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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십자의료협동조합

우리나라 의료 협동조합의 역사와 현황(2) 백재중l승인2017.12.25l수정2017.12.2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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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의료 협동조합의 역사와 현황(2)

우리나라 의료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의료 협동조합을 그리다>(백재중 지음, 건강미디어협동조합, 2017) 5장 '우리나라 의료 협동조합의 역사와 현황'을 몇 차례 나누어 연재한다......

부산에서 1968년 5월 13일 장기려 등에 의해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이 초량동 복음의원에서 창립되었다. 여기에는 일제 강점기 협동조합에 관여했던 분들이나 50년대 후반 이후 홍성 지역 풀무생협 활동하던 분들이 참여하게 되는데 인적인 면에서 과거의 협동조합 운동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홍성 풀무학교 교사로 있다가 덴마크에서 농업과 협동조합을 공부하고 돌아온 채규철의 제안으로 이루어졌고 홍성 풀무학교 졸업생 황학석이 직원으로 참여하며 사상가 함석헌 선생이 조합원 1호로 가입한다.10) 가족 단위 조합 가입을 명문화하였다.11)

창립 당시 23개 교회의 신도를 중심으로 723명이 시작하였으며 첫 해 회원 수는 1,662명에 불과했다. 의료보험에 대한 인식이 없던 시기여서 가입을 설득하기가 어려웠던 면도 있었다. 조합원 1인당 월 60원씩 낸 첫 달 보험료는 1주일 만에 환자 2명의 치료비로 바닥이 나버리는 등 초창기엔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렸다. 

1969년 4월 스웨덴 아동보호재단SSCF의 피보호자를 중심으로 만든 부산의료협동조합과 통합하면서 청십자의료협동조합으로 개편하였는데 조합원은 1만 4천 명에 이른다. 사업의 성공이 일반에 알려지면서 1970년 서울에 이어 1972년 광주, 인천, 수원, 제주, 경주, 대구, 대전, 전주 등지로 청십자 운동이 계속 확산되었다.12) 서울의 청십자 운동은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1970년 5월 19~20일에 ‘사회복지와 의료보험’ 세미나가 개최되면서 출발하는데 풀무학교 출신 황학석, 정해열 등이 직원으로 참여한다.

이러한 운동의 성과로 1972년 11월 2일 ‘한국청십자의료협동조합중앙회’가 창립되기에 이른다. 1972년과 1973년 많은 지역에서 의료 협동조합을 추진하였으나 서울, 대전, 전주, 대구 등 7개 조합에 대해 보사부가 인가를 해 주지 않았고, 1974년에는 춘성, 춘천, 백령, 거제, 영동 등만 인가하여 협성, 동해, 거주, 영덕, 대전, 대구는 미인가로 조합을 구상하였다고 한다.13)

또한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의 영향으로 전국 각지에서 적지 않은 수의 자영자조합 설립 인가 신청 및 청원서를 보사부에 제출했고 보사부는 그 중 일부를 인가해 모두 8개의 자영자 조합이 공식 출현했다. 의료보험법에 따라 공식 인가된 조합은 피용자조합 4개(호남비료의료보험조합, 봉명흑연광업소의료보험조합, 대한석유공사의료보험조합, 협성의료보험조합)와 자영자조합 8개소(부산청십자의료보험조합, 옥구청십자의료보험조합, 춘성의료보험조합 등)로, 모두 12개소에 이르게 됐다. 이 12개 의료보험조합이 1977년 정부가 정식 의료 보험사업을 개시할 때까지 공백기를 메워주게 된다.14)

1974년에 부산시가 변두리 영세민 5천 명의 가입비 50%, 회비 50%를 부담하면서 한꺼번에 청십자의료협동조합 조합원으로 가입시켜준 데다 각 가정을 방문, 보험가입을 권유하는 등의 활동에 힘입어 회원 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 1975년에는 조합원이 2만 명 선에 이르게 된다. 1975년 후원자들로부터 5천만 원을 기부 받아 청십자병원을 개원하면서 자립 기반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1977년 1종 의료보험 실시와 함께 많은 직장인들이 조합에서 빠져 나갔지만 조합은 흔들리지 않았다. 

1980년대 들어 상호 부조적 의료보험 제도의 필요성을 느낀 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회원 수가 급격히 늘어나 1981년엔 조합원이 41,828명으로 불었고, 재정도 5천여만 원의 흑자까지 낼 수 있었다. 이때부터 조합 사무실 확장에도 나서 81년 6월 동래 지부를 설치한 데 이어 1985년까지 매년 지부 1개씩을 늘려 모두 5개의 지부를 설치했다. 가장 어려운 보험료 징수도 자진 납부율이 95%를 웃돌았으며 회원들의 적극적인 호응에다 조합의 알뜰 운영 등에 힘입어 해산 전 해인 1988년에는 15억 원 이상 흑자를 기록했다. 

1989년 7월 1일 정부 주도의 도시 지역 의료보험이 시작되자 자신의 사명을 다했다는 판단에 따라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은 전날인 6월 30일 자진 해산한다. 이 조합 출신의 실무자들이 정부 주도의 의료보험 제도에도 참여하여 운영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15) 해산 당시 적립금 30억 원과 병원 등 종합 자산이 40억 원, 그 동안 보험 혜택을 본 진료 연인원은 788만여 명에 이른다.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의 해산으로 한국청십자사회복지회가 기금을 받아 청십자 운동을 지속해 나간다.16)

 

참고 문헌

10. 정원각, 「협동조합 운동의 개념과 의미, 역사, 현황 그리고 각국의 사례」, YMCA 간사학교, 2009.
11. 박봉희, 「의료협동조합 총론」 (cafe.daum.net/educoop)
12. 조성우, 공단 이사장 「청십자 운동을 아시나요?」, 『헬스포커스』 2013.6.11. 
13. 김형미 외, 『한국생활협동조합운동의 기원과 전개』, 푸른나무, 2012.
14. 조성우, 공단 이사장 「청십자 운동을 아시나요?」. 『헬스포커스』 2013.6.11.
15. 김형미 외, 『한국생활협동조합운동의 기원과 전개』, 푸른나무, 2012.
16. 강진권, 「해체되는 부산 청십자의료보험, 영세민 지키기 21년」  『중앙일보』 1989.5.23.

 

백재중  jjbaik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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