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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의 회복과 사회적 참여 그리고 그 연결고리

건강미디어l승인2019.11.02l수정2019.11.02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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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희년재단에서 주최한 '소외와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하여' 국제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정신건강 관련 토론문입니다.

순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장창현

지역사회 정신의학의 전문가 고영 선생님께서는 ‘한국 정신장애인의 인권 현황과 지역사회 통합실현을 위한 과제’라는 주제를 잘 정리해주셨습니다. 정신장애인의 인권 권익향상에 힘쓰시는 제철웅 선생님께서는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통합과 의사결정지원: 현황과 방향성'이라는 주제로 중요한 지점들을 짚어주셨습니다. 두 연자 선생님의 발제문의 사이에 통하는 내용이 많아 반갑습니다. 결국 정신장애인의 인권과 지역사회 통합, 그리고 당사자의 자발적 의사 존중은 서로가 닿아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신과 치료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18세기 말 피넬의 ‘도덕 치료’는 정신질환자들을 묶었던 쇠사슬을 풀었습니다. 수용소의 감금조차도 치료적으로 사용해야 하며, 사회 복귀의 가능성을 염두해두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울림이 있습니다. 1951년 효과적인 항정신병약물인 클로르프로마진의 개발 이후 입원 현장에서의 강압적 치료가 줄어들고, 지역사회로의 복귀를 실행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단정하긴 어렵지만 지역사회 정신의학에서도 미국과 같은 실패 사례와 이탈리아 같은 성공 사례가 있습니다. 미국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는 건 양성 정신병적 증상의 완화가 곧 성공적인 지역사회 복귀로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정신병적 증상의 완화는 정신건강의 온전한 회복(recovery)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회복을 위해서는 적절한 약물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약물 이상의 그 무엇이 필요합니다. 정신장애 당사자가 치료자와 마음을 터놓고 소통할 수 있는  정신치료가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또한 정신질환으로 인해 발생한 능력의 결함을 최소화하기 위한 재활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사회로부터 배제되지 않는다는 사회통합의 차원으로서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결국 세상으로의 복귀까지 염두에 두고 접근을 하여야 참된 의미의 전인적인 회복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음건강의 회복을 위한 이러한 여러 지점들 하나 하나에서 더 나은 회복을 위해 어떠한 점들이 개선이 되어야 할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일단 약물치료와 정신치료의 영역을 살펴보겠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현장에서 새로이 환자분들을 만나게 되면 적지 않은 분들이 약의 부작용이 없는지, 약을 얼마나 오랫동안 먹어야 하는지를 물어보십니다. 약에 대한 염려가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치료 시작 단계에서부터의 이러한 소통은 상호 신뢰 관계 구축에 정말 중요하다고 봅니다. 치료자를 믿을 수 있어야 약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점에서 함께하는의사결정모델(Shared decision making model)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함께하는 의사결정’이란 당사자의 회복을 위해 중요한 자기결정 능력을 임상현장에서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약물의 효능과 부작용에 대해 의사와 환자, 돌봄제공자가 모두 밝히 알고 필요와 선호도에 맞게 약을 함께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제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기결정권’은 진료실 현장에서부터 시작 되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좋은 정신과 치료는 치밀하면서도 사려 깊은 약물치료와 사람을 중심에 둔 상담이 조화를 이룬 예술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 예술 작품은 절대로 의사 혼자서 만들 수 없습니다. 당사자와의 투명한 소통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통해 증상이 완화되는 것이 전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입원시설에서만 당사자들이 머문다고 해서 이들이 온전하게 회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중증 정신질환의 경우 병으로 인해 생기게 된 능력의 손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능력에는 대인관계 안에서의 소통 능력, 사회적 상황에서의 판단력, 자신의 의지와 욕구에 따라 살아가는 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능력, 직업적 능력 등이 있습니다. 이를 돌이키기 위한 과정이 정신재활(psychiatric rehabilitation)입니다. 고영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중간시설 체계, 정신사회재활시설이 담당할 수 있는 역할이 바로 이런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정신재활은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이 다시금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기반이 됩니다. 이것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탈원화(deinstitutionalization)를 온전히 수행할 수 없습니다. 

2017년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이 명시화 하고 있지는 않지만 법의 방향은 결국 탈원화로 귀결됩니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이 때에 마을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이 시대의 지역사회가 정신장애인을 잘 품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듭니다. 각 지역사회에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정신재활시설의 확충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를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action plan)이 중요하겠습니다. 좋은 정신재활을 확충하기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이를 위한 규제의 유연성을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좋은 정신재활은 정신의료, 사회복지, 작업치료, 당사자 동료 지원과 같은 여러 직역의 협업으로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다학제적 구성을 어떻게 이루어갈지, 또한 재활서비스의 수가 체계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을 다양한 이해당사자들(stakeholders)이 머리를 맞대어 만들어가야 합니다. 구성원 중 한 사람으로서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입원제도 개선 뿐 만 아니라 정신재활을 확충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고민도 깊게 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인권에 대해서도 짚고자 합니다. 정신장애인은 다른 집단에 비해 인권을 침해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또한, 정신장애인에게 인권은 차별, 낙인, 배제 등으로부터 이들을 지켜주는 거의 유일한 수단입니다. 정신장애인의 인권은 한 사회 인권의 ‘바로미터’이기도 한 것입니다. 인권을 사회 안에서 실제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인식 개선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 국민 4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에 노출이 됩니다. 이는 다시 말해 마음의 병은 내 가족, 내 이웃, 내 친구, 내 동료, 그리고 나의 이야기 일 수 있다는 점이지요. 정신질환의 뇌의 병이라는 개념보다 누구나 정신질환을 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스트레스-취약성 모델에 기초하여 스트레스에 견디는 마음의 힘을 강둑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강둑의 높이가 다른데 큰 홍수와 같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강둑의 높이에 따라 어떤 사람은 가벼운 우울증 같은 경증 정신질환이 오고, 어떤 사람은 중증 정신장애인 조현병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마음의 병에 대한 대국민 캠페인을 펼치고, 동시에 어린 나이 때부터 학교에서 마음 건강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을 필수적으로 시행한다면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인식 개선 뿐 만 아니라 당사자의 회복을 온전히 돕는 도구로서도 인권은 순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QR(퀄리티라이츠, QualityRights)’라는, 정신건강 정책과 서비스에서 회복과 역량강화,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교육 및 훈련 도구를 개발하였습니다. UN 장애인권리협약을 기반으로 하는 회복 가이드라인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인권이 서비스와 교육의 핵심 과제로 자리매김 하면서, 인권적 가치를 현실에서의 치료 문화로 진화시켜 나갈 것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시의적절한 치료적 도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퀄리티라이츠 회복 프로그램은 회복을 여정으로서 바라보고,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협력하는 연대를 통한 배움을 강조합니다. 올해 6월 용인정신병원 WHO 협력센터를 통해 ‘정신건강 및 관련 서비스에서 회복을 촉진하기(Promoting recovery in mental health and related services)’라는 기본 자료가 번역되어 온라인에 발간되었습니다. 인권을 중심에 둔 이러한 대안적 접근법이 확산되길 바랍니다. 

WHO QR에서는 회복은 삶 안에서 관계 맺고 있는 것들에 기여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삶에 대한 조절 능력을 회복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정신장애인이 능력강화(empowerment)과정을 거쳐 이용자(user)로 거듭나서 사회에 주체적으로 기여하는 중요한 예가 바로 서비스 이용자 운동(service user movement)입니다. 이 활동은 동료 지지 및 동료제공서비스, 교육 활동 및 새로운 지식 공급자로서의 활동, 옹호 및 이익단체로서의 활동으로 분류됩니다. 서비스 이용자 운동은 기존의 정신보건 패러다임의 한계를 극복하고 정신보건이 발전하는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큰 틀에서의 ‘함께하는의사결정모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운동을 통해 이용자와 정신보건 서비스 제공자 간의 더 효과적인 파트너십 구축에도 도움이 되고, 이용자와 가족에 대한 서비스 제공자의 이해가 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필요에 기반하여 초점을 맞춘 서비스 질의 향상을 가져올 수 있고, 특정 치료적 접근법의 효과성을 더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용자 능력강화, 자존감 회복을 통해 이용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용자 운동을 기존 정신보건에 통합하여 정신보건의 질을 향상할 수 있습니다. 통합의 과정까지 나아가기 위해 이들의 온전한 결정권을 인정하고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이용자를 통해 배울 수 있음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어렵지 않습니다. 정신과 의사들이 정신과 진료실에서 당사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당사자 운동에도 귀를 기울이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정신보건서비스 발전이 이루어질 토대로서의 국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국가 권력은, 그리고 국가의 틀 안에서 제정된 법은 실로 영향력이 큽니다. 2017년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전후를 비교해보면 2017년 4월 기준 자의입원 41.6%, 비자의 입원 58.4%의 비율이 2018년 4월 자의입원 62.9%, 비자의입원 37.1%로 역전됩니다. 비자의입원이 서류, 행정상의 절차로 훨씬 복잡해진 까닭입니다. 정신건강복지법은 결국 탈원화에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당사자의 온전한 탈원화와 지역사회 복귀를 위해 정신재활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건강복지법 제26조 1항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정신재활시설을 설치·운영할 수 있다.”는 선언적 구호로만 존재합니다. 정신재활 및 사회복귀 시설의 설치·운영 및 이에 대한 공공의 지원을 필수 조항으로 만들어야 실행 가능성이 실제적으로 높아질 것입니다. 

OECD에서는 2014년 보건의료정책 연구 결과물로 정신보건의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증대: 정신보건의료 문제를 방치한 결과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비용(Making Mental Health Count: The Social and Economic Costs of Neglecting Mental Health Care)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여기에서는 다음에 인용하는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더 나은 정신보건을 위해 국가 리더십의 작동을 강조했습니다. 5년 전의 내용이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내용으로 생각되어 본문을 인용합니다.
“정신보건의료에서 구조와 계획의 변화를 유도하고 그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데 올바른 관리(good governance)와 리더십(leadership)이 필수적이다. 특히 정신질환으로 인한 상당한 질병부담을 고려해볼 때, 정부가 보건의료 안건에서 정신보건의료를 최우선 순위로 둘 필요성이 있는데도 전통적으로 정신보건의료는 간과되었고, 이에 대한 재정지원도 충분하지 않았다. (중략)

정책결정자는 세 가지 중요한 도전과제에 직면해 있다. 첫째, 보건의료제도에서 자주 소외되는 정신보건의료를 우선순위로 둘 필요가 있다. 둘째, 진료 제공이 입원진료에서 지역사회 진료로 옮겨가는 추세에서 이미 진행되고 앞으로도 요구될 보건의료제도 조직의 큰 변화를 관리해야 한다. 셋째, 정신보건의료 서비스 및 정신보건의료 서비스 외부와의 조정을 잘 도모할 필요가 있다. 

정신보건의료 분야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고위급의 의지가 필요하지만 보건의료 분야 외부의 이해당사자 및 사회 여러 분야의 이해당사자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해야 한다. 정부, 정책결정자, 정신보건의료 및 보건의료 분야 지도자, 교육 및 고용분야 지도자, 입법자와 인권단체, 정신보건의료 서비스 이용자와 보건의료 제공자 및 대표, 정신보건의료 전문가 및 전문가협회, 국제 지도자 및 네트워크 모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마음의 병을 앓는 개인과 그 개인이 존재하는 사회를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의학과 정치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19세기에 활약한 독일의 위대한 병리학자, 인류학자, 위생학자이자 진보주의자였던 루돌프 비르효(Rudolf Ludwig Karl Virchow)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의학은 하나의 사회과학이며, 정치는 거대한 규모의 의학과 다르지 않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온전한 마음건강을 위해 사회과학으로서의 정신의학을 바라보고, 거대한 규모의 의학을 다양한 직역의 전문가와 당사자, 그리고 국가가 협력하여 잘 작동시켜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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