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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지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기 위해

건강미디어l승인2022.02.05l수정2022.04.1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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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훈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기획운영위원)

 

왜 다시 임신중지인가
 

2022년 셰어에서 전하는 첫 이야기를 임신중지로 시작하려 한다. 왜 다시 임신중지인가. 낙태죄가 폐지되고 2년차를 맞이하는 지금, 임신중지가 필요한 사람들의 상황이 실제로 그다지 변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에 비해 숫자로 나타나거나 눈에 띄지는 않지만 마음속에는 전과 다른 안도감이 생겨났다. 똑같은 의료행위를 하더라도 법적 처벌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면서 심리적 부담감을 덜어주는 효과는 막연히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임신중지를 필수 의료서비스로 인식하는 의료인이라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환자분이 하려는 것은 스스로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일 뿐이며, 다른 의료행위와 마찬가지로 과학적이고 근거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이 행위가 당신의 건강에 미칠 영향이나 방법 등에 대해 이해하고 스스로 결정을 한 것이라면 정당하게 행해질 수 있다’고.


어떤 의료행위 전에 환자가 가진 부담감이나 죄책감을 덜어주기부터 해야 하는 의료서비스가 얼마나 될까. ‘낙태’나 ‘아이를 지운다’는 말처럼 낙인찍힌 표현을 환자 스스로 자연스럽게 뱉어내는 임신중지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임신은 흔히 질병으로 분류되는 다른 진단명들과는 분명 다르다. 임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나의 현재 상황과 미래의 계획 모두가 바뀔 수 있다는,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 하에 일어나는 격렬한 감정의 요동은 몸의 변화를 알아채기도 전에 먼저 올 수 있다. 여기서 ‘이성적’이라는 말에 주목해 본다. 임신을 기대했던 상황이 아니라면 이 갑작스런 사실을 받아들이는 나의 감정을 들여다볼 여유가 별로 없다. 최대한 감정을 걷어내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누구도 ‘무분별한’ 판단을 하지 않는다.[1] 어떤 정보라도 찾기 위해 검색페이지에 처음 입력하는 단어는 아직도 ‘낙태’이다. 서비스의 질은 고사하고 일단 시술만이라도 가능한 병원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과 품을 들여야 하고, 병원에 따라 가능한 방법이나 비용도 다르니 선택의 폭도 좁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훈계를 듣게 되거나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임신중지를 필요로 하는 모두가 이런 시나리오대로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겐 답이 명확한 결정일 수 있고 파트너나 지인들의 충분한 지지를 받으면서 의료진에게 당당하게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다. 같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경험들에 차이가 있으며, 어떻게 하면 차이를 비등하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떤 질환에 대한 진단이나 치료 과정이 환자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듯이 임신중지도 그렇게 될 수는 없을까.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할 테지만, 의료서비스를 건강보험에 적용하는 것은 그 차이를 좁혀 불평등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라 할 수 있다.

 

건강보험 적용을 이야기하는 이유

▲ 사진 출처: https://unsplash.com/

정부가 임신중지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은 소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결정을 유보할 때, 이것이 매우 의도적으로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는 태도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2] 건강할 수 있는 권리 앞에서 누구와의 합의가 더 필요하다는 것인가. 재생산의 무게가 개인의 삶을 삼켜버릴 만큼 버거워진 시대에 출생 조건이 삶의 불평등으로 직결되는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국가적 위기로 규정한 ‘저출산’의 사회적 책임을 손쉽게 일부 여성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부정의하다. 민주당 대선 후보 측에서는 ‘성·재생산 권리 보장을 위한 기본법’ 제정을 공약으로 밝혔으나, 이것이 단지 표심을 위한 허울에 불과해선 안 된다. 기본법이 제시하는 방향이 누구도 차별 없이 성·재생산 건강 전반에 있어 얽혀있는 권리들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다른 영역보다도 접근성이 낮은 피임과 임신중지의 건강보험에 관한 실질적인 논의가 함께 있어야 한다.

임신중지뿐 아니라 피임에 대한 투자로 인해 생기는 사회경제적 이득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져 있다.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 증진을 위한 비영리 정책 연구 기관인 구트마허 연구소에 따르면, 저소득 및 중간소득 국가에서 일인당 매년 10.6달러를 투자하면 피임뿐 아니라 산모 및 신생아, 임신중지 및 사후 관리를 포함한 임신 관련 관리, 성매개감염 치료까지 성·재생산 건강 서비스의 전반적인 제공이 모든 여성에게 가능해진다. 특히 피임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데 1달러를 추가로 투자할 때 임신 관련 및 신생아 치료에 3달러가 절약되고, 이는 피임에 대한 투자가 함께 이루어질 때 연간 110억 달러의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7,600만 건의 의도하지 않은 임신, 2,600만 건의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 186,000건의 산모 사망, 170만 건의 신생아 사망을 감소시킬 수 있다.[3]

피임과 임신중지를 건강보험에 적용시킬 때, 단순하게는 환자에게 부담했던 비용 일부를 건강보험으로 전환하는 정도의 경제적 이해관계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서비스 제공자의 입장에서 임신중지에 대한 오래된 심리적 저항을 고려했을 때 적정한 보험 수가를 제시함으로써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유인하는 것이 현재 건강보험 적용 여부의 논의 시점에서 유리한 전략일 수도 있다. 하지만 향후 생길 수 있는 이득은 경제적 효과를 넘어서 더 큰 사회적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이 중요하다.

 

반차별의 원칙에서, 필수 의료서비스로

건강보험 적용은 국가가 어떤 서비스를 건강의 측면에서 꼭 필요한 것으로 인정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낙태죄가 폐지되고 나서야 임신중지 상담을 할 때, 비록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임신중지가 더 이상 불법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스스로의 건강과 직결된 권리의 행사임을 강조할 수가 있었다. 이에 더해 임신중지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게 되면, 공식적으로 국가가 이를 필수 의료서비스로서 가시화하게 됨으로써 의료인들이 임신중지에 대한 오래된 심리적 낙인을 제거하고 정당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다.

나아가 반차별의 원칙에서 임신중지가 개인의 상황이나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권리로서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든 임신중지를 하려는 결정을 내렸다면 적어도 비용의 문제로 자신의 권리 행사를 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시간이 지연이 되면 임신주수가 지난 만큼 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신체적, 심리적인 부담도 함께 가중된다. 결정을 하고서도 어쩔 수 없이 비용이 마련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경제적인 의존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임신중지에 대한 정보를 누군가에게 알려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프라이버시도 침해받을 수 있다.[4]

피임과 임신중지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될 때 경제적 효과뿐 아니라 개인의 건강과 권리의 측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효과는 분명하다. 정부의 건강보험에 대한 입장은 일터나 학교와 같은 일상에서도 임신중지 서비스를 권리로서 제도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임신중지 역시 출산 관련 제도처럼 휴가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비밀보장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그 권리가 지켜져야 한다.

특히 병원, 대학과 같은 공적 기관에서 임신중지가 필수 의료서비스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교육 과정에서 임신중지가 반드시 필요한 의료서비스라는 기본 전제가 있으면 기술적 측면뿐만 아니라 상담의 기본적인 원칙과 태도에 대한 연구과제나 가이드를 만드는 과정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사회적 시선의 부담이 큰 의료인들이 임신중지를 필수 서비스로 인식하게 되어 상담에 있어서도 질적인 변화를 가져 올 것이다. 더불어 건강보험 적용은 피임과 임신중지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고 성·재생산 건강에 관한 국가적인 통계 자료를 통합적으로 수집하여 향후 정책 방향을 만드는 데에 필수적이다.

따라서 임신중지 건강보험에 관한 논의가 각계의 입장을 무책임하게 기계적으로 취합하거나 단순하게 방법이나 시기에만 초점을 두고 보험수가를 결정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 임신중지가 필요한 사람이 누구냐에 상관없이 불필요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똑같은 양질의 상담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임신중지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의료서비스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이 권리의 이름으로 건강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들,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들로 논의의 장을 계속해서 풍부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1] 2020년 10월 대한산부인과의사회를 비롯한 관련 학회가 낙태법특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짧은 입장문에서는 '무분별한 낙태'라는 용어를 반복해서 사용하였다.
[2] 2021년 1월 14일 권인숙 의원은 임신중지에 대한 보험급여 실시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하였다. 이에 대해 건강보험의 급여 기준을 심의·의결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보건복지부장관 소속)에서는 임신중지의 건강보험에 대해서 '모자보건법령 개정을 통해 허용되는 낙태의 범위가 정해진 후' '급여 우선순위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2021년 8월부터 수술에 대한 교육·상담료만 신설한 상황이다.
[3] Adding It Up: Investing in 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 2019, Guttmacher Institute, 2020
[4] 2021년 10월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발표한 <임신중지 경험 설문·실태조사 및 심층인터뷰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임신중지 결정에 시간이 소요된 이유로 비용 문제가 의료기관이나 약물 정보를 찾기 어려웠다는 답과 함께 가장 많았으며, 임신중지 당시 비용 부담이 어려웠다고 답한 31.8%가 가족, 지인 또는 지원기관 등의 도움을 받았다. 파트너와 비용을 분담한 사례 중에는 이것을 약점 삼아 여성이 협박당하거나 파트너와의 갈등요인으로 작용한 경우도 다수 확인되었다. 미국에서 10여년에 걸쳐 진행한 ‘턴어웨이turnaway 연구’는 임신중지를 한 여성과 원하지만 할 수 없던 여성을 비교하여 임신중지가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한 첫 번째 연구로, 연구 설계 과정부터 통계학, 사회학, 경제학, 심리학, 보건학 등 다학제간 협업을 통해 임신중지 경험에 대한 연구 중에서도 가장 엄밀한 연구 결과를 보여준다. 이 연구에서 임신중지 시기가 늦어지는 가장 흔한 이유는 임신중지 비용 마련을 위한 경제적인 이유로, 교통비, 숙박비, 아이 돌봄 비용, 일을 하지 못한 기간동안 삭감됨 임금 등을 포함하면 비용은 더욱 높아진다. 임신1분기 여성의 1/3 이상, 2분기 여성의 1/2 이상은 임신중지 자기 부담 비용이 월 소득의 1/3을 넘었다. 가족, 파트너, 친구 등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임신중지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임신중지 결정부터 시술까지 한달 이상을 기다려야 했고, 기금을 지원받고도 충분치 않아 별로 친하지 않은 친척에게 임신 사실을 알려야 하는 상황 등을 사례로 보여주고 있다. (<턴어웨이 : 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여자들>, 다이애나 그린 포스터, 도서출판 동녘, 2021)
최예훈 (산부인과 전문의,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기획운영위원)
이 글은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의 이슈페이퍼와 기사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습니다.(셰어 홈페이지 http://srh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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