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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담긴 세상》 사용 설명서

건강미디어l승인2020.02.10l수정2020.03.3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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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시인, 그림책 작가, 그림책도시 대표

조원경은 내게 ‘고수’로 등록되어 있다. 기능이나 재간이 걸출한 이를 ‘명인’이나 ‘달인’이라 칭한다면, 나는 ‘고수’를 ‘삶을 운영하는 경지가 높은 이’라는 뜻으로 쓴다. 오래 전 그가 그림책 동네의 귀한 지면에 초대한 덕분에 적잖이 긴 시간 원고를 주고받은 사이이지만 실물 인사를 나누기는 한참 뒤였고, 음악당 객석에 앉는 취향을 드문드문 공유하는 일이 있었다.

최근 5년 안쪽에 우연히 양쪽 집안 어른들의 요양과 임종 및 장례 대사를 나란히 치르는 시점에서, 유익 유용한 조언과 함께 그의 고수다운 면모를 여러 차례 경험하고 배우며 감탄했던 것이다.

그렇다. 귀절귀절 형형하고 알뜰살뜰 정성스러운 그의 생애 최초 저서 《그림책에 담긴 세상》 또한 더없이 고수답다. 덧붙이는 글을 부탁 받고 군더더기가 될 일부터 걱정했다. 궁여지책, 이즈음 유행하는 실용서 글을 흉내 내어 그림책의 힘을 더욱 빛낸 이 노작에 감사를 바친다.

그림책에 대한 사용법

_그림책 독자는 저자가 짚어주는 그림책을 통해 연령과 취향 및 독서 목적에 의해 편향되기 마련인 도서 선택 안목을 깊고 넓게 확장하게 된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이나 세월호 사건을 담은 그림책을 구해 놓고도 차마 펼치지 못해 멀찌감치 밀쳐뒀던 나는 저자가 담담하고 간략하게 요약한 《제무시》 《풍선고래》 관련 글을 읽으면서 용기를 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림책을 유아용 교구로 생각해온 수많은 부모 독자, 성인 독자의 편견을 이 책은 단번에 떨쳐내어 줄 것이다.

_그림책 연구자들에게 이 책은 숱한 연구 과제를 발굴하게 될 보물섬이 될 것이다.

2017년부터 전년도 한국 창작 그림책 목록 《한국 그림책 연감》 작업을 맡고 있는 사회적협동조합 그림책도시의 그림책콘텐츠 팀은 상당 기간 전 세계 그림책을 대상으로 연대기 작업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이 책 덕분에 2016년 이전의 한국 그림책 분야를 상당 부분 채우게 되어 물 만난 고기떼처럼 기뻐하고 있다.

_그림책 창작자 기획자 편집자 출판가에게도 이 책은 앞으로의 작업에 대한 요긴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예술이 당대 사회 현실과 향유자에 기여하는 바와 후대에 증거하는 바를 어떻게 고려하고 담보할 것인가라는 오래된 숙제는 그림책 생태계에도 유효하다.

_그림책으로 교과수업을 보완하자면 이 책은 더없이 훌륭한 길잡이요 지침이 될 것이다. 역사와 현실 속에 되풀이되는 삶과 사회의 수많은 의문을 우리는 어떤 맥락으로 이해하고 답해야 할까.

참으로 간단치 않은 문제들을 호명하면서, 저자는 이와 전혀 무관해 보이는 문학 서사와 예술 이미지의 그림책을 펼쳐 자연스럽게 사유와 통찰의 더듬이를 뻗는다.

백남기 농민 사인 규명 시점에서 권정생 김환영의 작품 《빼떼기》를, 반 성폭력 운동 미투의 불씨가 된 서지현 인터뷰 생방송 시점에서 노인경의 작품 《숨》을 펼친다. 세상 모든 존재의 저마다 고귀한 생명성을 조용히 일깨운다.

삶에 대한 사용법

_이 책은 책과 책 읽기가 어떻게 삶을 곧추세우는지, 그렇게 곧추세운 삶은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내는지, 웅숭깊은 고수 독자의 성찰을 담았다.

나날의 삶이 책 또는 책 읽는 일을 밀어낼 때가 있다면, 그것은 삶이 통속해서, 책이 고귀해서가 아닐 것이다. 사람살이 경력이 늘어갈수록 유치원에서 배운 정의와 사랑의 이치를 견지하기 힘든 것 같다고나 할까.

나라도 법도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다단한 삶의 켯속을 게을리 뭉뚱그리거나 전전긍긍 안달하지 않고 정성껏 차분히 통찰하는 힘은 모름지기 책 읽기로 훈련되고 축적된다는 믿음을, 이 책의 전편에서 확신하게 된다.

사회에 대한 사용법

‘그림책 사회사’라고 할 만한 이 책은 가짜 뉴스와 왜곡 보도로 어지러운 현실 사회를 올바르게 파악하고 따스하게 이해하는 법과 그 실제 예를 보여준다.

역사학・신학・사회복지를 두루 공부하고 30년 넘게 편집자로 살아온 ‘건강한 사회인이자 덜 답답한 꼰대’ 저자의 사회적 자아는 나같이 어리석고 심약한 시민이 차마 못 견뎌 외면하고 눈 감았던 비리와 부조리와 악습과 참사를 빠짐없이 소환해 골똘히 들여다보게 한다.

그렇게 해서 또렷이 드러나는 전후 사정의 맥락, 이어서 펼쳐 보이는 그림책 메시지는 저마다 자각하고 서로 사랑하는 삶이 건설하는 건강한 사회라는 해피엔딩이다.

또 하나, 목차 사용법

시인들이 시집 목차를 한 편의 시로 구성하듯, 이 책의 목차는 한국 그림책 역사의 맥락을 기억하기 좋은 노랫말처럼 감흥 있게 엮어준다.

이를테면 저자가 1980년에서 1992년 사이 그림책과 사회를 들여다보는 ‘1. 백두산 같은 더불어’의 글 꼭지 제목들 ‘서곡, 첫 타자기/ 서늘하던 시대/ 민주항쟁/ 더불어 숲/ 일러스트레이션 정착/ 변화하는 세계/ 많은 이들의 벗 나비/ 그림책도 기지개’는 소명과 응원을 간결하고도 입에 붙게 담아내는 운동가처럼 흥얼거리게 된다.

여지껏 목차를 건너뛰고 책을 읽어온 독자라면 특히 이 책의 첫 즐거움을 빠트리지 않도록 주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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