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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의련의 원류 할아버지 야마센에게서 이어받은 것

건강미디어l승인2019.07.11l수정2019.08.10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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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유지 글
황자혜 옮김

교토역 바로 옆에 있는 코리안타운

고도 교토에 코리안타운이 있다고 하면 놀라실까요. 게다가 그곳은 오사카 츠루하시나 도쿄 신오쿠보 같은 화려한 관광지와는 정반대로, 햇볕이 들지 않는 곳. 수 년 전까지는 슬램 상태로 판잣집이 늘어서 있던 곳입니다.

한반도에서 건너온 조선인 노동자들이 전쟁 전부터 많이 모여서 살았고, 함석과 베니어 등 폐재로 세워진 판잣집은 대부분 불법 건물이었습니다. 정식 주소도 없는 곳이어서 히가지구조 지역은 ‘교토 0번지’로 불려왔습니다. 

교토 역에서 도보로 단 15분 걸리는 입지임에도 대도시 교토의 이면, 어둠의 모습 같은, 그러나 이 히가시구조야말로 내가 스스로 선택해 의사 인생을 바쳐온 지역입니다.

▲ '쿄토 0번지' 전경

내가 일하기 시작한 45년 전은 상하수도 등 인프라가 정비되어 있지 않았고, 당연히 구정물이 분뇨와 그대로 흐르며, 가모가와 물을 식수로 목욕은 드럼통을 부뚜막에 직접 거는 ‘고에이몬’ 철제 목욕통이었습니다. 광열은 땔나무나 프로판 가스를 쓸 수밖에 없어서 화재도 빈발했습니다. 위생 상태는 비참 그 자체로 감염증 등의 병이 만연했지만, 주소도 없는 0번지 주민에게 의료보험은 주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대형병원에서 이 지역에 이끌려   
 
당시 나는 대형병원인 ‘교토 제1 적십자 병원’(이하 ‘적십자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월급이 적었던지라 야간 아르바이트로 구조 진료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만 둬, 그 지역은 품위 없는 동네야. 가면 팔 하나나 둘 꺾일지도 모른다고” 하도 겁을 줘서 내 자신도 조심조심 가본 그곳은, 우선 전쟁터처럼 바빴습니다. 아침부터 술에 취해 마구 아우성치고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이 있고, 반사회적(으로 취급되는 폭력단 등의) 인물이나 손가락을 잘린 사람, 전신 문신 투성이의 무서운 얼굴의 환자, 노숙자…. 그 중에서도 지금 이 시대에 읽고 쓰기가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을 진찰하게 되면 이제까지의 경험도 상식도 모두 도움이 안 됐습니다. 가족형태, 경제상황, 사회적 배경, 다시 말해 그들의 인생 그 자체를, 생활을 통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단순히 증상만을 보고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나로서도 이 일에 전념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강한 의지를 가지고 도전하지 않는 이상 히가시구조의 환자들과 마주하기란 불가능했습니다.

▲ 마을의 모습

적십자 병원에서는 신참 의사인 나에게도 환자들은 의심치 않고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받들어 주었는데, 구조 진료소에서는 내가 의사다, 환자는 의사 말을 듣는다라는 감각은 일절 통용되지 않았습니다. 상당히 고생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이 지역에 강하게 이끌렸습니다.

여기 환자 분들은 처음엔 말과 태도가 난폭하지만 인정이 많은 사람들로, 한번 이 의사다 싶으면 정말로 신뢰하고 철저히 몸을 맡겨줍니다. 사회적,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 못하지만, 얼마나 솔직하고 인간다운지. 밝고 강하게 살아온 사람들 앞에서 나는 대형 병원의 한 의사로서는 얻을 수 없었던 큰 보람이, 나아가 지역밀착형 의료의 훌륭함을 여기 히가시구조라는 장소에서 몸에 배도록 체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조 진료소에서 일하기로

그렇게 근무처를 양쪽에 걸쳐 일하던 생활이 10년 정도 지나, 단순히 진찰하는 수 분 간만 형식적으로 대응하는 적십자 병원에서의 방식에 흥미가 옅어지고, 어딘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지를 생각할 때, 구조 진료소에서 민의련에 와주지 않겠냐는 권유가 있었습니다. 적십자 병원 의국과 간호부 그룹에서는 “그런 데 가면, 의료 수준은 떨어지고, 선생님 가치가 없어진다”며 이구동성으로 맹반대. 부친은 자신도 의사로서 민의련 출신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일은 스스로 결정해라” 말했지만, 제일 반대한 분은 세상사람들 눈을 중요하게 여기는 어머니였습니다. “민의련이라니 폼 안 난다. 아들이 민의련 의사라는 거, 부끄러워 어디 말 못한다”며 단호히 반대했습니다 그런 중에도 등을 밀어준 것은 아내의 한마디였습니다.  “민의련에서 일하는 것은 조부님의 의지를 이어나가는 것이 돼요. 꼭 힘내세요”라고.

센지의 뜻을 이어 민의련의 원류 무산자진료소가

내 조부는 야마모토 센지(야마센)로, 그의 죽음이 민의련 설립의 계기가 된 인물입니다. 센지는 다이쇼 쇼와 초기의 우지 출신 대의원(국회의원)으로, 당시 국회에서 치안유지법에 유일하게 반대한 사람입니다. 그 때문에 우익에게 습격 당해 39세로 원통하게 죽었습니다.

이 비보를 듣고 모인 사람들이 센지의 유지를 계승하는 활동으로서 호소한 것이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산자 진료소’였습니다. 이것이 현재 민의련의 뿌리입니다.

현재 ‘무료・저액 진료사업’도 센지의 정신과 통하는 것

현재 많은 민의련 병원과 진료소는, 힘든 생활을 하지만 폭넓게 진료받을 수 있도록 저소득층 환자분들의 자기 부담을 의료기관의 부담으로 면제・감액하는 제도인 ‘무료・저액 진료사업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나는 민의련의 이러한 자세가, 전국민건강보험도 없는 전쟁 전 시대 돈이 없으면 치료를 받을 수 없거나 금전의 유무로 생명의 무게가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해온 조부, 야마모토 센지의 정신과 통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생할보호와 그 제도를 활용해 진료와 치료를 받는 사람이 전 환자의 4할을 넘는 곳이 내가 근무하는 진료소입니다. 당연히 진료소 경영을 유지해나가면서도 어떠한 환자도 버리지 않는다는 방침으로 일하는 직원이, 진료소를, 나를 지탱해주는 것에 감사하는 매일매일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차별 없는 평등한 민의련 의료의 진수라고 생각합니다.

구조 진료소에서 일해나가는 것은 어느 샌가 내 사는 보람이 되었고, 앞으로도  여기에서 의사생활을 이어가다  인생을 마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들어서 차별의식은 옅어졌지만, 지금까지도 생활보호 대상자나 저소득자, 조선이나 한국 출신자가 많은 여러모로 어려운 지역입니다. 본명을 댈 수 없고, 헤이트 스피치, 결혼 차별, 일 차별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가까운 장래, 이러한 차별이 없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 방문 진료 모습

만약 센지가 정치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만약 할아버지 야마모토 센지가 생가인 요리 여관 ‘하나야시키’를 잇거나, 학자가 되지 않았거나, 정치가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지금의 민의련이 없었을지, 내가 의사가 되었을지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 인물의 죽음이 역사를 바꾼다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감개무량합니다.

당초 민의련에서 일하는 것을 반대한 어머니도 돌아가시기 직전에 “너, 참 잘하고 있구나”라며 내가 해온 것을 인정해주셨습니다.

빈부의 차이, 인종, 직업을 차별하지 않았던 조부의 뜻을 나도 이어받아, 어떻게든 여기까지 해온 것에 대해 자긍심을 가집니다.

구조 진료소가 설립 6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앞으로도 지역 의료에 전념하고, 지역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활동에 직원 일동은 민의련이라는 자각과 긍지를 가지고 힘을 합쳐 노력해 나가고자 합니다.

<공제소식> 2018년 7월호
시리즈 98회, 전하고 싶은 ‘내 민의련사’ (상, 하)
교토 구조진료소 소장 야마모토 유지(73세)
프로필 : 1944년생.
조부는 야마모토 센지,
아버지 고지(야마센의 차남)는 민의련 타이호진료소 초대 소장.
1971년 오사카의과대학 졸업, 2년간, 국가공무원 공제조합 마이즈루 공제병원 내과 근무. 1973년부터 교토 제1 적십자 병원 제1내과에서 당뇨병, 간질환을 담당하면서, 현재 근무하는 구조 진료소의 야간 진료를 봄. 1980년부터 기치죠 병원으로 옮기고, 1990년부터 구조 진료소 소장.
교토민의련 이사, 지역(지구)의사회 이사를 역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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