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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거실로 출근시켜요"

『돌보는의료 사진이야기』, 방문의료연구회 건강미디어l승인2024.04.03l수정2024.04.1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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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의 오기와 함께 할머니를 살려낸 워커

급체를 한 이후 식사를 못하면서 3달 째 누워 지낸다는 80대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평소 거실 소파까지 걸어가 TV를 보고 식탁에서 식사하고, 화장실을 다니던 분이었다. 간단히 하지근력 검사를 해보니, 장기간 신체활동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누운 상태에서 다리를 들어 올릴 수 있고 저항을 주어도 버티는 힘이 느껴졌다. 보호자인 딸에게 워커보행을 시도해 보자고 했다. 

'제가 이대로는 못보내요'. 딸은 아픈 어머니를 돌보며 오기가 생겼다고 한다. 일부러 어머니가 원하는 것을 바로 안 들어드리고, 조금씩 어머니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었다.  '거실로 출근하세요. 주방 식당으로 점심하러 가세요'. 딸은 어머니에게 워커를 밀며 집안에서도 일정한 생활패턴을 갖도록 독려했다.

불과 1주일이 지난 두 번째 방문에서 놀라운 변화를 보았다. 할머니는 바닥 이부자리에서 천천히 스스로 일어나 워커를 붙잡고 거실 쇼파까지 걸어가신다. 혹시나 낙상할까봐 뒤에서 잘 살피면서 함께했다. 워커보행을 매일 하면서 밥을 잘 먹게 되었고, 다리 힘이 생기고, 허리가 펴지며, 소변 대변도 잘보게 되었다. 무표정하고 말이 거의 없던 분이 이제는 인사도 건넨다. 워커와 딸의 오기가 할머니를 살렸다.

할머니는 젊어서 강원도 화천에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 옷을 떼어다가 팔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팔 옷들을 잃어버릴까봐 소변을 장시간 참으면서 방광이 늘어나 소변 보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딸의 가슴에는 어머니의 고단했던 삶의 장면들이 가득 차 있다 ‘이대로는 못보내겠다’는 마음을 딸은 '오기'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배려'라고 부르고 싶다. 다만 그 배려가 착한 딸의 독박 돌봄으로 고립되지 않고, 방문의료와 이웃주민, 지역 복지서비스들의 돌봄관계가 촘촘히 연결되어가길 바란다. 이미 시작되었다. 1주일에 한번 작업치료사가 와서 방문재활 교육을 하고, 1달 2번은 재택의료센터 의사와 간호사가 와서 건강관리를 하고, 딸은 매일 거실로 출근시키고 있다. 

누군가의 배려는 우리 모두가 직면하게 될 고립된 노년기의 삶을 서로 돌봄의 관계망으로 이끄는 출발점이어야 한다. 

김종희 느티나무의원 재택의료센터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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