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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뭉클함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오키나와를 다녀오고 나서 건강미디어l승인2019.05.16l수정2019.07.04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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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헌석(녹색병원, 진단검사실 실장)

나에게 일본 방문은 세 번째이다. 2004년도에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이하 민의련) 훗카이도 잼보리, 가족과 함께 했던 오사카 여행, 그리고 이번 오키나와 방문이다. 훗카이도나 오사카는 우리에게 각각의 특색 있는 여행지로 널리 알려져 잘 알고 있었지만 오키나와는 그저 휴양지 또는 스포츠 전지훈련 지역 정도로만 알고 있지 그 이상 특별히 알고 있는 지식이 없었다. 그러기에 오키나와 방문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부담감으로 다가왔고 사전 공부가 필요하다 느껴졌다.

오키나와 방문 이전 공부를 위해 오키나와 노트 책 학습과 우석대 서승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다. 만약 이런 사전 학습 없이 오키나와를 방문했다면 녹록지 않은 일정이었을 것이다.

오키나와는 아시아 대륙의 동쪽, 반달모양으로 늘어선 일본열도의 서남쪽 맨 끝단에 위치하고 있는 동서 약 1,000km, 남북 약 400km의 광대한 해역에 크고 작은 160개의 섬들로 구성되어 있고 아열대 기후라 연 평균 기온이 20도가 넘어 눈도 거의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일찍이 오키나와는 류큐 왕국이 다스리는 독립국이었으며, 아시아의 대국이었던 중국 및 주변국들과의 교역을 통해 번영했고 독자적인 언어와 전통을 가진 본토인과는 전혀 다른 독립된 사람들이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본토와는 달리 아픔을 갖고 있다. 1879년 메이지 정부에 의해 탄생한 오키나와 현이 있기 전 ‘류큐왕국’이라는 독립국이었으나 일본 본토의 침략으로 현으로 바뀌었고, 창씨개명과 우치나구치(오티나와 말)의 사용을 금지하고 각 가정마다 어진영(천황의 사진)을 모시게 하는 황민화 정책이 실시되었으며, 제 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에 휘말려 27년 동안 미군이 통치했다가 1972년 일본에 복귀되었다. 우리나라의 과거 역사와 너무도 닮아 있는 모습이다.

이번 오키나와 방문으로 여러 가지 배우고 느낀 나로서는 일본 본토와 별개로 오키나와라는 한 독립국가로 인정하려 한다. 문득 통역을 해주신 선생님의 결혼에 관련한 개인적인 일화가 생각난다. 통역 선생님은 한국사람이고 배우자는 일본인이라 부모님이 반대했으나 남편되는 분이 “본인은 일본사람이 아니라 오키나와 사람이다.”라는 말에 승낙을 받았다고 한다.

민의련에서 보내온 일정은 꽤 빡빡하게 느껴졌고 부산하게 움직여야 된다 생각했다. 처음 일정은 아부치라가마를 가야 했으나 인천공항에서 출국 지연으로 인해 첫째 날은 오키나와평화기념자료관에 만족해야 했다. 오키나와평화기념자료관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 전쟁 최후의 장소인 마부니 언덕에 위치해 있으며 희생된 사람들의 평화를 기리는 장소이다. 내부에 전시된 당시 사진과 자료들을 보면서 오키나와 사람들이 참혹한 전쟁에 희생되었던 가슴 아픈 사실과 오키나와의 또 다른 갈등이 느껴졌다. 자료관 건물 앞 넓은 광장에는 오키나와 전쟁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평화의 초석들이 있고 수많은 조선인들이 징병으로 끌려와 희생된 조선인들의 이름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둘째 날은 미군기지 위주로 답사를 했다.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는 일본 미군기지의 74%, 오키나와 본 섬의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기지 건설, 전기, 수도 등 모든 비용을 고스란히 일본에서 지불하고 있다하니 엄청난 군사기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직접 눈으로 접해보니 모든 군사기지들이 상상 이상으로 방대했고 그 기지의 비행장 소음 때문에 폭음 소송도 진행 중이었다.  

▲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

 

이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국제대학 헬리곱터 추락 사건, 미 해병대 초등학교 학생 강간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고 이런 상황들에 대해 일본 정부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현실은 우리나라와도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이날 가장 기억에 남는 일정 중 하나는 헤노코 기지 이전 반대 투쟁 현장 방문이었다. 먼저 활주로 공사를 위해 바다를 매립하고 있는 현장을 방문하여 현재 상황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헤노코의 바다는 이미 군사기지 건설로 인해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있었고 이전에 보이던 세계적으로 보호 동물 중 하나인 듀공도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기지 건설 현장 정문 맞은 편에는 길게 늘어선 기지 이전 반대 천막에서 많은 분들이 모여 사설 경비원들과 대치하며 1년 365일, 24시간 투쟁 중이었다. 우리에게 계속 중요하게 얘기했던 것은 어떤 물리적인 힘을 가하지 않는 진정한 평화 투쟁이라고 했다. 우리는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서명운동과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드리고 왔다. 좀 아쉬웠던 부분은 젊은 사람들의 참여가 절실해 보였다.

▲ 헤노코 기지 앞 농성자들

셋째 날은 의료기관(교도병원, 토요미 생협 병원, 특별양로원) 방문 일정이었다. 교도병원은 새로 지은 건물이라 그런지 시설과 시스템들이 잘 되어 있었다. 주로 급성기 질환을 위한 병원으로 병상수는 우리 녹색병원과 비슷하지만 의사 수가 93명, 총직원 수가 804명으로 우리 병원보다 훨씬 많았다. 매출 또한 민의련 전체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할 정도로 높았다. 그 요인에는 의사 수와 평균 환자 입원일 수가 11일 정도로 빠른 병상 회전율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차별 없는 평등 의료진료를 위해 노력하고 헤코노기지 이전 반대 운동에 의료지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토요미 생협 병원은 건강검진과 만성질환을 위한 병원이며 인공신장실은 73병상으로 큰 규모가 인상깊었고 특별 양로원의 병실은 넓은 1인 1실이 부러울 뿐이었다.
돌아오는 마지막 날에는 오키나와 박물관을 견학하여 다시 한번 오키나와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이었다.

▲ 토요미 병원의 투석실

이번 오키나와 방문은 나에게 있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시간이 없었다면 여전히 난 오키나와가 그저 일본의 한 휴양지 정도로만 알고 있었을 내가 부끄러워지기까지 한다. 오키나와의 한 많은 역사는 우리나라와 너무도 많이 닮아 있는 모습에 동질감까지 느껴지게 한다. 지금까지 민의련 관계자들과 많은 교류의 시간이 있었지만 이번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뭉클함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일정이 끝나고 저녁에는 술 한잔과 노래 한가락으로 흥을 같이 나누고 헤어질 때 포옹을 나누는 시간은 아직도 즐거운 여운과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민의련의 깊은 배려와 친절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향후 녹색병원과 민의련은 보다 깊은 유대관계와 서로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위해 어떤 노력들을 더 할 것인지 우리들은 다시 한번 의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고민을 해봤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누치두 다카라(생명이 보배다)를 되새기며, 이번 방문에 가장 많은 고민과 고생을 하신 박찬호 사무처장님께 감사드리며 같이 일정을 했던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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