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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있는 의료’를 할 수 있도록

제14회 전일본민의련 공동조직 활동 교류 집회에 다녀와서 건강미디어l승인2018.09.20l수정2018.10.1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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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있는 의료’를 할 수 있도록

                                      양주희 (녹색병원 사회복지사)

녹색병원의 비전과 미션을 실현하기 위해 특별하게 구성된 녹색병원 지역건강센터의 사회복지사, 지역활동가로 제14회 전일본민의련 공동조직 활동 교류 집회에 참여하였다.

녹색병원에는 일본민의련의 공동조직을 모태로 주민 스스로가 건강을 돌보고, 병원 운영에 함께 참여하는 ‘녹색건강동호회’가 있다. 나는 이 녹색건강동호회 운영을 담당하는 활동가 겸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데,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병원에는 존재하지 않는 조직인 녹색건강동호회를 꾸려가는 데에 막연함이 컸다.

흔히들 병원을 ‘아플 때 돈을 내고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 기관’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아프면 주사를 맞고 수술을 받아서 쉽게 낫기를 바라지, 바쁘게 생활하면서 꾸준하게 건강 관리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환자이면서 곧 지역주민인 이들이 스스로를 건강의 주체로 생각하도록 어떻게 독려할 것인지, 이들과 함께 병원의 경영을 고민하고 함께 뛸 수 있을지, 좋지만 상당히 낯설게 느껴지는 가치를 직원들과는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지 등, 많은 질문과 고민을 가지고 교류회에 참여했다.

많은 피해가 있었던 후쿠시마 지진과 오사카 폭풍우를 뉴스로 접한 가족들의 염려와 업무에 부담을 안고 갔지만, 요코하마의 첫인상은 염려와 부담이 무색할 만큼 평안했다. 행사장 입구에서 준비위원들의 커다란 박수 소리와 하코기 상의 깊은 배려를 받으며 이동하는 동안 어느새 새벽 기상으로 인한 피로도 사라지고, 부담보다는 기대감이 솟기 시작했다.

화려하고 멋있는 요코하마 중화 거리 사자 탈춤 공연을 시작으로 일정이 시작되었다. 지진이 있은 지 며칠 되지 않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후쿠시마 지역 공동조직 회원 41명이 함께하였고, 예정에는 없었지만 이들을 소개하고 격려 응원하는 자리가 행사 시작에 마련되었다. ‘민의련 공동조직으로서 이번 재해를 통해 많이 배우고, 재해 속에서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는 후쿠시마 공동조직 회원들의 다짐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듯했다.

이렇듯 어려운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연대의 힘’을 느끼며, 민의련 공동조직 회원 2,400여명의 깊은 열정을 행사장 가장 앞줄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학교 수업에서도 맨 앞자리에 앉아본 적 없는 나인데, 이럴 수가!

문화인류학자인 헤임스 아론 씨가 외국인이자 인류학자의 입장에서 바라 본 공동조직 활동에 대한 기념 강연이 진행되었다. 아론 씨는 문화인류학자의 관점에서 고립과 고독은 담배와 고혈압만큼 위험한 것이라 설명하며, 병은 치료하나 병의 원인은 치료하지 못하는 일반 병원과는 달리, 개인과 공동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통해 고립과 고독을 극복하고 해결해나가고 있는 공동조직을 매우 의미 있게 바라보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아론 씨의 발표를 행사의 기념 강의는 활동에 대한 객관적인 의견을 구하는 동시에, 활동에 대한 공동조직의 자신감이 묻어나는 기획이라 생각했다.

아론 씨는 스트레스로 인한 통증이 나타나는 게 일본은 어깨 결림이지만, 서양은 허리 통증으로 나타나고, 어깨 결림이라는 표현이 없으며, 이러한 통증 발현 부위의 차이 또한 문화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여 참가자들이 매우 흥미로워 하였다. 후에 동료와 나는 이 강의 내용을 빌어 일을 하며 내내 가져왔던 막연함과 공동조직 활동 교류 집회 참여 첫 직원이라는 부담감을 표현할 때 ‘(막중한 책임감에)어깨가 결리다’는 표현을 유행어처럼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어서 각 지역에서 하고 있는 공동조직 활동에 대한 릴레이 토크가 진행되었고, 토크 주제는 다음의 네 가지였다. ➀헌법 9조 개정을 저지하기 위한 아마자키 의료생협의 3,000만 서명활동, ➁시즈오카서부 건강도모노카이의 무엇이든 상담회 진행 활동, ➂이시가와현 건강도모노카이 가나자와 남 블럭의 육아지원·쉼터만들기 활동, ➃의료생협 사이타마의 퇴원 후의 조합원 방문 활동이다.

민의련 기관의 파트너로서 ‘공동조직’의 존재는 이해하였지만, 이에 대한 설명을 들을수록 한국의 의료기관을 기준에 두고 해석하게 되는데, 헌법 개정 저지를 위한 전투적인 서명 활동도, 상담사도 어떤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 상황에서 무엇이든 상담해준다는 재미있는 이름의 활동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그나마 공동조직의 활동으로 수긍이 되는 부분은 퇴원한 환자(조합원)를 방문하는 의료생협 사이타마의 활동 정도!

내가 가진 기준에서 민의련 공동조직의 활동을 이해하려 했다가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의 활동을 보려 하니, 병원 직원이 아님에도 서로 돕는 마음으로, 선한 것을 향한 같은 마음으로 뜻을 모아 함께 실현해나가는 사람들의 모임이 공동조직이며, 이러한 활동이 일상생활에 가장이 기본이 되는 건강, 그리고 그 건강과 밀접하게 연결된 민의련 병원과 함께해나가고 있는 것이라 나름대로(!) 이해하며 듣고자 노력하였다.

의료생협 사이타마의 퇴원 후 조합원 방문 활동은 병원 입원 환자의 퇴원 후 장보기, 식사 준비, 목욕하기 등 일상생활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 지에 대한 염려로 인해 시작된 활동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커뮤니티 케어와 관련하여 관심이 있는 주제였다. 서로 돕는 생활 서포터를 조직하고, 가족여부, 개호보험, 요양보험, 조합원과의 지역 활동 연계 의사 등을 확인한 후, 퇴원 시 퇴원 정보를 정확히 계획하고 연결, 방문 후 활동 보고까지 이루어지는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활동에는 재활치료사, 간호사 등 전문 인력뿐만 아니라 안부 확인과 일상생활 점검 등에 많은 인력과 비용이 들어가는 것일 텐데, 공동조직 회원의 활동을 통해 환자가 퇴원 후 본인이 생활하던 지역에서 생활하며 일상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이러한 활동은, 내가 사는 지역과 병원에서 시도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첫날의 공식 일정 종료 후 의료생협 사이타마의 마스다 원장님, 야마모토 선생님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자리에서, 연수회 참여 소감, 녹색병원의 지역 활동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일본 민의련과 공동조직이 오랜 시간동안 쌓아 온 경험과 활동에 대한 감탄, 공동조직 교류회에 처음 참석한 녹색병원 직원으로서 느끼는 부담 등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우리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주시면서 염두에 두고 활동해야 할 것들을 짚어주셨다.

마스다 원장님께서 ‘얼굴 있는 의료’라는 표현을 하셨다. 병원의 민주의료 실천에 더해 공동조직을 통해 환자들과 ‘관계’를 맺어나가는 민의련의 활동을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리라 생각했다. 녹색병원 역시 ‘얼굴 있는 의료’를 할 수 있도록 관계를 살리고 이어나가는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이는 지금까지도 내게 깊게 남는 고민이기도, 과제이기도 하다. 시간을 내어 함께해주신 두 분께 깊이 감사하다.

바삐 지나간 첫날을 마무리하고, 이튿날 조식을 든든히 먹고 분과회에 참여하였다. 우리가 함께한 분과회는 신병원건설·신사업, 지역 요구, 직원과 공동조직의 공동의 노력, 민의련 경영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노력 등을 주제로 하는 ‘꿈을 실현하는 사업활동의 노력’ 분과로, 이와 관련된 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공동조직 회원이 각자의 활동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낡고 오래된 병원을 신축, 이전하는 과정에 소요되는 경비 마련과 이 과정에 직원들을 동기부여하고 함께 해나가는 것에 대한 소개가 녹색병원이 마주한 상황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병원의 경영, 지역의 하나 됨을 위해 애쓰는 공동조직에 매우 감동받았고, 이들이 월급을 받는 직원이 아닌 자원활동가이자 회원이라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으며, 녹색병원에도 이러한 공동조직을 꾸려야 한다는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책임감이 생기며 이로 인한 부담을 느꼈다(전날 만난 마스다 원장님께서는 이러한 부담만 안고 가기보다, 민의련과 공동조직의 활동을 가까이 보고 이해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말이다. 하하).

공식 일정 종료 후, 중화 거리에서 맛있는 점심 식사를 먹고, 항구에 있는 100년 역사를 간직한 창고를 개조한 쇼핑 센터에서 아기자기한 것들을 구경했다. 따뜻한 홍차와 맛있는 디저트로 1박 2일간의 바쁜 일정을 마무리하며 일상을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번 자리를 마련해주신 우리 병원과 민의련에 감사하다. 특히 친절함과 밝은 미소로 우리의 일정을 함께해주신 하코기 선생님, 녹색병원과 민의련의 중간자로 바삐 통역도 해주시고, 필요한 조언을 해주시며 든든한 기댈 언덕이 되어주신 황자혜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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