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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현장의 여성 건강권 4 - ‘미스 김’을 기억하네

기획 [의료, 젠더를 말하다] 17 건강미디어l승인2019.03.07l수정2019.05.2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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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4. ‘미스 김’을 기억하네

최근 노동조합이 전국의 노동안전보건 활동가, 간부들을 불러 수련회를 연 자리에 초대받아 다녀왔다. 100명이 넘는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왔는데 여성 활동가 5명 정도가 보였다.

화학, 식품, 금속 같은 제조업 노동조합의 남성 간부들 사이에서 전자산업 노동조합의 20대 여성 활동가를 만날 수 있었다. 대기업의 전자산업인데 밤샘 근무를 한 후 수련회로 바로 왔다고 한다.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바로 취업이 되어 지금 공장에 온지 7년차가 되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싶어 지원자가 적은 노동안전 부서를 공략하였다고 한다. 두 가지 질문을 건네 왔다. 한 선배 조합원이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보험을 신청해야 할 만큼 심각한데 ‘절대로’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산재보험을 이용하면 다른 부서에 배치될 것이며, 이후 다른 직장에 갈 상황이 생겼을 때에도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며 산재보험을 거부한다는데, 설득할 논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질문도 답이 쉽지 않았다. 노동 강도가 센 라인에서 강도조절, 인력 충원 등을 회사 측과 교섭해야 하는데 노동부가 고시하는 신체 부담 작업을 들여다 보니 웬만한 일은 다 부담이 없는 것으로 판정이 나올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금 라인은 힘들고 버거워 아픈 사람이 속출하는 상황인데 정부 기준 대로 일해야 하는 것인가 묻는 것이다. 누구를 기준으로 노동이 힘들다, 힘들지 않다 표준이라는 것을 만들었는가, 물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016년 일어난 메탄올 중독으로 6명의 파견 노동자가 실명한 사건에서 메탄올을 사용하게 한 공장의 사업주들에 대한 형사처벌 재판 결과가 집행유예, 사회봉사로 턱없이 약하게 나왔다. 한 기자가 검찰에 전화를 해서 처벌이 약하다, 이유가 무엇인가 물었을 때 검사는 ‘노동자 셋은 죽어야 관심을 갖는다’ 고 답했다고 한다. 사법제도의 모순이기도 하지만, 이 사회가 노동자의 생명에 대해 갖는 입장이기도 하다. 답변 자체도 놀랍지만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할 권리에 무지하고 무시하는 이 사회가 더 폭력적이라고 느낀다. 일자리 주고 월급 줬는데 무엇을 더 바라냐는, 노동자를 도구화하고 수단화 하는 시각이 깊다. 이 시각은 여성 노동자에게 더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여성 노동자의 건강은 직업이 소거된, 생물학적인 요인, 호르몬 변화 등으로 말해지기 일쑤다. 개인이 관리하고 건강에 투자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를 개인화하는 것은 기업, 정부, 의료산업, 건강·미용 산업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아프다’가 사회적 발언으로 이해되고 인정받는 것이 개인화를 벗어나는 출발이다, 전자산업 여성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직업병 인정 투쟁은 절대 권력 재벌기업을 흔들어 왔다. 조직이 없는 보통의 여성 노동자가 회사 대 개인으로, 정부 대 개인으로 ‘아프다’를 인정받기 위해서 싸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2017년 1월에서 2018년 1월에 이르는 일년간 5만 명의 조합원이 늘었다고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조사한 노사관계 국민의식 조사를 보면 노동조합이 부당한 대우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인식은 십 년전에 비해 두배 넘게 높아졌고, 사회불평등을 완화한다는 인식은 십 년전에 비해 네배가 높아졌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노동운동을 성장시키고 노동운동은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도 보호한다. 역시 미투운동, 페미니즘 운동은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이기도 하고 인권운동이기도 한데, 여성 노동자, 특히 생산직 여성 노동자, 육체 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에게도 더 많이 닿을 수 있기를 바라 본다. ‘아프다’ ‘나도 아프다’ 고 말하는 여성 노동자가 많아지기 위해서 말이다.

활동하면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순간 중 한 번은 노동운동의 중심이었던 대기업 노동조합에 방문했을 때 일어났다. 남성 간부가 우리 일행을 대접하기 위해서 “미스 김!”을 불렀다. 꽤 오래 전인데도 가끔 떠오른다.

최근에는 겪은 일 중 가장 당황스러웠던 일이 일어났다. 택시 앞자리에 앉아 기사에게 “우회전해 주세요” 하면서 무의적으로 오른손을 들어 가리킬 때였다. 기사가 바로 말했다.

 “손 치워요” 

그 남성 기사는 여성 승객이 길을 지시하는 걸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1~2초 사이에 정확하게 제압 당했다.

어쩌면 여성, 여성 노동자의 인권, 건강권을 말하는 것, ‘아프다’ 고 말하는 것도 비슷할지 모른다. 말을 할 때마다 “손 치워” 라는 답변을 들을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우리는 계속 손을 들어 방향을 알려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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