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르신댁의 장미꽃

나는 '애기가 된' 어르신을 돌보는 28년 경력의 보건소(보건진료소) 애기엄마다.

어르신은 주로 손주와 함께 산다. 
화물업에 종사하는 아들이자 삼촌은 어쩌다 집에 온다.
손주를 돌보던 어르신은 어느 날부터 시간을 놓치고 하루종일 학교 간 손주를 기다리더니 그후 길을 잃었다.
지금은 아주 가까운 사람만 기억을 한다.
아주 가까운 사람 중에 나는 '보건소 애기엄마'로 불린다.

버스 승강장에서 손주를 기다리는 어르신께
“뭐하세요?” 물으면,
“00이 기다리지! 곧 올거여. 근디 누구여?”

“저요? 장0 보건(진료)소장요!”
“가만히 보니 그렇고만, 우리 00이가 어릴 적 감기 걸려서 보건소 갔다가 다리 아프다고 하니 태워다 주고 그랬지!”

5살 때 손주를 업고 진료소에 오면 태워다 드렸고 7살 때였나 눈 오는 겨울날 긴 논길을 걸어서 진료소에 왔는데 손주도 아프고, 어르신도 삭신이 아프고 평야지대 겨울 바람은 무척이나 매서웠었다.

그때 집으로 가는 길을 차로 태워다 준 것을 잊지 않으시는거다.

5살 때까지는 손주를 업고 진료소에 오셨고,
7살 때에는 손 잡고 진료소에 오셨는데
지금은 기억을 잃어서 진료소에 혼자 오지 못하신다.

화물 운송업을 하는 아들은 어린 조카와 노모를 돌본다.
삶의 무게가 무거울 법도 한데 잘 버틴다.
“소장님, 어머니가 감기 걸린 것 같은데요.”  
“방문할께요”
“소장님, 제가 코로나19 걸렸는데, 어머니는 어떻게 검사하죠?” 
“제가 방문해서 검사할께요.”

“소장님, 어머니가 요양원 입소할지 모르는데, PCR검사 해야 된다는데, 어떻게 하죠?”

해드릴 수 있는데, 긴 시간을 지역에서 함께한 어르신에게 보건의료기관에서 해드리는 마지막 서비스가 PCR검사는 아니었으면 한다.

아직까지는 집에 계신다.

오늘도 버스 승강장에 앉아 계신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누구시더라? 아 보건소 애기엄마고만”
“보건소에서 나온 파스 한 장 드릴께요. 아픈 곳에 붙이세요”
“고마워서 이 은공을 어찌 갚는디야, 내일 들려, 양파라도 줄게. 그냥 받을 수 있간디!”

치매를 앓고 있어서 독립성은 없지만,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지금처럼 지역에서 오래오래 계셨으면 좋겠다.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데, 초고령화된 지역속에서 살아보니 노인 한 명을 돌보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
 
“보건소 애기 엄마네!”
 
애기 엄마면 어때요?
지역에 애기 엄마가 많았으면 좋겠다.
보건소 애기 엄마한테는 대문도 활짝 열어주고 처마에 걸어 놓은 양파를 스스럼없어 걷어서 가져가라고 한다.

어르신댁 마당에 핀 한송이 붉은 장미처럼 치열하게 살았을 어르신 삶의 향기가 지역에 오래도록 남았으면 한다.

조정희 김제시보건소

방문의료연구회 가입안내는 아래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http://bit.ly/방문의료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