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8.12.4 화 13:36

과로사 공화국 예방을 위한 필독서

[어느 과로사] 추천사 건강미디어l승인2018.12.01l수정2018.12.01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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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수 돌
고려대 교수

나루시마 이즈루 감독의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라는 영화가 있다. 광고회사 직원 다카시는 억압적인 상사와 연속적인 야근 등으로 심신이 소진된다. 차라리 자살이 낫겠다 생각하고 지하철에서 몸을 던지려던 순간 초등 동창 야마모토에 의해 구출된다. 알고 보니 그는 이미 몇 해 전 과로자살을 했던 이로, 또 다른 희생자를 구하기 위해 나타난 혼령이었다. 이렇게 오늘날 일본은 과로사와 과로자살의 원조국이 되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공식 노동시간OECD, 2017년만 보면 일본은 연 1,710시간, 한국은 그보다 314시간이나 긴 2,024시간이다. 이제 일본의 과로자살 문제는 한국인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일본의 현장 사례로부터 진지하게 배워야 하는 까닭이다.

이 책 『과로사 없는 사회』(원제)를 펴낸 두 저자 모두 독특하다. 오래 전부터 일본에서 『과로사 사회와 일본』 『과로자살』 등 저술은 물론 과로사 산재 인정을 위해 법정 투쟁을 해온 가와히토 히로시 변호사가 한 사람이다. 또, 과로자살로 사랑하는 딸을 잃은 다카하시 유키미 씨가 또 다른 한 사람이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다카하시 마쓰리의 삶과 죽음을 통해,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하러 갔던 청춘이 어찌해서 스스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소상히 살피고 더 이상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온 세상을 향해 관심을 촉구하는 것이다.

다카하시 마쓰리라는 활달한 소녀가 있었다. 1991년생이었다. 동화 작가나 기자의 꿈을 꾸기도 했다. 학교와 학원을 넘나들며 열심히 공부한 끝에 동경대에 입학했다. 1년간 중국 유학도 다녀왔다. 졸업 직후인 2015년 4월, 일본 최대의 광고 회사 덴쓰에 입사했다.

“연봉이 높긴 하지만 격무에 시달린다.”는 평판에 엄마도 걱정했지만 마쓰리는 “우리의 야근이 도쿄의 야경을 만든다.”며 뿌듯해 하거나 “선배도 멀쩡하게 잘 다니니 난 괜찮아.”라며 안심시켰다. 입사 원서에도 “역경에 강한 편”이라든지 “강한 신념과 노력으로 난관을 헤쳐 나간다.”고 자기를 소개했다.

그러나 입사 6개월도 안 된 2015년 여름, 마쓰리는 엄마와 짧은 휴가를 보내면서 “일이 힘들어. 지금은 수습이라 막차라도 타고 집에 가지만, 10월에 정직원이 되면 연장근로 제한도 없이 일할 게 두려워.”라고 말했다. 그 뒤 10월 18일에 열린 ‘덴쓰 디즈니 패밀리 데이’에 회사를 찾아간 엄마에게 마쓰리는 “회사 일이 고달파. 잠을 못 자는 게 고통이야. 이 정도로 힘들지 생각 못 했어. 그만두든지 휴직하든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엄마는 가만 있어.”라고 했다.

마침내 마쓰리는 2015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만 24세였다. 경찰의 전화로 딸의 죽음을 들은 엄마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경찰서로 황급히 달려가면서도 “영원히 도착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죽음은 한 우주의 죽음이었다.

흥미롭게도, 마쓰리의 동료와 선배들은 죽은 마쓰리가 매우 우수했다며 위로했다.

“과제 경합 아이디어도 전부 마쓰리의 아이디어였어요.”
“모든 부서에서 마쓰리를 데려가고 싶어 했어요.”
“업무를 빨리 익혔어요. 광고주 단독 면담도 다른 사람보다 빨랐어요.”

이런 이야기에 마쓰리의 사랑하는 엄마 다카하시 유키미 씨는 “마쓰리가 한눈 팔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일을 해냈구나.” 하며 내심 자랑스러워졌다. 그러면서도 “일본 사회와 덴쓰 때문에 마쓰리가 생명을 잃은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경제성장을 위해 생명을 희생하는 시스템은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와히토 히로시 변호사는 이를 위해 기업들이 실천해야 할 ‘10가지 개혁안’까지 이 책에서 제시한다.

이 책에는 다카하시 마쓰리 외에도 2020년 동경올림픽을 위해 신국립경기장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23세 청년 야마카와의 과로 자살 사례도 나온다. 또, 편의점 물품 배송을 위해 운전을 하던 42세 오사다의 과로사나 심지어 의사, 교사, 기자 등 전문직의 과로사 사례까지 소개된다.

이 모든 사례가 공통으로 보여주는 과로사의 전형적인 패턴 내지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장시간 노동, 초과 노동, 심야 노동, 주말 노동 등의 지속
(2) 당사자 심신의 만성 피로
(3) 당사자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회사 측이나 노조, 동료 등 주변의 무시
(4) 당사자의 우울증, 불면증, 무력감 등 발병
(5) 회사의 무관심, 상사의 무시와 비난 등 압박의 가중
(6) 과로사 또는 과로자살의 재발
(7) 회사 측의 형식적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등으로 여론 무마
(8) 노동 당국과 사법 당국의 형식적 처벌과 사실상 묵인
(9) 재발 방지 미명 아래 은폐 및 ‘꼼수’ 전략 개발과 장시간 노동의 영
구 지속

이런 패턴 내지 메커니즘을 미리 잘 인지하고 노동자, 기업, 정부, 노조, 가족, 시민사회 등이 더 이상의 불행을 막기 위해 총체적인 노력을 한다면 일본이나 한국은 ‘과로사 공화국’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참된 대안은 노동 속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고 노동이 유일한 생계 원천이 되어버린 패러다임 자체를 넘어가야 가능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일한다.’고 믿는 모든 이들이 꼼꼼히 읽고 토론해야 할 기본 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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