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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현장의 여성 건강권 2 -‘아프다’ 고 말하지 못하는 공장의 여성 노동자들

기획 [의료, 젠더를 말하다] 15 건강미디어l승인2019.03.07l수정2019.04.0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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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2. ‘아프다’ 고 말하지 못하는 공장의 여성 노동자들

앞서 소개한 일간지의 인터뷰이는 젊은 여성들이 아프다고 말하면 예민하고 취약한 존재로 치부되는 현실을 짚어주었는데, 오늘은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여성들, ‘아프다’고 말하기 위해서 싸워야 하는 여성들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여성이면서 노동자인, 특히 생산직 여성 노동자들, 여성 육체 노동자들은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가능한 참다가 노동에 최적화된 신체 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울 때 물리치료사에게 가고 뜸을 뜨고 침을 맞는다. 시간이 날 때마다 물리치료를 받고, 침은 맞는 여성 노동자들이 중고령 노동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노동의 유효 기간을 늘리기 위한 관리 행위이다. 

작업환경으로 인한 암 발병을 직업병으로 인정받기 위하여 길고 긴 투쟁으로 내몰리거나 투쟁을 결단한 전자산업 여성노 동자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내가 한 노동 때문에 내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서 싸우는 것, ‘아프다’가 사회적 발화(發話) 가 되고, 투쟁이 되었다. 

1)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여성 노동자 A와 B

2015년에서 2016년 메탄올 급성 중독으로 실명한 대기업 스마트폰 생산 하청업체 노동자 6명이 있다. 이 가운데 A와 B, 2명의 여성노동자가 있다. 휴대폰 부품을 세척하기 위하여 메탄올을 뿌리면서 A는 몸살 감기에 걸린 것 같은 몸 상태가 이어졌다. 그래도 공장에 나갔고, 심하게 몸살이 온 날, 새벽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고는 다시 공장으로 와서 밤샘 노동을 했다. 몸살 감기 정도는 넘기면서 일하는 것이 공장의 분위기였다. 다른 공장에서도 그렇게 해 왔다. 누가 딱부러지게 지시하지 않아도 그렇게 일해 왔다. 수액을 맞고 야간 작업을 마친 아침, A는 집에 와서 쓰러졌다. 메탄올에 중독된 몸은 눈을 떠도 앞이 까맸다. A는 실명에 대하여 직업병을 인정받아 산재보험 급여를 받고 TV, 신문 인터뷰를 여러번 했다. 이런 일이 다시 생기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이 있는 A는 딸이 TV에 나온 엄마를 볼까봐 불안했다. 갑작스런 실명과 불안은 A가 정신과 진료를 필요로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정신과 진료를 산재보험 급여로 받기 위하여 A는 직업병 판정단 앞에 앉았다. 판정을 맡은 의사들은 A가 메탄올 중독과 실명으로 정신도 아프게 되었는지 인과관계를 판정해야 했다.  

B는 메탄올 중독과 실명의 정도가 훨씬 더 심하였고, 퇴원이 없는 병원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독 이후 며칠을 깨어나지 못했던 B의 몸은 여성이 겪을 수 있는 모든 힘겨운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부인과 치료를 계속 받아야 했다. B의 아버지는 딸의 부인과 질환에 대해서 이것이 메탄올 중독으로 인한 것임을 증명해야 했다. 아버지의 미션은 용한 의사, 병원을 더 알아보는 것이었고, 산재보험 급여로 부인과 치료를 받기 위해서 역시 직업병 판정단의 심사를 통과해야 했다.

메탄올 급성 중독으로 인한 실명 사건에서 6명의 노동자는 모두 20대, 30대 초반이고 비정규직 고용의 최고 심급이라 할 수 있는 파견 노동자였다. 이들 6명이 모두 힘든 상황에 놓인 것은 자명하다. 다만 2명의 여성 노동자가 겪어야 하는 상황은 여성이기에 더 복합적이고 힘겨운  면이 있는 것도 분명하다.

 

2) 10대 후반 여성 노동자 C의 한 달
 
에어컨 조립 공장의 하청업체에서 한 달을 일한 10대 후반 여성 노동자 C를 만났다. C는 공장에서의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한 달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2017년 초 단기간에 돈을 벌기에는 공장이 좋다는 말을 듣고 경기도 성남의 집을 떠나 경북 구미의 전자제품 공장으로 간 C는 일주일 단위로 주야 맞교대를 하며 에어컨 필터를 조립했다. 퇴근 시간이 지나면 잔업을 해야 했다. 잔업은 자율이라고 하는데 못한다고 하면 관리자들은 이유를 묻고 화를 냈다. 종일 서서 라인을 따라 흘러오는 부품을 만지다 보면 손, 손목, 허리가 아팠지만 제일 아픈 곳은  발목, 발바닥이었다.

관리자에게 이야기하니, 화상을 입거나 어디 부러지는 부상을 입은 것이 아니라면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을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나이 많은 언니들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며, 힘들면 잠깐씩 앉으라고 말해 주었지만 앉을 의자와 공간이 없었다. 퇴근하면 숙소 인근에 있는 한의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한 달 동안 가능한 날마다 병원에 갔고, 물리치료를 받았다. 공장을 그만두고 보니 급여의 대부분이 병원비로 나갔다.

 

3) 헤어 디자이너 D의 고단한 자기 관리

고등학교 때부터 진로를 헤어 디자이너로 정하고 미용 학원에 다닌 D는 고단한 미용실 스텝 과정을 거쳐 삼십대 초반에 헤어 디자이너로 자리를 잡았다. 미용실 스텝 초기 파마 머리에 중화제를 바르는 일을 하던 수개월 동안 손끝부터 팔, 겨드랑이까지 피부가 빨갛게 타들어가는 통증과 가려움을 견뎌야 했다. ‘중화제 독’이 오른 거라고 한다. 너무 아파 몇 개월 미용실을 쉬고 다시 스텝 일을 시작하니 내성이 생겨 더 이상 독이 오르지 않았다. 지금 D의 겨드랑이 흉터는 붉게 된 피부가 그대로 있다. 보면서 속상할 때도 있지만 열심히 산 자신이 뿌듯하다고 한다.

지금의 D를 힘들게 하는 것은 미용실에서 일하는 헤어 디자이어들 대부분이 고용된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 신분이며 자신 역시 그러한데 미용실 업주가 가져가는 돈이 너무 많아 고된 노동에 비해 수입이 적다는 것이다. 미용실 안에서도 다른 디자이너들과 경쟁해야 하고, 다른 미용실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유행을 공부하며 자신이 브랜드가 되어 고객 창출도 해야 한다. 중요한 경쟁력은 고객들과의 스킨십, 고객 응대에서 나온다.

고객이 오면 끼니를 걸러야 하고, 진상고 객을 만나면 극한의 감정노동을 하고, 경쟁 속에 미래를 걱정하면서 D는 불면증을 얻었다고 한다. 정신과에서 수면제를 처방받아 온지 오래되었다. D는 경제활동을 하는 숙련 여성 노동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아플 때마다 자기 관리에 더 신경 쓰고 자신을 몰아쳤다.

 

4) 남학생 알바는 장부 정리를 배우네, E의 경우

대학을 휴학하고 알바를 시작한 E는 용돈이 필요해서 시작한 단기 알바였지만 여성 노동자로서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적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다. 첫 번째 알바를 한 주점에서 사장은 밀린 알바비를 요구하는 E에게 큰 목소리와 완력으로 공포스런 분위기를 만들면서 E로 하여금 알바비 요구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동네 치킨 집에서 E는 치킨과 맥주를 시키는 중년 남성들의 성희롱적 언행을 감수하면서 알바를 계속할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치킨집 사장이 뒤에 들어온 남학생 알바에게 장부 정리와 물품 주문 등을 가르치고 있었다. 부당하다고 느꼈다. 일식집 알바로 옮겼을 때 역시 뒤에 들어온 남학생 알바에게 사장이 흡연을 같이 하자며 쉬는 시간을 더 주고, 일식 노하우를 가르쳐 줄 때도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처럼 느꼈다. 만둣국집 알바를 하는 지금, 무거운 사기 그릇을 사용하고, 카트 대신 쟁반을 들고 음식을 나르도록 하는 사장 때문에 손목에 늘 보호대와 파스를 붙이고 있지만 최저 시급보다 많이 받고 점심을 주기에 만족스럽다. 그런데 최근 동료 알바 언니가 사장에게 불려나가 드라이브에 동원되고 있다고 고충상담을 해 왔다. 이번 알바는 그만두고 싶지 않은데 불안해지고 있다.

 

5) “내 밑으로 다 싸인하지 마” 인천의 여성 노동자들

올해 봄 인천에 교육 요청이 있어서 간 자리, 10여명의 여성 노동자가 오순도순 수다 떨며 시작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어보니 모두 전자회사 1차 하청업체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동료들이라고 한다. 메탄올 중독 사건이 떠들썩할 때 영세한 3차 하청업체이기에 사건이 터졌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1차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이 말하길 본인들도 메탄올을 세척액으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3차 하청업체와 다른 점은 라인이 돌아가는 어느 날 교육을 한다고 급히 의사가 들어왔고, 의사는 교육 중에 ‘노동자가 직업병에 걸릴 확률은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매연으로 암에 걸릴 확률보다 낮다’ 고 말했다고 한다. 의사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을 하라고 했지만 노동자 누구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라인이 돌아가는 다른 날, 라인을 타고 종이가 배포되었다. 관리자는 종이에 싸인을 하라고 했다. 라인을 따라 흘러가는 종이는 제목도 잘 보이지 않았다. 급히 싸인을 하고 보니 회사에서 안전 교육을 했다는 확인 서류였다. 먼저 싸인을 한 언니가 “내 밑으로 다 싸인하지 마” 외쳤다. 그 라인의 여성 노동자들은 싸인을 거부했다. 계약 갱신일이 돌아왔을 때 그 라인의 여성 노동자들은 재계약 서류를 받지 못하였다. 흩어진 노동자들은 다시 인력 파견업체에 등록하고 각자의 공장 일터를 찾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이어오고 교육에도 나온 것이라고 한다. 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은 대체로 강렬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이들이 많다. 

최근 만났던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려 드렸다. 통계적 의미나 직종별 대표성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우연한 만남 속에서도 속 깊은 질문을 하고자 애썼다. 자신의 노동 속에 깊숙이 잠겨있는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이 특별한 경험이며 자신의 이야기가 사회적 맥락 속에 있음을 지나치기 쉽다. 사실 모르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노동이 소중하고 자신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여성 노동자들은 안다. 말을 걸어 그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 노동을 위해 몸을 견디는 것,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돌아보고 생각할, 질문을 만나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

다음에 살펴 볼 정부의 산업재해 통계도 여성 노동자들의 침묵을 기본값으로 설정하도록 근거를 주고 있다. 산재보험 이용 통계 속에서 여성들은 훨씬 적게 등장하며, 산재보험 요양을 적게 받은 것은 여성 노동자들이 ‘아프지 않아서’ 라고 정부는 해석하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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