 던지고 폭행한 사건이었다. 그 이후 ‘땅콩 회항’, ‘빵 회장’사건 등으로 불리는 수 없이 많은 사건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우리나라에서는 감정노동 문제가 주로 ‘폭행형 갑질’로 묘사되고 있다. 폭력을 당하는 자가 수행하는 노동이 감정노동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 감정노동의 개념은 이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혹쉴드는 그의 저서에서 “소비자들이 우호적이고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외모와 표정을 유지하고 자신의 실제 감정을 억압하거나 실제 감정과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등 감정을 관리하는 노동”이라고 개념화하고 있다. 순수하게 ‘내 것’인 나의 감정을 관리해야 하는데 그 목적은 철저히 상업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매 맞고 욕 먹는 수준만이 아니라 요구되는, 또는 강제되는 감정에 대한 적극적 통제로부터 감정노동이 시작된다는 의미이다. 감정노동 중 극히 일부는 극한의 폭력 상황에 놓이기도 하는데 언론에 노출되는 것은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에 제한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실제 발생하고 있는 감정노동은 모든 고객 대면 노동자 또는 ‘익면성(匿面性)’을 가진 콜센터 등의 노동자가 보편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라 할 수 있다.

2018년 4월 기준 전체 취업자 수는 약 2천7백만 명에 이른다. 이 중 약 7백만 명은 자영업자로 대부분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약 2천만 명 노동자 중 최대 8백만 명 정도가 고객 대면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간단히 얘기하면 총취업자의 과반을 훌쩍 넘는 규모가 감정노동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감정노동은 모든 일하는 사람들의 문제라고 설명할 수 있다.  

(2) 감정노동이 사회에 던지는 문제

① 왜곡된 소비 의식의 주입

감정노동이 국내에 도입된 것은 ‘고객만족경영(CS운동)’이 신경영전략의 일환으로 1990년대 초반에 한국에 상륙하면서부터이다. 이미 신자유주의가 도래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1980년대부터 이러한 경영 전략을 마련하여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세계적 장기 불황이 문제가 되면서 신자유주의는 개별 기업의 경영 풍토를 바꾸기 시작했다. ‘다운사이징, 비용 절감, 자동화, 비정규직화, 성과임금제 확대 등’으로 형상화 된 신경영전략은 기업 간 경쟁 격화에서 생존하기 위한 방안으로 서비스 개선 전략을 설정하고 이 과업 중 하나로 ‘친절노동’을 도입하게 되었다. 이는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고객감동경영’, 더 나아가 ‘고객졸도경영’이라는 슬로건으로 전화되면서 노동자들에 대한 서비스 평가가 극에 달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중요한 점은 고객만족경영 전략은 당초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긍정적 경영 시그널을 가지고 있었고(만족도 향상을 통한 재구매율 확대, 고객 불만 흡수 등)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대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제품 혁신을 통한 아이폰의 폭발적 인기와 같은 것도 고객만족경영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달랐다. 제품 혁신, 고객 불만 흡수를 통한 경쟁력 강화보다는 인적 자원 활용 극대화를 통한 서비스 강화 전략으로의 선회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서비스 강화는 고객 대면 노동자들이 고객이 원하는 그 무엇도 다 들어주어야 하는 형태를 띠었다. 이는 사전적 고객 만족 교육에서 시작하여 사후적 평가 및 감시 시스템의 작동을 통해 이루어졌다. 

고객 만족 교육에서는 혹쉴드가 일갈했듯이 ‘고객을 가족 같은 마음으로 응대할 것’을 요구한다. 항공기 내에서 뛰는 아이들은 제지시킬 것이 아니라 내 어린 아이 돌보듯 응대할 것을 요구했고 술을 먹고 난동을 부리는 사람도 달래고 얼러 안정시킬 것을 당부했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의 경우 웃으며 친절하게 최대한 요구를 들어주라고 교육 받는다. 그러나 이런 것이 가능한 일인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스터리 쇼퍼’를 고용해 현장에 가짜 고객으로 파견한다. 노동자들에게 일부러 진상 짓을 하고 노동자의 반응을 살핀다. 여기에서 친절 매뉴얼대로 하지 않으면 인사상 불이익이 가해진다. 심지어 병원에는 ‘미스터리 페이션트’가 출몰한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고객의 집을 방문한 후 고객으로부터 사후 평가 점수를 받는다. 10점 만점에 10점을 받아야 한다. 9점이라는 우수한 점수를 받아도 안 된다. 10점이 안 되면 ‘롤 플레이’(고객을 방문했을 때부터 나올 때까지 응대하는 순서에 따라 역할극을 반복하는 행위를 말한다. 간부 사원들 앞에서 그들이 만족할 때까지 되풀이 하는 일종의 벌칙)를 해야 한다. 직원들은 이를 ‘인민재판’이라 부른다.  

이런 구조가 지난 수십년간 지속되어 왔다. 고객들의 반응은 어떻게 변했을까? 소위 ‘진상’ 고객이 크게 증가하였다.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전국 네트워크’에서 2014년부터 매년 조사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고객불만은 횡보상태이거나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고객들은 더 화를 내고 더 무리한 요구를 하고 홈페이지 게시판에 더 많은 컴플레인을 올리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그래도 되니까’ 또는 ‘그러면 뭔가가 생기니까’이다. 

이러한 비정상적 상태가 현재 한국사회의 모습이 되어 버렸다. 본인이 생산자의 위치에 섰을 때는 갑질 받을 준비를 하고 소비자의 입장에 섰을 때는 갑질 할 준비를 한다. 대한민국 성인 중 생산활동만 하거나 소비활동만 하는 계층은 별로 많지 않다. 대부분은 생산활동과 소비활동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이중적(?)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사회구조를 양산할 뿐이다. 고객으로부터 감정노동을 심하게 겪는 어떤 노동자 집단이 휴무일 때 자신과 동일한 업무를 하는 다른 매장(다른 회사) 노동자에게 똑같이 부당한 행위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는 얘기는 씁쓸한 한국의 초상을 보여준다.

② 피해노동자의 양산

역시 문제의 핵심은 감정노동자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감정노동노출은 여러 가지 부정적인 문제를 노동자들에게 가져다주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선, 정신적 스트레스로 질환에 시달리거나 극단적인 경우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정신건강 악화로 육체건강 손상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전반적인 저항력 저하로 기왕증의 악화나 각종 면역체계 약화가 발생한다. 스트레스 때문에 알콜이나 흡연, 약물 의존성이 높아지게 된다. 심지어 도박에 중독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조건에서 일에 집중하도 어렵다. 이직이나 직무 불만이 높아진다.

2016년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전국 네트워크’에서 금융 사업장, 우체국, 병원, 마트 및 백화점 노동자 2,73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감정노동 노출 수준(한국형 감정노동 평가도구, KOSHA GUIDE H-163-2014) 평가 결과는 다음과 같다. ‘고객 응대의 과부하 및 갈등’(힘든 고객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하의 정도와 고객 응대 시의 갈등이나 어려움 정도), ‘감정 부조화 및 손상’(노동자의 실제 감정과 직장에서 요구하는 감정 표현 규범의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적인 부조화나 고객 응대 과정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형태의 마음 손상 정도), ‘조직의 감시 및 모니터링’(감정노동 수행에 대한 회사 내 감시의 정도와 고객응대에 대한 평가가 승진이나 인사 고과에 반영되는 정도), ‘조직의 지지 및 보호 체계’(감정노동 수행 중 문제가 발생했을 때 노동자를 지원하는 체계가 있는지와 직장 동료의 지지 정도) 영역에서 약 50%의 감정노동자가 ‘위험’ 집단으로 나타나고 있다. 평가 도구의 설명에 따르면 이 50%의 노동자들은 감정노동으로 인해 심리적 문제나 생산성 저하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는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건강 악화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고용노동부에서도 인정하고 있듯이 기업에게도 생산성 저하라는 악재를 가져다주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들 노동자들이 가정에서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기대하기도 힘들다.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퇴근 후 가족과의 즐거운 만남이 어렵다는 것에는 ‘탈진’, ‘소진’이라는 복병이 존재하고 있다.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노동자들은 ‘다 타버리는 것 같다’는 호소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만났던 기업 관계자는 고객 컴플레인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 이를 대처하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감정노동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기업에서 컴플레인 처리로 소요되는 경영상의 비용 문제도 크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감정노동자 보호법 같은 게 생기면 좋겠다는 얘기를 한다. 기업이 만들어낸 경영 전략 때문에 나타난 문제를 이제는 기업도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에 처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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