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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집, 자유롭고 위태로우며 기쁘고도 슬픈 자기만의 삶

《집으로 가는, 길》 서평 건강미디어l승인2022.05.05l수정2022.05.05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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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내가 사는 집 뒤에는 장애인 거주시설이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앉아있는 방의 창문은 시설의 야외 주차장과 맞닿아 있다. 나무가 많은 주차장에는 해가 내리쬐고 있고 고양이들이 그 빛 안에 누워있다. 오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평화로운 오후’라는 말과 함께 SNS에 올리기 적당한 풍경이다. 저 시설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과는 무관하게 나는 지금 내 눈앞의 모습을 평화롭다고 묘사할 수 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므로.

시설은 고요를 가장한다. 시설 밖의 사람들에게 시설 안의 소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애쓰는 일은 시설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누군가를 시설에 거주하도록 만드는 세계를 정당화하는 유일한 방법은, 시설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으며 시설 밖보다 시설 안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간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시설의 존재 조건은 시설에서의 폭력과 비리를 은폐하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폭력과 비리를 해결하면 되는 걸까? 시설을 좀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공간으로 만들면 괜찮은 걸까?

탈시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단언한다. “좋은 시설은 없다”고. 애초에 ‘시설’이라는 말 앞에 ‘좋은’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 것이 모순이라고.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과 인권기록센터 사이가 기획하고 기록한 《집으로 가는, 길》은 시설 거주인, 직원, 활동가들이 힘을 모아 향유의집(구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을 폐지하고 시설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각자의 집으로 향한 여정을 기록한 책이다. 《집으로 가는, 길》은 시설 거주인들의 삶과 투쟁을 통해 가장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왜 ‘좋은 시설’이라는 전제 자체가 오류인지를 보여준다.  

“투쟁을 하면 할수록 결국 대안은 시설에서 찾을 수 없다는 걸 더 절실히 알아 갔어요.”

2009년 6월, 김포에 있는 장애인 거주시설인 석암베데스다요양원(현 향유의집)에서 살던 장애인 여덟 명이 시설에서 퇴소했다. 이들은 ‘마로니에 8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여덟 명은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의 비리와 인권유린에 맞서 싸운 거주인들이었다. 마로니에 8인은 서울과 김포를 오가며 1년 내내 집회와 농성을 이어갔고 시설의 책임자들은 처벌받거나 물러났다. 그리고 시설의 문제가 해결되어가던 중에 마로니에 8인은 시설을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나선 것이다. ‘시설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다행인 거 아닌가?’, ‘왜 시설의 문제를 기껏 해결해놓고 시설을 나오는거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탈시설운동가 김정하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시설에 산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잘 몰라요. 어디 가서 노숙하는 것보단 낫지 않냐고, 시설 자체를 악으로 규정하고 타도의 대상처럼 말할 필요까지 있느냐고 해요. 시설에서의 삶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탈시설을 하려고 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을 거예요.”(p.96)

소위 사회복지시설은 ‘사회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모이는, ‘사회가 아닌’ 공간을 만들어낸다.[1] 한국 사회는 ‘시설로 격리되어야 할 존재들’이라는 구획을 만들어내고, 그 존재들이 동료시민으로 함께 살아가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그 존재들이 스스로 감당해야 할 개인적 문제로 규정해왔다. 시설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은 가족을 시설로 보내는 사람의 죄책감이라든가, 시설이 아니고서는 나를 받아줄 곳이 없다고 믿는 사람의 고립감을 이용해 시설의 존재 이유를 정당화한다. 이처럼 시설로의 분리가 지속될수록 사회의 책임은 옅어진다. 사회의 규범적 속도와 방향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복지’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격리하고 배제하는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시설사회’다. 

이 책에는 탈시설한 당사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당사자들을 바라본 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시설을 나온 이후 시설에 거주하던 이들의 표정의 변화, 관계의 변화, 생활 패턴의 변화가 묘사된다. 사람들은 전에 없던 밝은 표정을 짓기도 하고,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들에 용감하게 도전하기도 했으며, 원하는 때에 밥을 먹고 원하는 때에 잠을 잤다. 물론 좋은 일들만 있는 건 아니다. 새롭게 마련한 집의 화장실은 휠체어가 들어가기 어려운 구조라 공사가 필요하기도 했고, 문턱이 이동을 방해하기도 했다. 자립 생활의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이도 있었다. 시설에서의 생활과 탈시설 이후의 생활의 장단점을 비교하여 무엇이 더 나은가를 계산하는 일은 중요치 않다. 탈시설 운동의 정당성은 그곳에 있지 않다. ‘자립’은 아무 어려움 없이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함께 쓴 홍은전의 말처럼 탈시설의 의미는 “그들 모두 지역사회로 돌아와 자기만의 집에서 자유롭고 위태로우며 기쁘고도 슬픈 자기만의 삶을 향유”하도록 만드는 것에 있다.

‘책임’의 뜻

거주인들의 탈시설을 도운 직원들이 자주 들은 말 중 하나는 탈시설 이후 거주인들의 삶을 ‘책임질 수 있냐’는 것이었다. 이 말은 시설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시설을 나간 이후 자기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서 건강관리가 안 되면 책임질 수 있냐는 말이기도 했고, 혼자 생활하게 두어서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질 수 있냐는 말이기도 했다. 온갖 사건사고가 곧 일어나기라도 할 것처럼 이런 일이 발생하면 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는 질책이었다.

“탈시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장애인이 시설 나와 살다가 늙어서 더 중증이 되면 누가 돌볼 거냐고 물어요. 그렇다면 더 많은 서비스를 매칭해주면 되지 않나요?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중증장애인 케어하는 건 우리 밖에 못 한다, 시설 나가면 큰일 난다’는 식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거죠.”(p.171)

이 책은 우리의 질문 방향을 바꿔보자고 제안한다. 배제와 격리를 당연시하는 사회에 의문을 던지는 식으로 말이다. 부족함은 장애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에 있는 것이 아니냐고, 아직 탈시설의 준비가 안 된 것은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사회인 것이 아니냐고. 장애인이 스스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을지 우려가 된다면, 어떤 장애가 있는 사람이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거리와 교통 인프라 및 서비스를 구축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자립이 과연 가능하겠냐는 의문이 든다면 누구나 노동할 수 있고, 안정적인 소득을 벌 수 있도록 만들면 된다. 모든 사람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이런 사회를 만드는 일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손쉽게 시설로 격리하는 것이 결코 답이 될 순 없다.

2008년 420 장애인차별철폐의날 결의대회에서 ‘석암재단 거주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낭송한 글에는 “누구라도 그렇듯 인생의 당연한 과제인 내 몫의 삶을 내가 책임지며 살고 싶습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 내 몫의 삶을 스스로 책임질 권리가 누구에게나 당연하게 주어지는 세상은 여전히 오지 않았다. 각자의 삶은 다른 이가 책임질 수 없다. 그러므로 탈시설한 장애인들의 삶을 누군가가 책임질 수 있냐는 물음은 모욕이다. 각자가 온전히 자기 몫의 삶을 살 수 없도록 만드는 세계를 의문 삼고, 각자의 책임이 가능한 세계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투쟁을 기록하는 일

이 책을 읽고 투쟁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새삼스레 했다. 운동에 참여한 거주인, 직원, 활동가의 이야기를 통해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 가졌던 고민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었고, 내가 저 위치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헤아려 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기록의 중요성은 탈시설 운동의 쟁점과 과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탈시설을 반대했던 거주인 이정자씨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기차사고 이후 요양원에 거주하게 된 이정자씨는 시설 밖으로 나가는 일을 두려워했다.

탈시설 이후 이정자씨는 장애인 지원주택으로 이주했고 지원주택에서의 삶에 크게 만족하는 것 같진 않았다. 나가서 놀 공간이 없고, 차가 많아 무서워 길을 다니기가 어렵다고 했다. 각자 집에 사니 사람들과의 왕래도 적고 밥도 혼자 먹으니 입맛이 없다고 했다. 베란다에 있는 턱도 이 집이 불편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이정자씨는 “집만 준다고 되는 게 아니라 사람 사는 재미가 있어야지”라고 말했다. 나는 이 문장이 탈시설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책의 해제를 쓴 전근배는 “시설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탈-시설’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결국 장애인을 다시 더욱 교묘하게 분리·통제·억압하는 형태의 일환”(p.346)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탈시설 운동의 목표는 삶의 물리적 공간을 시설에서 시설 밖으로 옮기는 것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탈시설 운동은 차별없이 교육받고, 노동하고, 섹스하고, 동료 시민과 우정을 쌓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탈시설 운동이 단지 ‘시설’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의미할 때, 여성과 소수자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겪는 시설화의 문제는 장애인 운동 안에서 의제화되지 못할 위험” 또한 있다.[2]그렇기에 탈시설 운동은 시설에서 나오고, 시설을 없애는 투쟁일뿐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이 싸움은 그저 우리 요양원만의 싸움이 아니다. 모든 시설에 대한 싸움이다.”라고 말했던 이 시설의 비리를 최초로 고발한 한규선의 말을 이어받아 말하고 싶다. 탈시설 운동은 그저 한 시설에 대한 싸움만이 아니라, 특정 존재에 대한 격리와 배제를 당연시하는 모든 차별에 대한 싸움이라고.

책 표지에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을 유심히 보다 ‘집으로 가는’과 ‘길’ 사이에 있는 쉼표를 발견했다. 왜 여기에 쉼표가 필요했을까? 나는 어쩐지 이 책에 나온 탈시설한 사람들, 그리고 지금 시설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집으로 가는 길’이 쉼표 없이 매끄럽게, 한 번에 통과하기는 어려운 길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2017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발표한 ‘자립적 생활과 지역사회 포용에 관한 일반논평’ 5호의 내용 중 첫 문단은 다음과 같다.

"역사적으로 장애인은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개인의 선택과 통제의 권리를 부정당해 왔다. 많은 장애인이 스스로 선택한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살 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지원 제도는 이용할 수 없거나 특정 거주 조건에 묶여 있고, 지역사회 인프라는 보편적으로 설계되지 않는다. 자원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있는 가능성의 개발이 아니라 시설에 투자된다. 이는 유기, 가족에의 의존, 시설화, 고립, 분리로 이어졌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UN 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UN CRPD)은 모든 장애인은 적절한 지원이 있다면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또한 이 협약은 100명이 사는 시설이든, 5명이 사는 그룹홈이든, 심지어 시설 외부의 개인주택이든 간에 시설화의 결정적인 요소를 지닌다면 자립생활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며 모든 장애인이 집단시설 또는 시설화된 장소가 아닌 지역사회에서 자율적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한다.[3]  <이제 자원은 시설이 아니라 장애가 있는 시민들의 ‘자기만의 집, 자유롭고 위태로우며 기쁘고도 슬픈 자기만의 삶’에 투자되어야 할 것이다.

글을 쓰다 해가 저물었다. 우리 집 뒤에 있는 시설에는 불이 켜졌다. 낮엔 ‘저기에 사람이 있긴 한 걸까’ 싶을만큼 고요하더니 지금은 형광등 불빛을 통해 어렴풋이 사람들의 존재를 헤아려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하루 일과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이 당연하지만, 오늘도 자기만의 집이 아닌, 시설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함께 ‘집’으로 가자. ‘집으로 가는 길’을 함께 만들자.

[1] 김지혜, <탈시설 운동은 '없애는 것' 넘어 '만드는 것'>, 《시설사회》, 와온, 2020
[2] 나영정, <들어가며: 누구와 함께 시설사회에 맞설 것인가>,《시설사회》, 와온, 2020
[3] 전근배, <해제: 프리웰 사람들이 쏘아올린 탈시설의 지도>, 《집으로 가는, 길》,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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