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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센, 일본과 한국 민중 연대의 지표

[추천사] 야마센 홀로 지키다 건강미디어l승인2019.05.23l수정2019.08.01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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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저자, 노동당 고문, 장발장은행장

당연한 일입니다만, 야마센이 맞서 싸웠던 일본의 치안유지법은 식민지 조선에서 민족해방운동을 탄압하는 데에 적용되었습니다. 이 법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당하고 구속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일본에서처럼 식민지 조선에서도 악명을 떨쳤던 치안유지법은 일제가 패망된 뒤 한국에서 강력한 모습으로 되살아났습니다. 1948년 12월1일 국가보안법이 제정되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 법은 치안유지법을 본뜻 것이었습니다.

1923년 9월1일 발생한 간토 대지진에 연원을 두고 있는 치안유지법과 마찬가지로, 국가보안법은 체제보안법, 정권유지법에 가까웠고, 이승만 독재정권,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등을 강화,유지하고 민주인사들을 탄압하는 강력한 도구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당하고 구속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모질고 긴 행렬의 앞쪽에, 일찍이 일본 의회에서 치안유지법 개악에 맞서 외롭게, 그러나 의연히 싸웠던, 그리하여 기어이 목숨까지 잃었던 야마센이 있습니다. 저는 야마센을 기리는 이 책을 통해 한국인들이 국가주의의 폭력 아래 조선과 한국의 민중만이 아니라 수많은 일본 민중도 박해당하고 희생되었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인간 본연의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가주의 체제에 맞섰던 야마센에게서, 빅토르 위고의 표현을 빌려, ‘혁명의 절대성’위에 있는 ‘인간의 절대성’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야마센에게서 혁명가에 앞서 휴머니스트의 모습을 보는 게 저만의 일은 아닐 듯합니다. 야마센, 실로 그는 길지 않은 생을 통해 ‘인간의 절대성’을, 그 가치를, 그 진수를 보여주었습니다!생물학자인 야마센이 당시 부국강병을 목표로 하는 국제 경쟁의 상황 아래 일본의 출산 장려 정책에 반기를 들었던 것도 휴머니스트로서의 면모가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그가 당시 민중에게 산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은 민중이 전체주의 국가의 소모품이 아니라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 자유인이라는 신조에서 비롯된 것이었지요. 그는 과학자로서도 인간은 위하는 존재로서 목적이지 이용하는 도구로서 수단이 아니라는 정언명령을 흔들림 없이 수행했습니다.

언뜻 유약하게 느껴지는 그의 내면에 강고함이 있었습니다. 이 모순은 실상 모순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 앞에서는 한없이 따뜻하고 부드럽지만, 국가주의를 비롯해 노동자와 농민 등 사회적 약자들을 억압하고 수단으로 삼아 총알받이로 만들기도 하는 지배체제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저항했던 고결한 인간 정신의 소유자였습니다.

굴곡진 역사 때문이겠지요. 일본과 한국은 지리적으로는 가까운 이웃이지만 서로를 인식하는 데에 있어서는 먼 존재였습니다. 한국의 진보좌파 정당에 몸담고 있는 저 자신도 야마센의 투쟁에 관해서는 이 책의 원고를 접하기 전까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일본 정권과 일본 민중을 동일시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야마센이 살았던 지난날이나 아베가 집권하고 있는 오늘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대중의 대부분은 이 간단한 구분조차 잘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중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양국의 우익 위정자들이 파놓은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해, 한쪽에서는 ‘혐한(嫌韓)’으로, 다른 쪽에서는 ‘반일(反日)’로 수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까요.

이와 같은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일본과 한국의 민간 차원의 소통과 연대 활동은 무척 중요합니다. 이 책이 한국에서 널리 읽히기를 바라는 까닭입니다. 야마센은 그의 인간애와 애민 정신으로 일본과 한국의 민중을 연결시켜 주는 훌륭한 지표가 될 것입니다.

연로한 분들은 ‘구라파 전쟁’이란 말을 자주 들었을 것입니다. 실상 구라파는 오랜 동안 전쟁의 도가니였습니다. 특히 프랑스와 독일은 항상 적대적이었고 수많은 전쟁을 치른 당사국이었습니다. 그 숱한 전쟁이 독일과 프랑스 양국 민중의 의지가 아니었음은 분명합니다. 이 점을 알아차리기가 어려운가요? 그렇지 않을 것 같지만, 위정자들의 배타적 민족주의 언설에 쉽게 휘둘리는 것 또한 대중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 연합의 결성을 통하여 ‘구라파 전쟁’을 역사의 유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헤게모니 국가들의 출현도 작용했겠지만 더 이상 적대적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는 두 나라 민중의 염원이 만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제가 이 말을 꺼내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전쟁을 포기한다”는 일본 헌법 9조를 지키려는 일본 민중의 염원에 한국 민중이 연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동북아 평화와 직결되는 엄중한 과제로서, 야마센의 정신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전체주의 일본의 유물인 치안유지법을 모태로 하는 국가보안법은 아직 한국에 살아 있습니다. 중동에서 내란이 발생하고 테러 사태가 일어나자 일본과 한국의 우익은 똑같이 테러를 방지한다는 명목의 법안을 제출하였습니다. 저는 두 우익 세력의 유사성에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반 이상이 국내외의 난민 처지가 된 시리아 민중들이 보여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두렵고 무서운 것은 테러가 아니라 전쟁과 폭정이라는 점입니다. 이를 누구보다도 야마센이 오래 전에 가르쳐 주지 않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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