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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가치: 또다른 삶 또다른 의료

2018 보건의료학생 홍성여름수련 후기 건강미디어l승인2018.08.23l수정2018.10.2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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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보건의료 학생 홍성 여름 수련 <같이, 가치: 또다른 삶 또다른 의료> 후기
이현석 (충청남도 홍성군 공중보건의사)

지난 7월 보건의료 학생을 대상으로 한 행사 소식을 들었다. 행사의 슬로건은 <같이, 가치: 또다른 삶 또다른 의료>, 주최는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였다. 그런데 포스터에는 ‘농장’에서의 삶을 체험한다는 설명이 있었다. 의료와 농장은 무슨 관계일까? 직접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마침 행사 장소인 홍성군 장곡면은 내가 일하는 지소에서 20분 거리였다. 학생 신분이 아니지만 참가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행사의 내용은 오전에 농사를 짓고 오후에 공부를 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나는 새벽 5시에일어나서 아침까지 참가자들과 함께 비닐하우스 일을 한 뒤 지소로 출근해서 진료를 하고, 다시 퇴근해서 저녁에 농장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강의를 들었다. 고된 일정이었지만 농장의 리듬을 따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채소는 늦잠 자는 인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더구나 날이 더워 일을 일찍 시작해서 일찍 마치는 시기였다. 과연 그렇게 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젊은 학생들이 단기간 합숙하면서 농사 체험을 한다? 형식은 농활과 비슷하다. 그런데 내용은 달랐다. 홍성에서 경험한 농업은 지금까지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것이 단순한 농업이 아닌 ‘사회적 농업’이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동기를 유인으로 하는 일반적인 농업과 달리 사회적 농업은 사회적 가치를 지향한다. 지역 커뮤니티와 농업이라는 수단을 활용해 사회 통합을 실현하고자 한다. 언뜻 보기에는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젊은협업농장과 행복농장에서 구체화할 수 있었다.

젊은협업농장은 독립된 농사 활동이 가능한 청년을 기르자는 것이 목표다. 농작물을 생산, 판매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농작업은 오후 4시 전후에 끝난다. 그리고 저녁 시간에는 ‘평민지역학교’라는 강좌가 열린다. 농사에 관련된 공부뿐 아니라 역사, 종교 등의 인문학 공부도 한다. 여기서 주안점은 청년들을 ‘지역’에 맞게 길러서 ‘지역’에 정착시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젊은협업농장과 장곡면은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 농장 구성원들은 일하고 교육받으면서 동시에 마을 행사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가한다. 그들이 머무는 곳 또한 마을에서 버려진 집을 농민들이 빌려준 것이다. 농장이 지역 주민과의 라뽀(rapport)를 쌓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행복농장의 키워드는 ‘돌봄’이다. 만성 정신 질환자, 노숙자, 자살 유가족 등 치유와 자립이 필요한 사람들을 농사일에 참여시킨다. 농장 생활을 경험하는 단기간의 프로그램과 고용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농장이 재활을 담당한다. 과거 요양시설에 소속되었던 만성 질환자가 성공적으로 행복농장에 정착한 사례에서는 정신의학에서의 탈원화(dehospitalization)가 떠올랐다.

이 농장들과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닮은 점이 많다. 첫째, 의료사협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아 과잉 진료에서 자유롭듯이, 사회적 농장 역시 생산성만을 좇지 않고 일과 교육, 일과 돌봄 간의 균형을 찾는다. 둘째. 의료사협과 사회적 농장은 지역과 결합한다. 의료사협이 지역 주민들의 주치의 역할을 담당하고 교육이나 문화 활동의 매개가 되듯이, 사회적 농장 역시 지역 주민들과 관계를 강조한다. 농장에서 교육받은 청년이 인근 농장에서 독립하는 방식으로 지역을 활성화시키기도 한다. 셋째. 협동조합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조합원에 의해 민주적으로, 투명하게 운영된다.

우연의 일치일까. 농장에서 멀지 않은 홍동면에 의료생협(한국의료사협 소속)이 있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공중보건의사로 홍동면에 왔던 이훈호 선생님이 젊은협업농장을 세운 정민철 선생님을 만났다고 한다. (학생들과 모인 자리에서는 구체적인 교류의 내용 대신 함께 술을 많이 마셨다는 이야기로 갈음했다.) 이훈호 선생님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고민했던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2년 공부 모임을 시작하고 3년간의 준비를 거친 끝에 2015년 우리동네의원을 개원했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조합원을 모으고 의원을 세우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홍동면은 과거부터 협동조합의 경험이 누적된 지역이었기에 비교적 수월하게 정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농업과 의료를 접한 이번 캠프에서 내가 고민한 화두는 커뮤니티였다. 흔히 공동체로 번역되는 커뮤니티는 도시에서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공동체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젊은협업농장과 행복농장에서는 땅과 일, 사람을 결합하면서 커뮤니티를 강화한다. 의료사협에서는 건강을 매개로 커뮤니티를 만들고 활성화한다. 그러나 커뮤니티에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젊은협업농장에 오는 청년들은 사생활을 간섭 받는 농촌 문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피곤해도 마을 잔치에 가야 하고, (가서는 젊으니까 일을 해야한다.) 내 돈 내고 식당에 가고 싶어도 어르신이 밥을 차려주면 꼭 먹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예의가 아니라, 커뮤니티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에 가깝다. 우리동네의원이 속한 홍성우리마을의료생협에서는 다수결이 아닌 만장일치 방식을 택하기 때문에 일을 처리하는 속도도 느리다. 여러 면에서 불편한데도 더 견고하고 평화로운 커뮤니티를 위해 양보하는 것들이다. 결국 커뮤니티를 통해 사람들은 더 행복해질까? 아마도 그렇다. 다만 고민은 남아있다.

확답을 하기에 앞서 일단은 지역과 더 결합하자고 다짐한다. 농사일을 체험해보니 보건지소에 오시는 어르신들이 왜 그렇게도 허리통증을 호소하는지 알게 되었다. 하루라도 일을 쉬면 땅이 관리가 안 되는 농사일의 특성상 진통제를 달고 살 수밖에 없다. 이제는 한 마디라도 더 이야기를 나눈다. ‘일하다가’ 그러셨냐고 넘어가지 않고 어떤 일을 하셨는지 물어본다. 고추를 따다가 그랬다, 참깨를 베다가 그랬다는 말이 돌아오면 농사 짓는 모습을 떠올린다. 홍성 여름 수련이 틔운 작은 변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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