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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을 위한 선택, 인간의 길을 묻다

신간 [비판정신의학] 추천사 건강미디어l승인2020.10.15l수정2020.10.1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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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하 (사)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대표

 

한국에서 정신장애인으로 살았던 경험은 마치 야생 사냥터에서 쫓기는 토끼 신세 같았다면 과장된 것일까요? 어쩌면… 이보다 더한 표현도 부족합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경험했던 한국의 정신보건시스템이 당사자에게 가하는 가공할 폭력과 공포는 어쩌면 질환 그 자체보다 당사자의 삶에 더 큰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정신과 생존자(psychiatric survivors)인 저 역시 수많은 당사자들 중 한 명입니다. 또한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앞서간 당사자들의 투명했던 삶과 죽음마저도 응어리가 되어 제 가슴속에 차곡차곡 맺혀 있습니다. 저는 그런 이유로 당사자운동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일 것입니다. 2013년 한국의 정신장애인 200여 명은 “살려주세요!” 외침으로 토론회를 개최하고 절박한 목소리로 “문명의 이름으로 야만의 정신보건법 폐지를 선언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이듬해 「정신보건법」 제24조에 대하여 4명의 당사자가 청구인이 되어 헌법소원을 하였습니다. 당사자운동의 투쟁 과정에서 법이 바뀌기도 합니다. 그러나 2016년 개정되고 2017년 5월부터 시행중인 「정신건강복지법」조차 숱한 모순을 안고 여러 이해관계와 사회갈등 속에서 중심을 잡고 있지 못합니다.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간절하고도 절박한 당사자들의 외침은 유령처럼 살다가 사건만 터지면 소환시키는 매스미디어의 편파보도로 ‘조현병포비아’라는 혐오와 낙인 뒤로 쉽게 잊히는 그 무엇이 되었습니다. 새벽 짙은 어둠 속 불안하게 지나온 수많은 청춘의 시간 속에서, 항정신병약물과 정신치료 사이 어딘가를 방황하며 영혼이 거세되는 그 느낌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해 여름 강제치료의 결과로 늘 보이던 환영들이 사라졌을 때 감각도 함께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무뎌짐이 과연 치료였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삶은 부유하며 땅에 딛지도 못하고, 지구별을 떠나지도 못한 채 언제나 정신과 영혼의 세계는 병원 바깥에 있어도 그곳 정신병원에 머물렀습니다. 어쩌면 언젠가는 가야 하는 곳, 처음 갔을 그때처럼 또다시 언제라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타자들에 의해 갇혀야 하는 깊게 새겨진 그곳은 견고한 성처럼 버티고 있는 실존 그 자체였습니다. 의학의 테제가 무엇이든지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되는 행위라고 수도 없이 되뇌고 또 되뇌었습니다.

인간은 경험의 산물입니다. 당사자의 경험 속에서 읽어 내려간 『비판정신의학』의 챕터 하나하나를 넘기면서 동의가 되었습니다. 또한 의학의 테마라는 그 건조함에 정신의학이 왜 존재하는 걸까 의문이 교차되었습니다. 그 어떤 사람들에겐 직업이고 현장이었으나 어떤 당사자에겐 삶과 생명 그 모든 것이었고 사회도 국가도 무관심합니다.

나와 비슷한 당사자들의 생명이 사라져가는 것을 목도합니다. 기이하게도 약물이 발전할수록 다른 OECD 국가의 현상과는 반대로 한국에서는 정신과 입원병상과 입원일수가 증가합니다. 정신의학, 정신병원, 약물들 용어 하나하나를 아프게 트라우마로 품은 당사자들이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쉽게 간과합니다. 정신건강이라는 용어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정신보건시스템은 식민지였고, 살아있는 쇠사슬이었습니다.

낙인은 생각보다 강렬했고, 정신의학의 사과는 없었습니다. 의료라는 이름의 학대에 대해, 정신보건종사자들이나 정신과의사들, 제약산업은 성찰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가 관리자가 되고, 사감이나 교도관처럼 당사자에게 오직 약, 약, 약만이 정답인 듯 맹신적으로 강요하였습니다. 진정으로 되물어야 하는 것은 이것 아닐까요. 모두가 적응한 정신보건의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전문가들은 언제쯤 병식을 가지게 될까요. 집단병리의 증상에 대해 본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강제치료는 사회복귀의 길을 전면으로 막았습니다. 돌아가고 싶던 나의 ‘창작 현장’과 ‘직업 기능’을 빼앗아 갔습니다. 당사자운동을 하면서 생존 시간들을 하루씩 늘려가며 버티는 중에 조금씩 삶의 의지와 함께 생명력이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함께 병원에 있던 당사자들은 여전히 두터운 벽 안쪽에서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상태입니다. 우린 연결된 채로 살아있습니다.

‘당사자가 되어서 참으로 다행이다’라고 여기는 지점이 있다면 바로 그 ‘연결’입니다. 내가 만약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남들처럼 평범한 선입견을 가지고, 이 사회의 남들처럼 의식하지도 못한 채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을 배척하고 꺼리며 쓸모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알지 못하는 것이 죄악이 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인간의 일생이 배움의 연속이니 나는 기꺼이 인간이 되는 길을 택할 것입니다. 비록 일생이 고통스럽고, 안락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정신장애인의 처참한 현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청도대남병원, 제이미주병원, 배성병원과 같은 정신의료기관 내 폐쇄병동에 오랜 기간 머무르는 당사자들은 대다수 확진자가 되거나,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릅니다. 이 병원들을 지금보다 ‘인권친화적’으로 만든다고 정신장애인 삶의 질이 좋아질까요? 그저 정신장애인은 병원만 잘 다니고, 약만 잘 먹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신장애인 또한 동등한 시민입니다. 질병모델은 이제 박물관에 갖다 놓아야 합니다. 우리 정신장애인은 20년, 30년 전부터 이러한 질병모델에 억눌린 채 숨죽여왔습니다.

치료, 입・퇴원, 재활절차 등 정신장애와 관련한 모든 과정에서 현재 당사자의 결정과 참여 정도는 매우 미약합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 사이에서부터 사회, 국가에 이르기까지 당사자의 의사결정권은 부정되고 박탈됩니다. 주체로서 당사자는 ‘무능한 존재’일 뿐입니다. 치료의 종류와 과정에서도, 어느 것 하나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질적, 양적 측면 모두에서 부족합니다.

당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무시됩니다. 이것이 반복되면 당사자는 점점 무력해집니다. 특히 장기간의 폐쇄 환경 격리와 사회와의 단절은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존재로 만듭니다. 그러나 투병도 학습도 인생의 복구도 무엇 하나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주변부의 직업인과 가족들이 참여해 도울 수 있는 유일한 혹은 필수적인 부분은 기회 제공입니다. 그러나. 과연 당사자에 대한 이해 없이 그 기회가 ‘기회다운 기회로서 작용’할 것인지 근본 질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사자에 대한 관점은 당사자중심에서 외곽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정신의학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신건강서비스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요. 정신의학의 변천사나 역사적 맥락을 알지 못하더라도, 너무나도 괴이하고 비가역적이고 탈인간적 대우를 받는 당사자들에 집중해야 합니다. 의학의 기본 그리고 정신건강서비스의 의미와 맥락이 일치하지 않는 현장의 현실을 경험하는 당사자들의 삶에 집중해야 합니다. 비정상의 정신건강서비스를 정상화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언제나 당사자에겐 전지적 관찰자 시점이면서, 관찰자들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쏙 뺍니다. 당사자 문제를 지적하면서 정작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는 침묵합니다.

본문에서처럼 정신과의사들이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 함에 동의합니다. 건강한 정신과 마음이라면 사회를 개혁하는 것이 더 빠를 것입니다. 어느 당사자는 “정신과의사들이여 혁명가가 되라”고 기고한 적도 있습니다. 증상을 단지 치료해야 하고 사라지게 해야 할 나쁜 무엇으로 만든 것은 정신의학의 오만함이 가져온 산물임을 전문가집단도 인정해야 하며 각성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원인과 과정이 가져오는 인과법칙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습니다. 당사자의 증상 경험은 복잡 미묘한 삶의 시그널입니다. 이 증상을 승화시켜낸 당사자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증상을 극복해야 하는 것은 비단 당사자뿐 만이 아닙니다. 의사선생님들도, 정신보건종사자들 역시 지독한 매너리즘을 깨고 나와야 합니다. 정신보건시스템의 직접적인 관련자였음을 마음에 손을 얹고 각성해야 합니다. 양심의 소리가 살아있을 때 정신의 건강성을 논할 수 있습니다. 대중언론의 가혹한 편견 조장을 비판하기 이전에 그 출발선은 정신보건시스템 내부였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정신보건 내부에서 당사자들을 범죄자보다 더욱 가혹하게 대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이를 인정하고 출발해야 합니다.

당사자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적 삶, 사회적 삶이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살려내는 것이 성장의 길이며, 회복의 길입니다. 기회가 없는 사회는 무능한 사회입니다. 약물도 정신과치료도 당사자의 인생에서 일부분이어야 합니다. 당사자들은 정신의료 산업의 에너지원도 먹이도 아닙니다. 적어도 그러한 현실은 변해야 하며, 강제입원이나 강제치료가 쟁점이 아니라 비인간적이고 폐쇄적인 치료환경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비판정신의학』에서 약물중심접근, 필요기반치료, 함께하는의사결정, 매드프라이드, 오픈 다이얼로그 등 다양한 영역의 치유와 접근에 대해 서사하고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경험에서 볼 때 치료접근보다 회복접근이 더욱 효과적이며, 치료와 재활은 분리된 개념이 아닙니다.

2년 전 어느 의사선생님이 정신과의사도 또 다른 당사자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사자에게 의사는 일평생을 동행하는 동반자이기도 합니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은 어쨌든 관계를 맺으며 동행하는 가장 가깝고도 어쩌면 멀기도 한 숙명처럼 만난 인연입니다. 정신건강의 실천 현장이 존엄한 인간의 길이기를 바랍니다. 당사자가 치유 중심에 서는 것, 그것이 당사자중심주의의 실천입니다. 협치와 거버넌스를 논하는 시대, 그 물결의 흐름을 당사자중심으로 가져다 놓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현장에서는 당사자중심주의의 이념과 철학 그리고 그 마음의 토대를 당사자의 감수성으로 녹아들게 해야 합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당사자들)이 교육 기회를 갖도록 해야 합니다. 동료지원가의 교육 시간에 대화와 소통을 하고 각성하는 동안 당사자는 스스로 자신의 증상과 정서·심리적 어려움들을 내면의 힘으로 마주하고 증상의 소유권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회복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질 때입니다. 당사자주의 실현은 정신보건 생태계뿐만 아니라 연결된 수많은 낡은 구조를 혁신하여 새로운 활력과 생명력을 가지게 할 키워드이며 복원시켜야 할 공동체 가치입니다.

증상을 승화시킨 사람들은 예외 없이 거듭남을 경험하게 됩니다. 증상이 가진 에너지는 실로 놀라운 기적과도 같은 힘을 가졌음을 경험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재건시킨 동료지원가들은 정신장애인의 순수성으로 공동체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사회 공헌자가 될 것입니다. 지성과 인성을 고양시켜야 하는 시대에 우리 모두가 서 있습니다. 당사자의 가능성은 기회를 제공받고 그 길을 선택함으로써만 명확해질 것입니다.

『비판정신의학』은 체계적이고도 광범위한 영역을 정리하면서 정신의학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며 ‘개혁’하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정신과의사선생님들과 정신건강분야의 전문가들, 당사자, 가족들 모두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비판정신의학』을 번역해 주신 장창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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