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7.11.30 목 10:55

과학적 근거가 있는 치료법이란?

건강미디어l승인2017.09.04l수정2017.10.0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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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근거가 있는 치료법이란?

손창호 (인권의학연구소 소장)

“교과서적 진료”를 한다는 말은 의사들 사이에선 좋은 뜻이다. 이럴 경우 “교과서적 진료”란 “교과서에만 있는 고리타분한 진료 방법”이 아니라 “교과서에 실릴 수 있을 정도로 과학적인 근거가 명확한 진료”를 한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여 교과서에 실릴 수는 없지만 의사에게 돈을 많이 벌어주는 진료”는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건강보험 수가 체계가 의사에게는 박한 한국사회에서 “교과서적 진료”를 고집하는 의사는 그래서 아주 좋은 의사이다. 


모든 환자는 효과 있고 부작용이 적은 치료를 받기 원한다. 그리고 이런 치료를 받을려면 효과가 입증이 되고 안전성이 확립이 된 치료 방법 즉 과학적인 근거를 갖춘 치료를 선택해야 한다. 그럼 과학적인 근거는 어떤 단계를 거쳐서 만들어질 까?

과학적인 근거가 갖추어 질려면 먼저 그 치료법이 논문이란 형식을 통해서 발표된 바가 있어야 한다. 의학 분야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였다면 제일 먼저 학회를 통해 발표를 한다. 그러나 학회 발표는 대개 그 발표내용의 과학적인 근거에 대해서는 별로 심사를 하지 않는다. 즉 학회 발표라는 것이 그 발표의 신뢰성을 높여주지는 못한다. 대개 학회라는 곳은 그것이 말이 되든 안 되든 뭔가 새로운 것이라면 발표하는 것은 허용하고 이를 학회라는 공간에서 토론해 보게 하는 것이다. 또 사실 학회라는 것의 기능이 그런 것이기도 하다. 보통 학회 발표를 해보고 내가 주장하는 것이 그럴 듯하다는 동료들의 동의를 얻었을 경우 “논문” 이란 것을 쓰고 이를 학술 잡지에 실어달라고 보낸다. 논문은 내가 주장하는 바에 대한 연구의 목적, 실제 연구 시행과정, 결과 및 분석 내용을 기술해야 만 하며, 이 모든 것은 같은 분야에 있는 다른 교수나 의사로부터 검증을 받게 된다. 따라서 만일 이중 무엇이라도 근거가 명확치 않다면 내 논문은 그 잡지에 실리지 않게 된다. 물론 학술 잡지라고 해도 그 수준차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소위 수준 높은 잡지 일 수록 이런 검증과 심사 과정은 까다롭고 그 경쟁도 치열하여 어지간히 새로운 내용이 아니고 또 그 근거나 실험 방식이 정확하지 않고는 실리기가 어렵다. 하지만 논문으로 발표되었다고 하는 것은 정말 최소한이다. 논문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1) 연구의 시작 “증례”

예를 들어보자. 기분이 아주 우울한 김씨라는 사람이 있었다. 김씨가 A 라는 약을 먹고 1주일후에 우울증이 감쪽같이 좋아졌다. 그럼 A 는 우울증에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가? 당연히 A가 우울증을 치료한다고 말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경우 우울증의 호전은 여러 가지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진단이 맞느냐 하는 점이다. 혹시 우울증이 아니고 그냥 기분이 좀 나쁜 정도를 우울증으로 오진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즉 돈 100만원을 잃어버려 기분 좀 나빠진 김씨가 1주일 후 복권이 당첨되어 좋아진 것을 우울증이 낫았다고 호들갑 떨었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는 우울증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경과에 의해 저절로 호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통상 첫 발병후 우울증은 대부분이 2 내지 3개월 이내에 일단은 저절로 호전된다. 즉 원래 좋아질 환자가 그 시점에 A를 먹고 증상이 호전된 우연의 일치, 오비이락 일 가능성이다. 셋째는 환자가 먹었던 다른 약이나 또는 음식 등에 의해서 우울증이 호전되었을 경우이다. 약을 먹고 나니 다음날부터 설사를 하거나 두드러기가 난다고 약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 원인이 사실은 어제 먹은 아이스크림이나 고등어 조림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래서 A 약을 먹고 우울증이 나은 김씨의 경우는 그냥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 일 뿐이다. 즉 이것은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못된다.

그런데 만일 위 김씨의 경우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진단을 내려 주요우울증이란 것이 확실하고 김씨는 현재 알려진 우울증에 영향을 미칠만한 다른 약이나 치료를 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잘 조사되어 있고 기타 다른 내과 외과적인 문제에 대한 검사도 뒷받침된다면 이제 이것은 증례 라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 김씨에 대한 병력이나 치료효과를 잘 정리하고 다른 전문가들도 그럴듯하다고 여겨진다면 “증례” 라는 논문 형식으로 학술잡지에 실리게 된다. 이 증례는 그야 말로 “A는 우울증에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있을 걸?” 이란 정도를 알려주고 이제 다른 연구가 시작되는 출발점이 된다.

2) 증례를 확인하는 임상 시도

보통 다음 단계로 행해지는 연구는 “임상시도” 정도 된다. 즉 경험 많고 충분한 훈련을 받은 정신과 전문의가 진단한 우울증환자 여러 명, 예를 들어 100 명을 대상으로 A라는 약을 사용해 보는 것이다. 그랬더니 60명의 환자가 A를 복용한 지 1달만에 호전되었다. 자 그럼 A는 우울증 환자에서 60%의 치료율을 보이는 효과적인 치료법이라 할 수 있는 가? 이것도 아직 효과적이라 하기는 이르다. 일단 이 경우는 앞의 단일 증례와는 달리 우연에 의해 약물 효과가 나왔을 가능성은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런 연구는 소위 위약 효과(Placebo effect) 라는 중요한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직 A는 우울증에 효과적이라 얘기하기는 이르다. 이제 “A는 우울증에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라고 얘기할 정도가 되었다.

3) 절대로 가짜가 아닌 위약 효과

위약 영어로 플라시보(placebo) 라는 것은 결국 가짜약이란 것이다. 밀가루나 맹물과 같이 신체에 별다른 득도 해도 주지 않는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이 위약은 성분은 가짜이지만 그 효과는 진짜이다. 파킨슨병은 뇌의 흑색 선조체(Striatum nigra) 라는 곳의 신경 세포가 고장나서 결과적으로 도파민이란 물질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병이다. 이 도파민이란 물질은 우리 몸의 운동신경에 필수적이다. 도파민이 부족해지면 손발이 떨리고 몸이 굳어서 발음도 어눌해지고 걸음도 종종 걸음으로 변하다가 종내에는 걷지를 못하게 된다. 2000년 미국 신경과학잡지(Neurology) 에 실린 논문에는 가짜약을 먹은 파킨슨병 환자의 17%가 효과를 보았다고 보고하였다 (Neurology 2000;54:710, Objective changes in motor function during placebo treatment ) 요즘 우리 국민들에게 친숙해져버린 사이언스 에서는 2001년 가짜약을 먹은 파킨슨 환자의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을 PET 라는 뇌영상 기법을 이용하여 증명한 논문이 실렸다(Science. 2001 Aug 10;293(5532):1164-6 Expectation and dopamine release: mechanism of the placebo effect in Parkinson's disease. )

이처럼 위약은 우리 신체에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우리 체내에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마약이라 할 수 있는 엔돌핀의 분비를 촉진시키고 몸의 운동 기능 및 기분에 영향을 주는 도파민도 생성시킨다. 이런 위약 효과는 할머니 손이 약손인 것처럼 통증을 완화해 줄 뿐 아니라 파킨슨병을 호전시키고 우울증을 개선시키고 불안을 감소시키고 잠이 잘 오게 해주며 몸의 면역 체계에도 영향을 준다. 위약 효과는 보통 15-30% 정도의 환자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그 정도는 환자의 증상의 종류, 정도, 시기, 분위기 등등 여러 가지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어떤 경우에는 위약효과가 80%에 육박하기도 한다.

우울증의 경우 어떤 연구에서는 진짜 약을 먹은 사람중 60% 이상이 호전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짜약을 먹은 사람 역시 60%에서 효과를 보이는 바람에 결국 그 약이 우울증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실패한 적도 있다. 따라서 위약효과에 대한 연구 없이 어떠한 치료법도 효과적이라 말할 수는 없다. 최소한 약이라고 할려면 밀가루보다는 효과가 좋아야 할 것 아닌가?

3) 제대로 된 연구 “위약-대조군 연구”

100 명의 정확히 진단된 우울증 환자에서 50명은 가짜약을 주고 50명은 약 A를 준다(환자가 진짜를 먹는 지 가짜를 먹는 지는 먹는 환자나 주는 의사나 모두 모르게 하여야 한다) . 그리고 1개월후 효과를 보니 가짜약 먹은 환자의 10%에서 A를 먹은 사람 중 70%에서 우울증이 호전되었다. 다른 조건들이 가짜약 먹은 사람과 진짜약 먹은 사람 간에 차이가 없다면, 예들 들어 성별, 나이, 신체의 건강 상태, 우울증의 심한 정도 등등이 비슷하다면 이제 우리는 “A가 우울증에 효과적일 가능성이 많다.” 라고 말한다.

4) 정말로 사용해도 되는 지 확인하는 후속연구 그리고 메타분석 연구

당연한 얘기지만 한 곳에서 위약-대조군 연구하였다고 결론 나는 것은 아니다. 누가 아는 가 그 연구를 한 사람들이 데이터를 조작하였다던 지 아니면 고의는 아니어도 연구에 실수를 하였던 지 그것도 아니라면 하필 그 연구에서 약 먹고 좋아진 사람 중 90% 이상이 사실은 약에 의해서가 아니라 저절로 좋아질 팔자였던 사람인지를. 마누라도 못 믿는 세상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한 연구를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후속의 연구가 필요하다. 서양 사람에게 효과적이었다고 된장 먹는 한국인에게 효과적이라는 보장이 없으니 이도 확인하고 앞의 연구가 진짜인지도 확인하는 등 비슷한 연구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게 된다. 또한 효과뿐 아니라 안전하다는 측면에서도 확인이 필요하다. 좌우간 이런 모든 과정을 거쳐서 살아남을 경우 우리는 “A는 우울증에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많다.” 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후속 연구가 줄을 잇게 되면 어떤 연구에서는 처음과 비슷하거나 같은 결과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다른 연구에서는 정반대로 효과가 전혀 없었다고 나타나기도 한다. 그럼 이런 연구들이 어느 정도 양이 되었다고 싶으면 그동안의 모든 연구를 보아서 전체적인 연구 결과를 총정리 하는 논문을 누군가 쓴다. 이런 내용을 보다 질적인 측면에서 종합한 것이 종설이라고 한다면 양적인 측면에서 종합하여 통계 결과까지를 제시하는 것을 메타분석 연구라고 한다. 메타분석 연구 정도까지 오게 되면 대개 실험한 횟수나 실험한 대상의 숫자도 상당히 되기 때문에 이 정도 과정에 이르러서도 A가 효과가 있다고 결론이 난다면 우리는 “A가 우울증에 효과적인 것은 거의 맞다” 라고 얘기할 수 있다.

5) 그래도 계속되는 실험, 임상 적용

A가 효과적이며 안전하다는 각종 테스트를 통과하여 미국의 경우 FDA 우리나라의 경우 보건복지부의 인가를 받으면 환자에게 사용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인간이 하는 일이 완전한 것이 없다. 이런 여러 단계를 통과하였다고 하더라도 실제 환자에게 장기간 사용해 봐야지만 결국 안전한 지, 효과는 확실한지를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 자체가 대규모 임상실험에 참여하는 것이다. 잘 알려진 얘기지만 비아그라가 심장질환을 일으킨다는 사실, 꿈의 진통제라고 불리우던 바이옥스 가 심근경색을 일으켜서 시장에서 퇴출된 것 등이 잘 알려진 사건이다. 정신과에서는 트립토판(tryptophan) 이란 물질이 그 중 하나이다.  트립토판은 세로토닌이란 물질을 인체내에서 만드는 데 사용되는 원료에 해당되는 필수아미노산의 하나이다. 누구나 들어본 필수 아미노산은 바로 인체내에 꼭 필요한 영양소라는 얘기이다. 세로토닌은 우울증이나 수면 장애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알려진 물질이다. 따라서 필수아미노산인 트립토판을 먹으면 세로토닌도 자연히 많아질 것이고 그럼 우울증도 좋아지고 불면증도 좋아질 것이라는 추리는 아주 과학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더구나 필수 아미노산 이니 많이 먹으면 건강해 질 것이고 중독성이나 성가신 부작용도 없을 것이니 완벽하다고 생각을 하였다. 잠이 안 오는 사람에게 트립토판을 주니 정말 잠을 잘 자고 우울한 사람에게 주니 우울증도 좋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학자들도 흥분하고 의사들은 트립토판을 처방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수년후 트립토판은 호산구증가 근통증 증후군(eosinophilia myalgia syndrome) 라는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이 밝혀졌다. 결국 트립토판은 미국의 경우 시장에서 퇴출되었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의사의 처방 하에 조심스럽게 사용하도록 규제를 받게 되었다.

이렇게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아무리 똑똑하고 자격증도 찬란한 세계의 두뇌들이 연구를 한다고 해도 완전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최소한 우리가 그 치료법을 시도할 만한 가치는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최소한의 요건이다. 이러한 근거마저도 없다면 그 치료법은 시골 약장사의 “비얌” 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대부분의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우울증이나 조울증도 치료시기가 늦을 경우에는 점점 더 문제를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이것 해봐서 안 되면 딴 거 해보지 하는 생각으로 이것 저것 시도해 볼 수는 없다.

우리가 치료법을 선택하는 데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근거는 과학적 근거이다. 과거 이 치료법을 사용해서 치료효과가 어땠는지 부작용은 무엇이 있었던 지 와 같은 근거가 정확하고 신뢰성 있게 과학적인 용어로 정리되어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그런 치료법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이런 과학적인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면 단언하건데 그런 치료방법은 절대로 택해서는 안된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최소한 당신이 시도해 볼만한 과학적인 근거를 가진 치료법만 하여도 수십가지는 족히 된다. 구태여 근거가 불명확한 것 까지 시도해 보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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