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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죽음을 같이 가면서 

『돌보는의료 사진이야기』, 방문의료연구회 건강미디어l승인2024.06.18l수정2024.06.1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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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따님이 보내주신 문자

90쯤인 어르신이 침대에 누워서 반응이 없었다. 흔들어 깨우면 희미하게 눈을 떴으나 혈압은 70대였다. 그래도 숟가락으로 뉴케어는 받아 드신다고 했다.   

어르신은 지난 1월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한 분인데 당시 욕창도 생기고 입안도 다 헐고 의사소통은 되었으나 보호자 표현엔 '형편없는' 컨디션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이전엔 지팡이 집고 실내는 다니셨었는데, 그래도 집에 와서 욕창도 다 낫고 이제 뉴케어도 잘 드시게 되었는데 며칠 전부터 식사를 다시 못하셔서 우리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중증 폐렴이고 상태가 좋지 않아 입원을 권했으나 딸은 단호하게 다시는 입원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 때문이 아니었다. 지난 입원과 퇴원, 수개월을 돌보며 고령의 아버지의 여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터였다. 그녀는 그 남은 여생이 얼마가 되든지 아버지가 가족 곁에서 소중히 여김을 받다가 돌아가시길 원했다. 우리는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존 혈압약을 먹지 말도록 조치하고 수액을 달고 산소를 대여하고 항생제를 처방하였다. 우리 간호사는 매일 방문했고 짧게는 30분, 길게는 몇 시간씩을 머물렀다. 1-2일이 지나면서 어르신은 눈도 뜨고 대답도 하고 뉴케어도 더 잘 받아먹고 혈압도 90대를 유지했다. 보호자는 너무나 기뻐했다. 어머니와 딸, 가족 같은 요양 보호사가 함께 힘을 합쳐서 아버지를 돌보고 정을 나누었다. 그러나 4일이 지나면서 다시 호흡이 나빠지고 5일째는 혈압이 다시 70대로 떨어졌다. 주말을 앞두고 소견서를 써드렸다. ‘만약에 돌아가시게 되면...’ 이런 설명들을 들으며 딸은 울음을 참지 못했다. 어깨를 들썩이며 그녀는 말했다. “아버지가 편안하게만 돌아가시는 게 바람이예요. 그런데도 눈물이 나네요...” 다시 한번 지금이라도 입원을 해보시겠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처음보다 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이렇게 정성껏 치료받고 돌봄을 받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나는 우는 딸을 한동안 안아 드렸다. 

돌아가셨을 경우의 조치까지 모두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는 우리에게 딸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감사하다고 하셨다. 어르신은 토요일 아침에 딸과 아내의 품에서 돌아가셨다. 
삶을 마감하는 시간은 삶을 유지할 때보다 더 장엄하고 밀도있는 시간이다. 꼭 더 지연시키고 늘이는 것만이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아니리라. 우리는 그 짧은 시간동안 충분히 사랑을 나누었다. 죽음 앞이었기에 더 진실한 유대와 헌신이 오갔고 이 주옥같은 시간들이 바로 우리의 삶을 삶답게 만드는 것이리라.  

이주리 안산의료사협 새안산의원 재택의료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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