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8.9.20 목 21:19

눈빛에서 변화의 열정을 보다

일본 민의련 연수 감상문 건강미디어l승인2018.09.04l수정2018.09.20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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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에서 변화의 열정을 보다

기미경

다녀온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휘몰아치는 일상에 잠시 또 잊을뻔 했다. 숙제라는 명분이긴 하지만 이렇게 감상문으로 소회를 다시 기록하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3박 4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사람들로 부터 강의와 발표를 들었고, 여러 장소를 다녀왔고, 많은 질문이 오갔었다. 꽉찬 일정으로 알차게 보냈기에 수많은 장면이 머리 속을 스쳐간다. 그 중에서 내게 가장 선명하게 기억되는 것은 무엇일까? 선한 웃음 속에 반짝반짝 빛났던 민의련 활동가들의 ‘눈빛’ 을 마주했던 순간들이 나의 뇌리에서 가장 강하고 진한 장면으로 박혀있는듯 하다.

사회 안의 거대한 구조적 오류와 이기적인 여러 이해 집단들의 아집에 병들어 버린 세상에 자꾸만 회의감이 들고 있는 요즘이었다. 주류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며 올바른 방법으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하고 싶다는 사명으로 국제개발협력 NGO에서 수년째 몸 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지 못한채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자주 찾아왔다. 책으로, 스터디로, 대학원으로 돌파구를 찾아봤지만 미로 처럼 얽힌 모순의 실타래는 어디서부터 풀어야하는지 좀처럼 감이 잡히질 않았고, 과연 풀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긴 한 것인지 부터 의구심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가는 멈춰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에 여러 방면으로 배움과 학습의 기회를 찾아다니던 중 우연히 민의련 연수를 접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열도의 더위를 온몸으로 느끼며 일본을 다녀왔다. 

사전 과제로 방문 기관에 대한 이해를 위해 ‘차별없는 평등 의료를 지향하며’ 라는 민의련의 역사에 관해 서술된 책을 읽기로 했다. 책이 두껍기도 했거니와 현실이라는 불편한 구조에 이상적인 민의련 활동을 연결지어 생각하다보니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평등 의료라는 아주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를 모순되고 왜곡된 현실속에서 때로는 목숨을 걸고 지켜냈던 기나긴 투쟁의 시간에 대해 단순히 텍스트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기에는 나 자신이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초기 무산자 진료 활동의 선한 행위가 공산주의 색깔론에 무참히 희생되었을 때 엄청난 외부의 탄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는지 의아했다. 물론 일부 개인의 헌신과 사명으로 지켜진 것일 수 있었겠지만, 사회가 변하고 시간이 흐르는 동안 민의련이 대중들과 더욱 가까운 거리에서 광범위한 네트워크로 연대하고 조직되어 가는 것이 어떤 원리로 가능한 것인지 쉽사리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나는 넘기지 못한 책장들을 부여 잡고 여전히 커다란 물음표만 안은 채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더위 때문인지 아니면 일정 합류 전부터 한국에서 냉방병으로 걸린 감기 탓인지 정신이 몽롱했다. 한국 직장인들의 일상적인 습관 처럼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카페인으로 정신을 깨워보고 싶다는 욕구가 나를 다그쳤지만, 카페에 들르고 싶다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낼 틈도 없이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이곳 저곳을 바쁘게 누비며 다녔다. 민의련 병원, 지역 간호대학, 커뮤니티 센터, 민의련 사무실 등을 오가며 워크숍, 발표, 탐방, 현장 학습 등의 다양한 형태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지역과 병원의 유기적이고 튼튼한 연결 고리를 만들고자 하는 민의련의 역할과 활동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민의련에 계신 여러 선생님들께서 강의를 해주실 때는 하나라도 더 배우고픈 마음에 펜을 들고 메모할 내용을 기록하려고 했는데, 사실 내 메모장은 텅텅 비어있기만 했다. 집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강의를 해주시는 그 분들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믿음의 힘에 압도당해 필기를 할 겨를이 없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런 이상적인 의료 보호 서비스를 지향하고 실천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우리는 묻고 또 물었다. 민의련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의 월급이 다른 곳보다 높은 것이 아닐까, 민의련에 우리가 모르는 거대한 재정적인 힘이 있는 것일까, 일본 의료 체계가 보장해주는 시스템과 국가의 안정적인 경제 상황이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준 것일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미련하고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는지를 말이다. 우문한 우리의 질문에 정확하고 명쾌한 답은 민의련에서 활동하는 많은 분들의 눈빛에 있었다. 비록 지금의 현실은 비루하더라도, 우리가 연대하고 노력하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맑고 순수한 눈빛,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분들도 인정하고 있었다. 부단히 애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민의련의 수고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없이 많은 한계와 어려움에 맞닥뜨리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덮어두거나 뒤로 밀어내고 있지 않았다. 옆에, 가까이에 두고 더 많이 들여다보며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민의련 활동가들의 말에서 힘이 느껴졌다.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고자 하는 그분들의 단단하고 견고한 의지가 모여 민의련을 지탱해주고, 이끌고 있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에 다다를 때쯤, 자연스레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에게는 어떤 믿음과 의지가 남아 있는 것일까, 너무 쉽사리 지친 것은 아닐까, 세상이 너무 쉽게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성찰하다 보니 알맹이를 잃은 무지한 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다행이었다. 세상에 대한 믿음도, 변화에 대한 희망에도, 사회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대해서도 무지해져버린 나를 알아차리게 되어서 말이다. 이러한 무지가 이제는 새로운 앎에 대한 확장의 세계로 접어들 수 있게 될테니 얼마나 다행인가.

연수기간 동안 도움 주신 많은 분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너무도 죄송하다. 항상 우리를 배려하며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신 민의련 사무실의 하키고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다음에는 민의련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사회 운동의 기나긴 마라톤에서 지치지 않고 달려가고 있는 민의련 활동가 선생님들의 이야기도 더 많이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연수기간 동안 함께 참여한 보건의료 계열 학생들과 대화하며 건강한 세상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자 곳곳에서 애쓰고 노력하고 있는 동지를 만나서 참으로 반가웠다. 원활한 연수 진행을 위해 실무진으로 애써주신 하정 쌤, 희정 쌤께도 무한한 박수를 보내드리며, 열정과 애정이 넘치는 통역을 해주신 혜란 쌤께도 뜨거운 환호를 보낸다. 무리하게 연차를 써서 다녀오느라 마음 졸였지만 역시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지르고 보는게 이번에도 맞았다. 기대된다. 다음의 지름은 나를 어떤 곳으로 데려가 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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