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9.11.11 월 17:13

지역에서 주치의 의사로 산다는 것

[주치의제도 도입을 위한 특별기고]_정명관 정가정의원 원장 김기태l승인2019.07.04l수정2019.11.0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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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병의원은 많이 보이는 것 같지만 정작 갈 곳은 별로 없다. 이런 증상으로 어느 과를 찾아가야 할지 잘 모르겠고, 가본들 해결이 될까 하는 걱정도 있고, 괜히 쓸데 없이 이것저것 검사하자고 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된다. 치매나 암이나 사고나 막상 큰 일이 닥쳤는데 상의할 수 있는 전문가가 가까이에 없다. 많은 지인들이 토로하는 고민들이다. 그러다보니 멀리 떨어져 있는 친척이나 친구 의사라도 있으면 불쑥 문의하는 경우도 많다.

▲ 정가정의원 정명관 원장.

필자는 지역사회에 개원하여 한 자리에서 거의 20년 동안 진료를 하고 있는 가정의학과 의사다.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생소(?)한 분야인 일차의료에 종사하고 있다. 전문적인 건강검진도 하지 않고 피부나 성형같은 비급여 전문의원도 아니며, 특정 진료과목이나 특정 의료기술에 특화한 진료를 하고 있지도 않고 일반적인 일차의료를 한다. 

우리 의원에는 다양한 환자들이 온다. 우선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 질환자들이 온다. 벌써 10년 이상 다니는 환자들도 꽤 있다. 그런 범주의 질환엔 천식이나 만성폐쇄성폐질환 같은 호흡기환자도 있고, 퇴행성 관절염이나 골다공증 같은 근골격계 환자도 있다. 당연히 만성질환이 두서너 가지인 환자도 많다. 그 다음으로는 다양한 급성기 질환자들이 온다. 감기나 폐렴같은 호흡기환자, 위염이나 장염 같은 소화기환자, 아토피나 두드러기 같은 피부질환자, 다양한 감염병 환자들이다. 화상이나 열상, 염좌 같은 급성 손상 환자들도 온다. 

그 밖에도 예방접종을 하러 오거나 건강검진 결과를 들고 상담을 하러 오는 환자도 많다. 모호한 증상으로 찾아오는 환자도 상당히 있다, 피로, 애매한 통증 등이 대표적이다. 진단을 붙이기는 어렵지만 증상이 있는 환자들이다. 금연이나 비만 치료도 한다.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 오기도 하고, 부부가 함께 오는 경우도 흔하다. 보호자로서가 아니라 환자로 함께 온다. 

하지만 어떤 환자들은 진료실에 앉으면서 쭈삣쭈삣하며 말을 꺼내기도 한다. “이런 증상으로 여기에 와도 되는건지 모르겠지만..." 하고 말이다. 듣고 보면 특별한 내용도 아니다. 방광염 증상이 있는데 산부인과에 가야 하는건 아닌지, 두드러기가 있는데 피부과를 못 찾았다든지 하면서 묻는다. 그럴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비교적 차분하게 말을 해 준다. ”어디를 가야 할지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와서 저하고 상의를 하시면 됩니다. 이과 저과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질병이나 장기 별로 구분해서 환자를 보지 않고 전부 다 보도록 훈련받았습니다. 대부분은 여기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진료 후 중하다고 생각되거나 필요한 경우엔 전문의나 큰 병원으로 가도록 조치를 취해드리니까요.“

오래된 환자들은 이런 속성을 이해하고 건강 문제만 있으면 첫 번째로 우리 의원에 오기도 한다. 고혈압과 당뇨병, 전립선비대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으면서 감기에 걸려도 오고, 칼에 베어도 오고, 속이 쓰려도 오고, 두드러기가 나도 오고, 허리가 아파도 오고, 예방접종을 하러 오기도 한다. 어떤 환자들은 과거의 습성에 매여 특정 질환으로(만) 우리 의원을 이용하기도 한다. 우스운 것은 어떤 환자는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치료하러 우리 의원에 오고 감기는 다른 곳으로 가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떤 환자는 어깨통증이나 방아쇠손가락으로 치료받을 때에만 오기도 하고 무좀 치료하러만 오는 경우도 있다. 한번 내향성발톱 수술 받은 환자가 몇 년 후에 또 그 문제가 있을 때 오기도 한다. 그분들에게 나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인 셈이다.  

환자들을 상담하다 보면 교과서에서 권고하지 않는 진료를 받고 있는 경우도 종종 접하게 된다. 어떤 환자는 잘못된 의료지식이나 광고에 휘둘리고 있는 것도 본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갑상선암 검진을 하고나서 굳이 받지 않아도 될 수술을 받았다든지 주위에서 권고한다면서 치매예방약이나 치매예방주사를 찾는다든지 허리나 무릎 통증 치료나 시술에 대한 고민들을 하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과다하게 복용하고 있는 약물 문제도 있다. 정상에서 약간 벗어난 건강검진 결과를 들고 밤잠을 설치며 걱정을 하고 있는 경우도 많이 본다. 

하나하나 해결해주고 싶어도 시간이 충분하지 않고 의료 정보가 모두 내게로 모이지도 않고, 어떤 경우엔 굳이 환자가 원하지도 않아서 나도 단편적인 의료서비스만 제공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러 가지 건강문제를 안고 있는 노인환자들을 보면 한숨이 쉬어진다. 불필요한 치료에 돈은 많이 쓰면서도 정작 꼭 필요한 의료서비스는 누락되는 경우를 흔히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료는 일차의료 단계에서 소비자(환자)가 아닌 공급자 위주로 제도가 정착되었다. 의료공급자가 제각각 자영업자처럼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의료상품을 판매하는 모양이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적절한 의료가 제공되지 못하고 경쟁이 심해지고 과다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 판매하고 나면 끝이다. 환자 입장에서도 적절한 판매처를 찾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지만, 반신반의하면서 의료상품을 구매하게 된다. 주치의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은 의료를 상품 판매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으로 취급하여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미이다.  

의사는 의사답게 환자를 중심에 두고 일할 수 있고 환자는 신뢰할 수 있는 의료전문가의 서비스를 포괄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국민건강과 더 나은 의료 환경을 위하여 주치의제도 도입이 꼭 필요하다.

김기태  newcity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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