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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시기의 의료 협동조합

우리나라 의료 협동조합의 역사와 현황(1) 백재중l승인2017.12.24l수정2018.07.1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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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시기의 의료 협동조합

우리나라 의료 협동조합의 역사와 현황(1)

▲ <의료 협동조합을 그리다> 표지

우리나라 의료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의료 협동조합을 그리다>(백재중 지음, 건강미디어협동조합, 2017) 5장 '우리나라 의료 협동조합의 역사와 현황'을 몇 차례 나누어 연재한다. 

우리나라 협동조합 운동은 일제 강점기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의료 관련 협동조합들이 독자적으로 활동하지는 않고 다른 협동조합 활동의 일환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총독부의 폭압 정치에 의해 협동조합들은 강제적으로 폐쇄되기에 이른다. 해방 후 관 주도의 농업 협동조합이 시작되고 1960년대 들어 신용 협동조합 운동도 시작된다. 의료 분야에서는 1968년 청십자의료협동조합, 1976년 난곡희망의료협동조합이 설립되어 민간 의료보험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들은 1980년대 후반 공적 의료보험이 시행되며 문을 닫는다. 1990년대에 소비자들이 중심이 되어 의료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들을 설립하기 시작한다.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이들 의료생협들은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료사협)으로 전환하며 다른 유형의 의료 관련 협동조합들이 설립되기 시작한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협동조합이 처음 설립된 것은 1920년으로 추정된다. 5월 15일 목포소비조합이 결성되고 이후 서울에도 소비조합이 설립된다. 1920년 4월 설립된 조선노동공제회1)는 부속기관으로 소비조합 결성을 결의한 후 1921년 7월 1일 창립된다. 이후 소비조합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나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쇠퇴하게 된다. 1920년대 후반에 동경 유학생들, 천도교, YMCA 등에 의해 협동조합 운동이 다시 활기를 띠게 되는데 협동조합 운동의 활발해지자 이것이 독립운동으로 발전할 것을 두려워하여 일제는 협동조합 운동을 탄압하기 시작한다.2) 1930년대 초반에는 대략 1천여 개의 협동조합과 10만여 명의 조합원이 협동조합 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당시 협동조합들의 의료 관련 사업들은 단편적으로 전해진다. 1928년 원산노동연합회는 조합원의 진료비 절감을 목적으로 노동병원을 설립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노동연합회가 진행한 교육 사업, 소비조합, 이발소, 구제부 등의 사업 중 하나였다.3) 1929년 원산 YMCA에서도 원산 협동소비조합을 설립하는데 여기서는 조합원들에게 다양한 혜택과 더불어 병원 이용 시 할인 혜택을 주었다고한다.4)

1931년 『동아일보』 기사는 소비조합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평북 곽산소비조합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지난 22일 저녁부터 밤이 깊도록 곽산소비조합 이사회 동 조합 회의실에서 이사장 김국세 씨 사회로 모였었다. 새로운 방침으로 부속병원을 설치하여 조합원에게는 실비만 받고 연 1회 무료건강검진을 하기로 하였다. 병원 곽산의원장 신유권 씨는 조합장인 만치 자기가 경영하던 곽산의원을 소비조합 병원으로 하리라 한다.”(『동아일보』 1931년 4월 26일자, 5면)5)

당시 노동연합회나 소비조합들이 다양한 복지 사업들의 일환으로 의료 사업들을 시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규모나 방식들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독립적으로 의료 협동조합이 있었다는 흔적도 확인 안 되고 있다. 1930년대 중반부터 군국주의가 강화된 일본은 대대적으로 협동조합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협동조합 지도자의 구속, 협동조합 자산의 몰수가 진행되었고 1937년 총독부의 협동조합 폐쇄 명령에 따라 아래로부터의 협동조합 운동은 소멸되었다.6)

해방 후 의료 제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국영의료 체계론’과 ‘미국식 보건 의료 체계 수용론’ 사이의 논쟁이 벌어지는데 최응석7) 등은 ‘국립병원-협동조합 병원-개인 개업의’, 3축으로 구성되는 국영 의료 시스템 구축을 주장한다.

“인민 대중의 보건은 인민 자신의 임무라는 것을 실천하여야 할 것이다. 노동자의 보건을 노동자 자신이 관리하는 자주적 의료 기관의 설치가 제기되어야 될 것이다. 실비 진료소, 협동조합에 의한 의료 이용조합 결성 등의 의료의 실질적 사회화가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주장이 있었다는 사실로 볼 때 당시 협동조합 병원에 대한 인식이나 전망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논쟁이 이루어지던 시기는 미군정 지배 아래 있던 때여서 결국 미국식 의료 체계가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 국영 의료 체계론은 쇠퇴한다.8) 그러나 미국식 의료 체계는 민간 병의원에 기초한 것으로 이들이 도시에 몰리는 경향이 있어 시골이나 오지에는 여전히 의료 접근성에서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협동조합 방식의 의료 기관 설립 문제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대두된다. 1950년 3월 보건부는 무의면 일소 대책으로 ‘국민의료이용조합’ 설립이라는 안을 내놓았는데 이는 국가가 의료 시설과 기구, 의약품을 제공하고 무의면 주민들이 낸 조합비로 운영한다는 안이었다. 이 안이 나오고 바로 전쟁이 터져 실현되지는 않았다.9)

 

참고문헌

1. 우리나라 최초 전국 규모의 근대 노동단체다.
2. 정원각, 「협동조합 운동의 개념과 의미, 역사, 현황 그리고 각국의 사례」, YMCA 간사학교, 2009.
3. http://cafe.daum.net/medicommunity/8plw/35
4. 김형미 외, 『한국생활협동조합운동의 기원과 전개』, 푸른나무, 2012.
5. 김형미 외, 『한국생활협동조합운동의 기원과 전개』, 푸른나무, 2012.
6. 김기태, 「한국 협동조합의 역사와 동향」, 『일하는 여성』 91호, 2012.
7. 평양에서 태어난 최응석은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가 1933년 도쿄 제국대학 의학부에 입학한다. 4학년 때인 1936년에는 울산에서 사회 위생 조사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당시 일본에서 운영되던 실비 진료소, 의료이용조합 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8. 최규진, 『한국 보건의료운동의 궤적과 사회의학연구회』, 한울, 2016.
9. 전우용, 『현대인의 탄생』, 이순, 2011.

 

 

 

 

백재중  jjbaik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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