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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은 정치적이다

백재중l승인2020.02.10l수정2020.04.02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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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의 종류는 다양하다.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에서 2015년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메르스, 지금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까지. 그 외에도 콜레라, 천연두, 결핵, 에이즈 등 수많은 전염병이 인류의 역사에 등장한다. 이들 전염병들은 특정한 시기에 또는 지속적으로 상당한 사회적 영향, 정치적 파급 효과를 일으키곤 했다.  

전염병이 종류가 많은 만큼 그 전염병 하나하나의 특성이 모두 차이가 있다.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사라지는 전염병이 있는가 하면 수 년씩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숨어 지내는 전염병도 있다. 중세 유럽의 페스트, 19세기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콜레라, 1918년 전 세계를 뒤흔든 스페인 독감이 전자에 해당된다면 조용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전파되는 에이즈는 후자에 해당된다.  

페스트는 중세 유럽을 파멸로 이끌었다. 페스트로 인해 유럽에서 중세를 지탱할 수 있는 기반이 흔들리고 중세라는 대단원은 막을 내린다. 이것은 그 어떤 사건보다도 정치적 사건이다. 짧은 시간에 폭발적인 대유행을 보이는 전염병일수록 정치적 영향은 바로 나타난다. 전염병의 유행으로 대중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주변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려 고통 받거나 죽는 걸 목격함으로써 불안과 공포가 시작되고 유행이 진행될수록 극대화된다. 

에이즈는 페스트처럼 감염 후 바로 증상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장기간에 걸쳐 다른 사람을 전염시킨다. 수년 간 자신이 질병에 걸렸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그 사회 저변에 퍼지며 사회의 토대를 흔들 수 있다. 지금은 치료 약제 개발로 만성 질환이 되었지만 약을 구하기 어려운 가난한 나라에서는 여전히 재앙이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이 에이즈로 인해 사회 붕괴를 경험하고 있다. 단지 이 전염병 하나로 국민의 평균 수명이 반 토막 난 국가도 있다. 

수많은 전염병은 위의 극단적 두 가지 유형 어딘가에 위치한다. 콜레라, 인플루엔자, 메르스 등과 같은 전염병이 비교적 짧은 시간에 폭발했다가 잠잠해진다. 결핵은 폭발적인 전염력은 약하나 그래도 꾸준하게 서서히 전파되는 특성이 있어 쉽게 뿌리를 제거하기 어려운 특성을 보인다.

전염병과 국가의 관계는 다른 질병의 경우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개인의 질병에서 국가의 역할 또는 책임이 잘 드러나지도 않을뿐더러 국가를 들먹이는 것도 적절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나 메르스, 신종코로나 같은 전염병이 돌 때면 국가는 싫든 좋든 불려 나온다. 국가의 역할을 얘기하고 국가의 책임을 추궁한다. 전염병은 수많은 질병 중의 하나가 아니고 국가적 재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푸코가 말한 생명권력의 두 가지 형태 즉 개인 신체의 훈육과 인구 조절·통제 중 전염병은 후자의 영역에서 중요한 위험 요인 중 하나이다. 전체적인 인구 집단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권력은 인구 집단을 기아와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전염병에 대한 효과적 대응에 실패하면 생명권력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게 된다. 

전염병은 심리적 재난을 동반한다

전염병은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전파된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자기방어를 위해 전염병 환자를 기피하게 된다. 전염병이 확산되면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게 된다. 영화관, 놀이공원 등이 한산해지고 휴업을 하는 학교가 늘어나게 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해체되고 사람들은 고립된다. 

메르스가 진정 단계에 들어갈 무렵, 노량진 근처 유명한 횟집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메르스가 한참 유행할 무렵, 잡혀 있던 회식 예약들이 취소되고 손님들의 방문도 거의 끊겨 그달 매상이 평소 20% 수준에 그쳤다고 한다. 노량진 횟집이 메르스와 직접 관계가 없었음에도 사람들은 만나는 자체, 모임 자체를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염병 발생 지역 또는 장소는 불온한 장소로 기피의 대상이 된다. 전염병 환자가 다녀간 병원에서는 환자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간다. 메르스 유행 당시 한국 자체가 기피의 대상이 되어 중국 여행객들의 한국 방문이 대거 취소되고 여행업은 직격탄을 맞는다. 지금은 반대로 중국이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염병이 유행하면 개인들의 방어 심리는 과도하게 작동하여 전염병 환자나 의심스런 사람들, 공간에 대해 경계심을 드러낸다. 때로는 의심스러운 사람들에게 공격성을 보이기도 한다. 대유행으로 진행되면서 주변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불안을 넘어 공포에 휩싸인다. 

다른 사람에게 전염병을 옮기는 사람은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자기 관리를 하여 자신도 보호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심리가 발동한다. 환자를 접촉하여 격리 대상자가 된 사람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의 비난을 받곤 했다.

전염병 환자는 환자대로 심리적 고통을 경험한다. 병의 치료 과정에서 격리 조치를 당하게 되고 미래에 대해 불안감에 휩싸이며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 심지어 가족들의 눈치도 살펴야 한다. 전염병의 대유행기에는 모두가 ‘심리적 재난 상태’에 빠지게 된다. 

전염병 환자라는 낙인

전염병 환자는 기피의 대상이다. 한센병이 대표적이다. 문둥이라 불리며 천시를 받았고 전염력이 소실되어도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살아가기가 어려웠다.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사회 밖으로 떠밀려 나갔다. 일제강점기에는 국가에 의해 소록도라는 공간에 갇히게 된다. 전염병에 걸리는 것 자체가 범죄였으며 이에 대한 대가는 감금이었다. 국가는 사람들의 기피 심리, 불안 심리를 이용하여 환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한다. 격리의 정치는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결핵 환자도 기피의 대상이다. 사회로부터 외면 받고 가족들도 꺼려한다. 가족이 직접 돌보기 어려운 경우 간병인을 고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결핵 환자는 간병인들도 꺼려한다. 병실에서 한 환자가 기침하면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은 혹시나 하고 불편해 한다. 

에이즈 환자들도 기피의 대상이 되기 마찬가지이다. 한센병 환자들은 외모로 나타나고 결핵 환자들은 기침이라도 하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만 에이즈 환자들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에이즈 환자들은 철저하게 자신을 숨긴다. 에이즈 환자라고 밝히면 의사들도 꺼려하고 진료를 거부하기도 한다. 에이즈 환자는 동성애자라는 공격이 이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만든다. 

메르스 유행 당시 한 환자는 평택의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상태가 악화되자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여 119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실려 간다. 응급실에 있는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병을 옮기고 결과적으로 메르스를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단초를 제공한다. 환자가 잘못한 게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많은 사람이 이 환자에 대해 원망하거나 불만을 드러내곤 했다. 

전염병 환자의 죽음은 비참하다. 조선 시대 역병이 돌면 환자를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초막에서 혼자 기거하게 했다. 다행히 회복되어 살아 돌아오거나 아니면 초막에서 죽어가야 했다. 죽은 다음에도 가족들마저 두려워 시신 가까이 접근하지를 못했다고 한다.

메르스 환자의 죽음에서 우리는 똑같은 비극을 경험했다. 메르스 환자 시신은 사망과 더불어 특수 포장하고 24시간 내 화장을 해야 했다. 시신을 다듬고 염을 하는 절차는 생략되고 유족을 위로하고 같이 슬퍼할 시간도 단축된다. 땅에 묻힐 자유도 박탈당한 채 무조건 화장당해야만 한다. 환자를 접촉했던 가족들은 격리 대상자여서 장례식에 참석 할 수 없는 경우들도 많았다. 

격리, 배제의 정치가 작동한다

전염병 환자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기피하고 비난하게 되는 심리는 결국 이들 환자들을 격리하고 배제하는 정책을 정당화한다. 조선 시대에 역병이 돌면 환자들을 멀리 떨어진 초막이나 피양소에 격리시켰다. 여기서 죽거나 살거나 운명은 팔자 소관이었다. 의사도 정부도 병에 대해서는 해 줄게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음식을 조달해주는 정도였다. 한바탕 역병이 휩쓸고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도 역병이 유행할 때 가장 기본적인 대응은 격리 정책이었다. 

현대의 역병 유행에도 대응 방식은 변하지 않는다. 환자는 무조건 격리병실로 입원하고 외부인은 철저히 차단한다, 가족 면회도 안되며 환자를 접촉하여 발병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자가 격리 대상자로 등록된다.. 격리 당한 환자들은 그래도 현대적 치료를 받는다는게 차이라면 차이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격리라는 정책이 작동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격리된 환자나 접촉자들은 기피의 대상이 되고 경계의 대상이 된다. 

콜레라나 메르스 같은 전염병은 단기간에 상황이 종결되기 때문에 격리의 기간이 비교적 짧다. 반면에 일제에 의해 시행된 한센병 환자 격리 정책 같은 경우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격리 정책이었다. 한센병 정책은 격리의 수준을 넘어 감금에까지 이른다. 소록도라는 공간에 감금하여 사회로부터 완전히 분리하고 나아가 이들의 후계까지 차단하기 위해 환자들에게 강제로 단종, 낙태까지 자행한다. 

에이즈 환자들은 물리적 공간에 감금당하지는 않았지만 편견과 차별이라는 사회심리적 공간에 감금당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감금은 물리적 감금이상의 고통을 수반한다. 

전염병과 국가

전염병이 유행할 조짐이 보이면 정부 당국은 발 빠르게 움직인다. 단기간 대유행하는 전염병의 경우 초기 대응이 중요해진다. 유행하기 시작한 전염병의 정체를 밝히고 적절한 대응 방침을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하여 불안과 공포를 달래 주어야 한다. 방역 당국이 적절한 대응에 실패하면 이는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가게 된다. 메르스 유행 시 초기 대응에 실패함으로써 정부는 심각한 비판에 직면했던 것이 그 예이다. 

반면 에이즈, 결핵과 같은 질병은 메르스 유행과 같이 단기간에 전염자가 증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초기 대응이라는 개념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들 전염병은 이미 우리 사회 속에 깊게 뿌리 내리고 있고 서서히 전파되기 때문에 특성에 맞는 대응 전략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정책적 대응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현재의 에이즈 정책이 적절한지 결핵 정책이 잘 적용되고 있는지 전문가가 아니면 관심도 없고 잘 알기도 어렵다. 이런 전염병들은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존재들은 아닐지 모르지만 사회적 부담인 것은 사실이다. 이런 전염병은 단기 처방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전염병은 기본적으로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옮아가면서 병을 퍼뜨린다. 전염병의 유행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단절되고 사람들은 고립된다. 개인은 폐쇄된 공간에 갇혀서 불안해한다. 이러한 유행이 확산되면 불안감은 공포로 확대되고 사람들은 집단적인 심리적 재난 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개인의 일상생활이 흐트러지고 사회 전반의 활동들이 정지하거나 위축된다. 경제 활동도 극도로 위축된다. 유행이 극대화되면 민심이 흉흉해진다. 

여기서 정치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전염병 확산의 조짐이 보이는 초기부터 개입하여 상황을 관리할 필요가 생긴다. 개인들의 고립을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하고 불필요한 불안감, 공포감의 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전염병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이다. 전염병 관리에 실패하면 정부는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옛날부터 역병이 돌면 수재, 가뭄 때처럼 임금이 노심초사하고 자책하곤 했다. 역병이 돌면 현명한 임금은 초기에 대책본부를 꾸리고 신하들을 재촉하며 직접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세종이 그랬고 정조도 그랬다. 다른 임금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비슷했다. 

메르스가 한참 확산 되고 있을 때 사스 유행에 대한 당시 정부의 대응과 메르스에 대한 정부 대응을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는 전염병에 대처하는 정치적 리더십의 차이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인용되곤 한다. 

세월호 사건 때도 메르스 유행 때도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고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많았다. 과연 국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메르스가 한창 기승을 부리면서 퍼져 나갈 때 사람들은 국가의 무대책과 무능을 비판했다. 초기 대응에 실패했고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갈팡질팡했다. 국민도 불안해하고 일선의 의료기관들도 불안에 떨기는 마찬가지였다. “전염병이 유행하면 원래 그래” 라는 말 한마디로 웃고 넘기기에는 국가의 존재가 너무 위태해 보였다. 

국가가 필요할 때 국가는 제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 전염병 유행은 국가적 재난의 일종이다. 재난이 닥치면 국가의 역할이 도드라질 수밖에 없다.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의 확산을 막고, 재난으로부터 회복하는 과정의 상당 부분을 국가가 책임지게 된다. 

전염병과 생명권력

70년대부터 논의되어 온 생명권력은 전체로서의 인구 집단과 개별적인 인체를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관리하고자 하는 근대국가의 모습을 지칭한다. 전염병의 유행은 이러한 생명권력의 인구 관리 기능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작용한다. 전염병의 유행은 평상시의 관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 확대되는 한편 전염병의 유행으로 관리 기능은 더욱 망가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생명권력의 입장에서 전염병은 관리되고 통제되어야 하는 적대적인 존재임에 틀림없다. 근대국가들은 전염병의 관리를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도입하고 다양한 장치들을 마련했다. 의학의 발달은 이러한 생명권력의 작동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어느 순간 전염병이 정복되었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전염병의 등장과 유행은 이러한 믿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전염병 비상 상황에서는 전염병 계염령이 작동한다. 전염병 계염령이 작동하면 환자는 가해자, 범죄자로 인식되며 격리, 감금 장치가 작동한다. 환자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의 대상이 되며  환자와 관련된 모든 것 - 취급했던 물건, 거쳐 간 공간 등-이 불온시 된다. 늘어나는 환자들은 일련번호로 호명되며, 환자복은 죄수복으로 인식된다. 

전염병 환자들의 생물학적 시민권

전염병 환자들은 공동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회적 주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환자들이 권리 주체로서 조직화되고 권리 투쟁에 나선 사례들은 종종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사례는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이 당시 특효약으로 개발된 글리벡이라는 신약의 국내 허가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이후 과도한 약값의 인하를 위해 운동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골수이식 이외에 특별한 치료가 없어 죽음을 기다리던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에게 특효약인 글리벡의 개발 소식은 희망 그 자체였다. 환자와 가족들을 중심으로 굴리벡의 빠른 출시를 촉구하는 집단행동이 이어졌고, 그 결과 미국 FDA 승인 한 달 만에 국내 시판이 허용된다. 그러나 제약사인 노바티스가 높은 가격을 요구하는 바람에 특효약에 대한 접근성에 제한이 생기고 환자 단체는 약가 인하를 위한 운동을 계속하여 약가를 낮추는 성과를 올린다.

이 과정에서 환자들은 치료약인 글리벡의 획득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조직하고 주체로 나서서 지난한 싸움을 진행하면서 스스로 생물학적 시민권을 획득해 나간다.(1) 
 
전염병 환자들의 경우 환자로서의 정체성을 공유하면서 주체로 나설 수 있는가? 고립과 분산은 전염병의 특징이다.전염병은 관계를 통해 전파되고 확대되므로 관계의 단절은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중요한 방법이다. 이러한 경향은 환자와 환자 사이에서도 적용된다. 환자들 스스로도 모이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특정한 목표를 위해 모이더라도 환자와 비환자의 관계가 다른 질병과는 다르다. 

전염병 환자들 중에서 그래도 에이즈 환자들이 환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조직을 만들고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다. 2008년 에이즈 환자 단체들은 다국적 제약사인 로슈에서 생산하는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에 대해 강제실시를 청구하기도 한다. 에이즈 환자들이 생물학적 시민권을 획득해 나가는 과정은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들이 시민권을 획득해 나가는 과정보다 훨씬 더 고난의 길이다. 두 질병에서의 환자-비환자 관계도 달라진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의 경우 환자-비환자 관계는 우호적인 경우가 많으며 최소한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반면에 에이즈의 경우 환자-비환자 관계가 우호적이기는 상당히 어렵다. 적대적이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기본적으로 ‘전염병’이라는 질병 특성이 이 둘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어 낸다. 에이즈의 경우 전염병이라는 특성에다가 에이즈가 출현하고 초기에 형성된 편견과 오해가 이러한 차이를 증폭시키고 있다.

소록도에 감금되었던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 단종, 낙태에 대해 최근에 국가 배상 소송을 진행하여 승소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소록도라는 공간에 감금되어 생활했던 정체성이 강했으나 스스로의 권리 찾기는 쉽지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소록도라는 감금 공간은 해방 후에도 유지되었고 강제 단종과 낙태라는 폭력도 계속 이어졌다. 억압적인 정부아래서 이들의 시민권 획득 노력은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전 지구적 생명정치 

국민 국가의 경계 안에서 작동하던 생명정치는 이제 전 지구화하고 있다. 관계를 통해 전파되는 전염병이 한 국가의 국경선을 넘지 않으리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항공 교통이 발달한 현재 전염병은 수 시간 만에 지구 반대편으로 넘어 갈 수 있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해당 지역 또는 장소가 불온한 장소로 기피의 대상이 된다.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되면 해당 국가가 불온한 국가로 지목되어 기피의 대상이 된다. 에볼라 유행 시 서아프리카 국가에서 온 여행객이 기피의 대상이 되었으며 국내 메르스 유행 시 우리니라 자체가 기피 국가로 분류되기도 하였다. 

중동에서 유행하던 메르스가 갑자기 동아시아에 나타나 우리나라를 들쑤셔 놓았다. 아프리카에서 국지적으로 발생하던 에볼라도 서아프리카를 초토화 시켜 놓았다. 브라질에서 지카 바이러스가 돌면서 전 세계가 긴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제 전염병 관리를 위해서는 세계적 차원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데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중심이 되어 지구적 규모의 감시와 광범위한 정보 수집, 안전 수칙 제정과 이행 요구, 국가 경계를 넘어선 선제적 예방 조치의 과감한 시행 등의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다.(2) 

전염병은 국가적 차원의 생명권력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한 국가를 넘어 모든 국가의 권력에 대해 위협적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지구적 차원의 생명정치가 조직되고 있는 셈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에서의 효과적인 식민 통치를 위해 현지의 전염병 통제가 필요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당시에는 제국주의 국가가 개별적으로 식민지에서의 전염병 통제에 나섰지만 지금은 개별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해 있다. 지구적 차원의 생명정치 조직화는 무엇보다는 전염병 대응 차원에서 그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참고문헌

(1) 강양구,채오병. 21세기 생명정치와 시민권의 변동. 『생명정치의 사회과학』. 알렙. 2014.

(2) 하대청. 광우병 위험과 지구적 생명정치, 『생명정치의 사회과학』. 알렙. 2014.

백재중  jjbaik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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