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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현장의 여성 건강권 1 -<직장갑질119> 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발화

기획 [의료, 젠더를 말하다] 14 건강미디어l승인2019.03.07l수정2019.03.19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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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들어가며 - ‘아프다’는 말

지난 며칠치 신문을 모았다 보는 주말, 페미니즘 이슈가 가득하다. 사회면, 문화면, 서평 어디를 펼쳐도 여성 이슈를 만날 수 있다. 심층 인터뷰를 전하는 일간지의 고정란은 ‘여성주의 의료’를 펴고자 하는 여성 의사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그렇죠. 젊은 여성들이 아픈 건 그들이 불안하고 예민하고 정신적으로 취약한 존재라서 그렇다고 보는 경향이 있어요. 의사들이 남성 환자에 비해 여성 환자의 통증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건 외국에서 나온 연구 결과에도 있어요. 실제로 젊은 여성이 처해있는 불안정한 노동시장, 성폭력적인 사회 환경 같은 사회적 조건은 도외시하고, ‘젊은 여자들은 툭하면 아프다고 해’ 라고 하는 건 잘못이죠” (한겨레, 2018년 6월 2일)

그렇다. 여성, 노동자들은 아프지만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다. ‘아프다’는 사회적 맥락에서 아픈 것을 의미한다. 여성을 도구화 대상화 하는 사회 안에서 개인으로서 존엄을 지켜내기 위한 의미 있는 투쟁이 시작되고 있는 시기에 ‘아프다’ 라고 말하는 것을 시작해야 한다. 이는 생명과 건강, 안전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여성을 비껴 갔던 현실로부터 출발하기에 인권운동이기도 하다. ‘아프다’고 말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발화(發話) 자체가 운동이 된다. 

1. <직장갑질119> 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발화(發話)

2017년 11월, 일하면서 겪는 다양한 문제들을 고발하고 상담하는 창구로서 노동자, 직장인들에게 문턱을 낮추어 다가간 노동상담 네트워크 <직장갑질119>가 만들어졌다. <직장갑질119>의 출범과 관여하고 활동하면서, 말하는 행위가 운동이 되는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송년회에서 춤을 춰야 했던 병원 여성 노동자들의 분노는 말할 곳을 찾기 전까지는 예민한 개인이 감당해야 할 안 좋은 기억으로 묻혀 있었다. <직장갑질119> 오픈 카톡방과 이메일로 목소리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송년회 장기자랑’ 은 남성 중심 문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노동환경을 보여주는 집단적 경험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병원, 보육시설, 어린이집 등 보건의료, 사회복지 서비스 시설에서는 ‘김장’에 대한 제보가 이어졌다. 밤샘 근무 후 바로 김장  담그기에 동원된 간호사들, 시설에 필요한 김장을 직접 담그는 교사들. 여성 노동자가 주로 종사하는 업종에서 김장 담그기 노동이 행해지고 있었다. 간호사들이 담근 김장은 병원장의 이름으로 지역사회 ‘불우 이웃 돕기’ 행사에 기부되었다고 한다. 겨울철에 출범해서 일까, 직장에 김장에 동원되는 여성 노동자들 상담이 많았다. 여성 노동자가 직장에서 맡은 공적 직무 외에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돌봄 노동까지 무상으로 강제로 수행해야 하는 현실을 ‘김장 담그기’ 가 보여 주었다.    

골프장 캐디로 일하는 4~50대의 여성 노동자들은 눈이 오면 골프장 눈 치우기에 불려 나간다고 전해왔다. 수당 같은 건 없었다. 부당하다고 느끼는 노동자들이 항의하려고 하자 골프장 사장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년들’ 이라는 폭언을 했다. 골프장의 여성 노동자들은 사장이 한 욕설을 하나하나 상담 이메일에 적어 보냈다.  

<직장갑질119>에서는 작은 기업,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겪는 일도 별도로 분류할 수 있었다. 소규모 기업에서는 사업주나 관리자가 감정적 언어적 폭력만이 아니라 물리적 폭력까지 행사하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이 대목에서 최근 알려진 재벌기업 일가의 폭력 행위들에 대해서는 추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긴 하다- 사무실에서 업무상 지시를 할 때마다 물건을 던지고, 폭언을 하는 사업주의 폭력이 심해지자 위협을 느낀 여성 노동자는 회사를 퇴사했다. 그리고 다음날 노동부 근로감독관에게 회사를 고발했다. 노동부는 임금 체불 등의 명시적 불법 행위가 아니라면 개입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하였다.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고자 한 여성 노동자의 용기는 사회적 답변을 얻지 못하였다.

<직장갑질119> 의 상담과 제보가 가리키는 한국 노동자들의 직장은 권위, 위계, 서열이 조직의 원리 원칙이며, 이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문제 삼는 개인에 대해서는 응징과 보복을 가하는 조직이다. 보복은 직장내 괴롭힘으로 명명되는 부당하고 위법한 행위부터 애매하고 은밀하게 행해지는 모욕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행해진다. 개인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상담이 많기에 정확하지는 않으나, 직장내 괴롭힘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은 사무직, 전문직으로 보이는 노동자들이 많다. 병원, 어린이집, 방송작가, 대기업, 공공기관, IT, 출판, 디자인 등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직장내 괴롭힘을 호소하고 해결책을 찾고자 <직장갑질119>를 찾았다. 여기에는 성적 괴롭힘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직장갑질119> 상담에서 제조업, 생산직 노동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생산직의 노동에서 노무관리 방식과 사무직의 노동에서 노무관리 방식, 위계가 작동하는 방식이 다를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생산이 행해지는 그 자리를 CCTV가 지켜보고 있고, 불량이 나올 경우 CCTV를 돌려 해당노동자를 찾아내서 손해를 물어내도록 하는 공장의 사례가 상담으로 온 것을 보면서. 생산직의 노무관리는 더 직접적, 직설적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생산직 노동자들이 카톡, 이메일 등을 통해 노동상담을 시도하는 일이 거의 없는 것에는 다른 문화적 이유가 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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