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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역사를 지독한 냄새로 담아낸 정로환

윤영철l승인2015.08.10l수정2015.09.20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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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북아 역사를 지독한 냄새로 담아낸 정로환

          윤영철 _ 지원본부 사랑의의약품뱅크위원회 위원장 / 바로약국 약국장

가실때, 정로환 한 병을 가방에 넣어드렸다/멀리서 손주딸 살림을 들여다보러 온 처할머니가/선 채로 똥을 지렸다/다리를 타고 내린 덩어리 하나가/바닥에 멈추어 섰다/아내는 얼른 달려가 휴지로 그걸 훔쳐내었다/바지를 벗기고 노구를 씼겼다/딸아야,/아래를 잘 조이고 살아야 여자다/고개 돌려 모른 척하던 손주사위가/고개를 끄덕인다/끄덕인다/구멍이 헐거워/밑살이 야물지 않아/내 속이 늘 가지런하지 못했다/때론 분노를 때론 눈물을/몸에서 놓치곤 했다/늙는 다는 건/구멍이 느슨해진다는 것이 아니었다/얼마를 더 늙어야 /나의 구멍들을 다스릴 수 있을 건가/가실 때,/정로환 다섯알을 내가 먼저 꺼내 먹고/가방에 넣어드렸다 (정로환, 윤성한)

배가 사르르 틀면서 아프거나, 배탈설사로 고생할 때 찾는 정로환은 그 독한 냄새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사랑받아 온 의약품이다. 정로환(正露丸)에서 ‘露’자는 러시아를 뜻하는 말이다. 러시아는 한자로 '露西亞(로서아)'로 표기했다. 정로환은 동북아 격변기 역사를 약 이름부터 그대로 담아낸 의약품이다. 원래 정로환(征露丸)은 러시아를 정벌하다는 의미인데 약의 기원을 두고 지금도 설왕설래하고 있다. 1903년 육군군의학교 교관이었던 도츠카(戸塚機知)가 크레오소트가 살모넬라균에 탁월한 효능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해서 러일전쟁때 사용했다는 설과 1902년 오사카에서 약종상을 하던 나카지마에 의해서 개발되었다는 설이 있다.

원 개발자가 누구던지 간에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육군 군의관을 지낸 모리 오가이가 적극적으로 군대에 보급하게 되면서 정로환이 널리 사용되게 된다. 그는 물갈이에 의한 배탈설사와 더불어 각기병이 세균에 의해 발병하는 것이라고 믿고(후에 비타민B1의 결핍증에 의한 것이라고 밝혀진다.) 정로환 보급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처음에는 지독한 냄새 때문에 대부분의 병사들이 복용하지 않고 구덩이에 버리기 일쑤여서 모리는 ‘하루에 한 알씩 복용하라는 천황의 명“이라고 꾀를 내어서 먹게 했다. 러일전쟁에 승리하게 되자 원래 이름이 ’크레오소트환‘이었던 것이 러시아를 정벌한 약이라고 해서 ”정로환’으로 붙여지게 된다.


중도의 충용 정로환

"악역유행의 계절, 급성 만성 위장병은 정로환으로 격퇴. 육해군어용약
적리사, 적리, 티푸스등의 소화기계 전염병이 유행하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비등 특이적 병균에 인하여 악역이외에 각종 위장벽의 대부분은 세균의 독소로 인하여 토사, 복통, 경련,발열등의 증상을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위장약의 주요조건으로서는 제1에 살균, 다음에 소염, 수렴등을 구비하는 것이라야만 됩니다. 중도정로환은 이상의 효과에 있어서 특별히 우수한 약효를 발휘할 뿐만아니라 복약이 거의 절망시된 폐결핵에도 훌륭한 약효가 있는 것은 본제의 특이적 존재입니다. 전지에서 악역과 싸우는 빛나는 황군장사의 건강을 보존키위하여 특히 하면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 1938년 9월 21일 동아일보 광고

주치 효능: 위장카타르, 소화불량, 건위강장, 위약위통, 구토, 하리복통, 수상식상, 폐결핵, 폐첨조막염, 검담진해
주의: 정로환은 전국 저명 약점, 백화점이외에 누구에든지 취급을 일절 허가치 안하오니 비종 부정인에게 속지 안토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에 정로환은 ‘전몰기념환’으로 상표를 변경한 적이 있다.


정로환이 조선땅에 전해진 시기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1907년 7월 15일 황성신문에 정로환을 둘러싼 불미스런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제 강점기 이전에 전해진 것을 보인다. 또한 1935년 2월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군복을 입고 가짜 정로환을 팔고 다니던 협박범이야기가 나오고 당시 신문 광고에서  유사품에 주의하라는 문구로 보아서 널리 이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인 시절에 정로환은 군국주의를 찬양하고 선도하는 의도를 노골화하였다. 그들은 광고에서 ‘육해군어용약’이라며, 황군위문품의 최적의 약품이라면서 자신들의 제품을 사서 일본군들에게 위문품으로 보내라고 선전해댔다. 또한 상품명을 ‘전몰기념환’이라고 바꾼 적도 있을 정도로 일본의 군국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약품이었다. 

▲ 1940년 3월 20일 동아일보. 황군 위문품으로 최적약이라 광고하고 있다.

 

▲ 야스쿠니신사에 전시되어 있는 정로환.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일본정부는 ‘국제적 신의상’이라는 이유를 들어 정복할 정(征)자를 바를 정(正)자로 고쳐 쓰도록 전국의 제약회사에 명령하여 오늘날의 정로환(正露丸)이 되었다.

그들이 정복할 정(征)에서 바를 정(正)자로 고쳤다고 해서 일본이 군국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고 볼 수 없다. 2005년 전 세계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을 기념하며 평화를 기원하고 있을 때, 일본은 러일전쟁 100주년을 기념하며 나카소네 전 총리는 “러일전쟁은 아시아 민족에게 우리도 백인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며 연설했다. 이 자리에 전시되었던 진열품 중에 하나가 정로환이다. 또한 지금도 전범자들을 기리는 야스쿠니 신사에는 정로환이 버젓이 전시되어 있다.

해방 후 한반도에서 정로환은 국내에서 생산되지 못하고 일본에서 계속 수입해서 사용하게 된다. 국내에서 생산하게 된 것은 1973년부터이다. 동성제약의 창업주 고이선규회장이 다이쿄제약의 전 공장장을 기생방 등에 데려가 거나하게 대접해서, 약의 원료와 배합 비율 등의 비법을 얻어와서 생산하게 되었다는 야사가 전해질 정도로 국내 생산이 녹녹치 못했던 것이다.

▲ 1973.12.17. 동아일보. 동성제약이 정로환을 새롭게 발매


정로환은 본래 용도인 배탈, 설사뿐만 아니라 무좀, 탈모 등 근거없는 민간요법으로도 시대가 변하면서 다른 대체 약물들이 많이 나오게 되면서 사용량이 줄자, 냄새를 가리기 위해서 당의정 등으로 제조하여 판매되고 있지만 정작 문제가 된 것은 정로환의 독성 문제로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정로환의 주성분인 크레오소트는 목-타르를 증류하여 물보다 무거운 유분을 정제한 목초액을 말한다. 보통 나무의 방부제나 살충제로 주로 쓰인다. 크레오소트는 한 가지 성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페놀이나 크레졸 같은 다양한 방향족 화합물이 섞여 있는데, 기준 물질은 “구아이콜”이라는 성분을 사용한다. 여기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크레졸이라는 성분이다. 크레졸은 암을 유발하는 독성물질로 분류되어 있는데 아무런 안전성에 대한 재평가없이 판매되고 있어서 소비자들의 불안을 더 해주고 있다.

의약품하면 과학과 경험적으로 증명된 산물이라고만 생각하기 쉬운데 거의 모든 약품들은 역사성과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속성 때문에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평가없이 사용되기도 하고, 때론 사라지기도 하고, 다른 용도로 전용되어 의약품의 속성에서 멀어지기도 한다. 정로환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윤영철  mediahealth20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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