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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왜 731부대를 읽는가

의료인의 의무와 사명 김정은l승인2015.01.07l수정2015.04.2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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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에서 심야기차를 타고 12시간 달리면 하얼빈에 도착한다. 그 곳에서 다시 남동쪽으로 15km 정도 버스로 가면 731부대 유적지가 있는 핑팡(平房)이다. 단체의 일정이 아니었으면 일부러 찾아오지는 않았을 곳. 내게 731부대란 그 숫자만 들어도 끔찍한 상상에 알기를 피해왔었으면서도 무슨 말 하려는지 다 안다는 식의 진부한 통증을 주는 이름이었다. 추운 지방이기도 했지만, 그 이름으로 훨씬 더 서늘했던 곳. 부대가 완성된 해가 1939년, 이 후 패전하기까지 무수한 사람들의 마지막 곳이었을 부대터는 일부 시설과 화장터의 굴뚝만 앙상히 서 있었다. 방마다 전시된 각종 실험에 쓰인 도구와 세균배양시설, 수술실, 영상 등에 몸서리 치다가 가장 뇌리에 박힌 것은, 벽면에 전시된 해부병리 표본들과 설명이 기술된 패널들이었다. 다른 공간에서라면 평범한 병리학 아틀라스였을 그것은 이 곳에서 생체로 시술되고 실험된 표본들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끔찍하게 다가왔다. 이렇게 얻은 ‘의학의 성과’를 전 후 미국과 협상하여 전쟁범죄를 묵인하는 대신 미국에 넘기게 된다. 전쟁을 통해 의학이 진일보해 왔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먼 서사로만 접해왔다. 그렇게 얻는 의학의 ‘진보’란 과연 무엇일까. 내내 정리되지 않은 채 돌아왔다.

▲ 731부대 전경

그래도 다녀온 덕분에 진작에 받아놓았지만 선뜻 읽히지 않았던 건강미디어협동조합의 ‘731부대와 의사들’을 펼쳐보았다. 무엇보다 누가 왜 이 이야기를 지금 건네는지 알고 싶었다. 이 책은 15년 전쟁(1930~1945년, 만주사변과 제2차 세계대전까지)시 일본의학/의료계가 저지른 비인도적 전쟁범죄를 반성하고 검증하고 그 교훈을 살려가고자 일본 의학자/의사들이 2006년 이 후 ‘전쟁과 의학’ 전시실행위원회, 전쟁과윤리검증추진회, 의료윤리-과거,현재,미래-기획실행위원회를 조직하며 조사한 자료들이다. 아직까지 일본의학회에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2012년 이 후 독립적으로 국제 심포지엄과 패널 전시를 실시해 왔다. 고의적인 증거인멸로 자료가 많지 않은 와중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들을 두루 인터뷰하며 자료를 모아온 70~80대 노학자들의 노력과 진심이 담겨있다.

만주 731부대에서 직접 실험에 가담했던 의사들 외에도 자국에서 이를 지원하고 성과를 얻고자 했던 의과대학, 연구소 등의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협력이 있었다. 이 외에도, 일본 식민지에서 의료/의학의 가해, 전시 의료/의학의 동원, 차출되는 자국국민들, 의사, 간호사들에 대한 국가적 강제징용, 한센병, 정신병 환자 강제격리수용, 우생정책 등 전쟁을 통해 수행되는 광범위한 인권침해, 이러한 정책에 저항한 의사, 의학생에 대한 탄압까지 두루 다루고 있다. 특히 무료의료(선무의료)를 앞세워 점령지구의 민심을 안정시키고, 성병의 전염을 막고자 위안부 진료를 수행하는 등, 점령과 전쟁수행을 가능하게 하는데 의료는 첨병의 역할을 했음을 고발한다. 전 후에 수행된 증거인멸, 미국에 의한 전범 면책으로 731부대 관련 의사들은 의료계 요직으로 진출했는데, 그들이 차린 혈액은행이 승인되지 않거나 오염된 혈액제제 등으로 수많은 에이즈와 간염 환자를 유발시켰다고 한다.

전쟁의학 범죄를 반성하는 현재적 의의로 2007년 ‘전쟁과 의학’ 전시 실행 위원회 주최 심포지엄에서 하버드대 위크라 교수의 아래의 발언이 심금을 울린다. “과거 세대의 부정은, 그것이 특히 은폐되었을 경우에는, 현재 세대의 무거운 짐으로 그대로 남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략) 조사를 해서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성실하게, 솔직하게, 정확하게 드러내야, 그리고 과거를 직시해야, 우리가 늘 가지고 싶다고 원하던 가치관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는 것만이 과거와의 공범 관계로부터 젊은 세대를 해방시켜, 과거의 부정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게 해 주는 것입니다. 젊은 세대에 은폐나 공범의 전통을 유지하도록 요구하는 대신에 그들을 이 책임에서 완전히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전쟁 중 차출된 의사들에게 상기 임무들은 주어진 의무였을 것이다. 당연히 거부하는 자에겐 엄중한 처벌과 형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거부한 의사들과 의학생들이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의 의료인들은 조국의 부름에 충성하고 성실하게 주어진 소임을 다했다고 내부적으로 정당화 시켰다. 실제 전 후 조사과정에서 밝힌 바이다. 거기에 의학도로서 연구업적을 남기고자 하는 성취욕도 작용했었다고 한다. 여기서 가치는 실종되었다. 의사로서 지켜야할 가치, 우리의 사명. 생명을 최우선으로 알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한 최전방에 있어야 할 의사로서의 사명이 국가라는 조직의 명령과 대척점에 있다면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인권이 도처에서 도전받는 이 사회는 곳곳이 선택을 묻는 접점이다. 과거사의 잘못을 규명하고 역사를 바르게 세우는 것과, 현재의 ‘민영화라는 전쟁’을 직시하고 거부해가는 것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목숨이 수치화 되어 안전에 아랑곳없이 낡은 배를 불법 개조하여 과적, 초과 인원으로 출항시키고 급기야 수 백 명의 생명을 바다에 잠기게 한 지금 대한민국은 건강권 자체가 무너진 전쟁터이다. 해고 노동자들이 하늘로 거리로 내몰리고 40여 일을 곡기를 끊어야 하는 지금 우리 사회는 의료인에게 다시 한 번 사명을 묻는다.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 곁에서 그 목숨을 지키는 자리에 있는 것. 건강권은 곧 인권임에도 이를 침해하는 민영화의 다각적 시도를 막기 위해 전선에 선 의료인들의 치열한 노력이야말로, 일본의 팔순의 의사들이 뼈아프게 반성하고 기록하고 전하려는 진정어린 메시지에 화답하는 길일 것이다.

-사람과 의료 4호/2014년 게제

 

김정은  galmuae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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