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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 통한 억압적 노무관계, 안전을 위협하다

[기획/ 열차 운전실 감시카메라 설치 반대1] 건강미디어l승인2020.03.25l수정2020.05.2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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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으로 이루어진 '4차 산업혁명'은 기존에 불가능했던 영역을 가능하게 한다. 대표적으로 원격제어기술의 보편화, 인공지능의 극대화와 같은 것이다. 노동자의 안전보건 향상을 위해 일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은 이러한 기술의 발전이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활용되길 간곡히 바란다.

반면 인권 감수성 역시 과학기술의 발전과 끊임없이 갈등을 겪으며 변화했다. 사람이 사람을 직접 감시하던 체계에서 정보통신의 발달은 '빅브라더(big brother)'를 탄생시켰다. 노동자들은 자유로운 삶을 억압하는 체계를 인권 감수성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 근로기준법이 개정되어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만들어졌다. 국제기구 등은 노동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규제를 만들었다. 유엔(UN)이 제시한 '전자화된 개인정보의 규율에 관한 지침'(1990), 국제노동기구(ILO)의 '노동자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행동준칙'(1996), 경제력개발기구(OECD)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개인 데이터의 국제 유통에 관한 가이드라인'(1980),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1988) 등이 그것이다.
  

CCTV 설치가 사고 원인을 밝히는 것과 무관한 이유

2018년 12월,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공사는 KTX 강릉선 탈선사고를 포함해 11월 한 달 동안 발생한 8건의 철도 사고에 대해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관계기관 및 전문가 의견수렴을 거쳐 2019년 9월 10일 '철도안전 관리실태'라는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감시카메라 설치'를 요구했다. 감시카메라가 없어 '운전자의 과실 여부 등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런 주장의 뒤에는 2014년 7월 22일 발생한 태백선(문곡~태백역) 열차 충돌 후 탈선 사고에 대한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사고조사보고서가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해당 보고서는 휴대폰 데이터 사용내역에 의존해 기관사가 SNS를 하다가 사고를 냈다고 봤다. 

그러나 감사원의 조사 발표 3개월 후인 2019년 12월 23일,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KTX 강릉선 탈선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시공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앞서의 감사원 요구 사항과는 동떨어진 결과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2020년 2월, 감사원의 지적에 따라 국철도안전법 시행규칙에서 감시카메라 설치의 예외를 인정한 조항을 삭제하겠다는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건강과 안전보다 감시와 통제가 더 끌리는 사회

'빅브라더(big brother)'가 그렇듯이, 국토부나 감시카메라 설치를 입법화한 국회는 감시와 통제에 더 끌리는 듯하다. 그러나 노동자 감시는 노동자 건강과 시민 안전을 해친다.

2005년 5월,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조 조합원 13명이 '우울증을 수반한 만성 적응장애'란 진단을 받았다. 원인은 사측의 조직적인 감시 때문이었고 그 주요 수단 중 하나는 CCTV였다. 2009년~2013년 5년간 국내 7개 은행에서 병을 얻어 사망하거나 자살하는 등 사망을 이유로 퇴직한 직원이 168명에 달했는데 국내 은행 영업점에 설치된 CCTV 모니터가 대부분 지점장이 근무하는 지점장실에 설치돼 있었다.

2013년 3월, 해조류 가공식품 업체에서 일하던 박씨는 해고 통보를 받고 자살을 택했다. 해고 사유는 회사가 CCTV로 직원들의 근무를 관리하자 이에 반발했기 때문이다. 2015년 5월 이지테크 노조위원장이었던 양우권씨는 회사의 CCTV 감시에 "미치겠다"는 유서를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관사들의 죽음, 그 배경엔 '억압적 노무관리'가 있었다
  
업무 중 실시간 감시당하게 된다는 것은 정신적 긴장을 한층 높이는 행위일 가능성이 크다. 기관사가 SNS를 하느라 사고를 낼 가능성보다는 감시와 처벌에 괴로워하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기 때문에 사고를 만들 가능성이 더 클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십수 년 동안 기관사들의 자살에는 핵심적으로 '억압적 노무관리'가 배경이었다는 선행연구가 매우 많았다. 즉, 기관사 업무의 특성상 사고가 발생할 경우 항상 최우선 조사의 대상이 된다는 점, 시간 엄수에 대한 압박이 커 항상 긴장 상태에 있다는 점, 협소한 공간에서 터널을 계속 응시해야 한다는 점, 2~3분 단위로 역에 정차하고 발차하는 긴장 상황을 반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점 등은 정신적 부하를 강하게 주는 업무 조건이다. 여기에 더해 개개인의 업무스케줄이나 휴가까지도 노무관리 과정에서 통제된 문제 때문에 기관사들의 정신건강은 매우 나빠졌다.

그런데 이에 더해 업무 중 실시간 감시당하게 된다는 것은 정신적 긴장을 한층 높이는 행위일 가능성이 크다. 기관사가 SNS를 하느라 사고를 낼 가능성보다는 감시와 처벌에 괴로워하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기 때문에 사고를 만들 가능성이 더 클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 2019년 12월 전국의 철도·지하철 기관사 4533명이 응답한 설문조사에서 운전할 때 감시카메라가 신경 쓰이는지를 묻는 질문에 98% 이르는 노동자들이 신경 쓰인다고 응답했다. '사생활 침해다. 인권 문제다', '업무에 집중할 수 없다',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쁘다',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할 수 있어 오히려 안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답했다. 또한 운전실 내 감시카메라 설치는 '안전 운행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응답에는 2.5%만 동의했다. '기관사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응답한 기관사는 97.8%가 동의한 것으로 나타난다.
  
전국 기관사들의 의견 귀 기울여야 
   
전국 대다수의 기관사들이 운전실 감시카메라 설치를 반대한다면 귀 기울여야 할 내용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국민 100%가 반대한다면 현 정부는 어떤 정책이든 밀어붙일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철도의 사고율은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에 속한다. 아주 가끔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사고조사 결과에서 기관사 과실로 나타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기관사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물론 과도하게 많이, 아주 잘 밝혀내고 있다. 그런데 0.1%도 되지 않는 문제를 사후적으로 찾아내기 위해 100%의 기관사를 감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운전실은 간이 변기를 들고 타는 공간이다. 여성 기관사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이는 관련 현행법은 물론 헌법에도 저촉되는 사안이다.

누군가 이야길 하면 들어야 한다. 특히 핵심적인 이해당사자는 최우선 경청 대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입법예고 전에 단 한 차례도 이해당사자인 기관사들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 인권 감수성이 나날이 높아지는 이 시기에 군사정권에서나 할 법한 일을 진행하고자 하는 감사원, 국토교통부는 역사를 퇴행시킨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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