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8.9.20 목 21:19

낙태와 여성 건강권(1) - 건강권과 재생산 건강권

[의료, 젠더를 말하다](1) 건강미디어l승인2018.09.01l수정2018.09.10 18:45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낙태와 여성 건강권(1) - 건강권과 재생산 건강권


                             고경심(산부인과 전문의)

I. 들어가며

낙태(1)는 여성 개인의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라기보다는 피임, 성관계에서 남녀의 주도권과 결정권, 몸에 대한 지식, 의료서비스 접근성 등 다양한 사회적 삶의 맥락 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이자 사건이다. 따라서 낙태 행위 그 자체만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낙태를 한 여성과 시술의사를 처벌하는 현행 형법은 이러한 과정들을 생략하고 눈 감은 채 도덕적, 형법적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다. 낙태문제를 보는 관점을 여성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고 본다.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육체적, 심리적 변화와 부담이 얼마나 큰 것인가, 건강상의 위해를 주지 않는 조건이 무엇인가, 임신 유지와 출산의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되물어야 한다고 본다.(2)

필자는 2018년 5월 24일 형법 낙태죄 조항에 대한 위헌 심판에 청구인 측 변호인단 추천으로 참고인 의견서를 제출하고 재판에서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이 글에서 참고인 의견서에 제출된 의견 중 여성 건강권 관련 내용을 요약 정리하였다.(3)

II. 건강권과 재생산 건강권

임신, 출산과 관련된 권리에 대한 국제적 논의는, 1968년 테헤란 국제인권총회, 1974년 부쿠레슈티 세계인구총회, 1975년 멕시코시티 제1회 세계여성대회, 1994년 카이로 국제인구개발회의, 1995년 북경 세계여성대회를 거치면서 확대 발전되었다. 특히 카이로 국제인구개발회의와 1995년 북경 세계여성대회에서 임신, 출산과 관련된 권리는 ‘재생산 권리(reproductive rights)'라 명명되며 인구 통제가 아닌 사회권의 의미에서 ’재생산 건강(reproductive health)'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재생산 건강은 육체적·정신적·사회적인 안녕의 상태로서 단지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음이 아닌 생식계 및 그 기능과 과정에 관련된 모든 것에서 안녕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재생산 건강은 사람들이 만족스럽고 안전한 성 생활을 할 수 있고 그들이 재생산 능력을 갖고 있고 언제 그리고 얼마나 자주 할 것인지를 결정할 자유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 마지막 조건에 함축된 것은 남성과 여성의 다음과 같은 권리이다: 그들이 선택한 가족계획의 안전하고 효과적이고 감당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들을 권리와 그것에 접근할 권리, 그들이 선택한 출산력 조절의 법률에 반하지 않는 다른 방법은 물론이고, 가족계획의 방법을 그들 선택에 따라 접근할 권리와 그리고 여성들이 안전하게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커플에게 건강한 신생아를 가질 최선의 기회를 보장하도록 적절한 건강관리 서비스에 접근할 권리이다.(4)

이 두 대회가 중요한 분기점이 된 것은, 재생산 권리와 건강 개념을 제시한 것뿐만 아니라 “성 평등과 여성의 권한 강화(gender equality and empowerment of women)”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인구 정책 국제회의에서 여성의 생식 능력을 인구 통제의 대상으로 인식하였던 반면에, 이 대회는 여성의 자율성을 행사하는 권한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성과 재생산 건강을 사회적·경제적·정치적 맥락에서 접근하였다.

2000년 유엔 인권조약 감시기구의 일반논평 및 일반권고(5)에 따르면, ‘일반논평 14: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에 대한 권리(제12조)’에서 “건강은 다른 인권의 행사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기본적인 인권이다. 모든 인간은 존엄한 삶에 보탬이 되는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였다. 세계인권선언 제25조 1항은 “모든 사람은 식량, 의복, 주택, 의료, 필수적인 사회 역무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확인하고 있다.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건강권에 대하여 국제인권법 상 가장 포괄적인 조항을 규정한다.

또 “건강권을 건강할 권리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건강권은 자유와 권리를 모두 포함한다. 자유는 성적 자유 및 생식적 자유 등 자신의 건강 및 신체를 통제할 권리 및 고문, 합의하지 않은 치료 및 실험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등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포함된다. 반면에, 권리는 사람들에게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을 누릴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는 건강 보호 제도에 대한 권리를 포함한다”고 명시하였다.

또한 건강권을 실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가용성, 접근성, 수용성, 질(quality)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가용성은 제대로 기능하는 공공 보건 및 보건의료 시설,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프로그램이 충분한 양으로 이용 가능하여야 한다. 접근성(accessibility)은 비차별, 물리적 접근성, 경제적 접근성, 정보 접근성 등 네 가지 차원을 가진다. 수용성은 모든 보건 시설, 물품 및 서비스는 의료 윤리를 존중하여야 하며 개인, 소수자, 민족 및 공동체의 문화를 존중하는 등 문화적으로 적절하여야 하며 성(gender)과 생명주기의 필요에 민감해야 하며, 비밀유지 존중 및 관련인의 건강 상태 개선을 위해 계획되어야 한다. 질(quality) 관리는 과학적 및 의학적으로 적절하여야 하며 양질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숙련된 의료 관계자 등이 필요하다.

이후 1966년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과 함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의 정초 이후 사회권 규약이 구체화되었다. 2008년 사회권 규약의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사회권 규약 선택의정서가 채택되었고 2016년에는 ‘성과 재생산 건강권(right to 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에 관한 일반 논평’(6)을 발간하였다.

이 논평에서는 성과 재생산 건강의 가용성을 보장해야 할 필수적 의료 중 하나로 낙태 의료서비스와 낙태 후 돌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성과 재생산 건강의 접근성(accessibility)의 보장에서도, 안전한 낙태와 낙태 후 돌봄에 관한 정보에 접근할 권리를 청소년을 포함하여 모든 개인과 집단이 가진다고 제시한다. 성과 재생산 건강의 질(quality) 관리에서는, 성과 재생산 서비스의 제공에서 과학기술의 발전과 혁신을 포괄하지 못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질 관리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 예로 낙태 의료서비스를 지적한다.(7)

또 각 국가는 원치 않는 임신과 안전하지 않은 낙태를 예방하기 위해서 법과 정책적 수단을 강구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규제적인 낙태 법률을 완화할 것이 명시된다. 또한 자율성과 평등권을 침해하는 대표적 예시로 낙태를 형사 처벌하는 것 또는 규제적인 낙태 법률을 들고 있다.(8)

앞으로 형법 상 낙태죄 조항과 관련된 한국의 현실이 유엔 인권조약의 건강권 권고에 반하여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주석...

(1) ‘낙태’라는 용어가 태아를 분만에 앞서 인위적으로 모체 밖으로 배출하거나 또는 태아를 모체 내에서 살해하는 행위를 내용으로 하는 범죄로 규정할 때 사용되고 있다. 세계산부인과학회를 비롯한 의학계와 국제 학계에서 통용되는 용어는 induced abortion이며 이는 보통 유도유산, 또는 인공유산이라고  번역한다. 한편 한국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는 ‘인공임신중절’이라 지칭하고 있다. 본 글에서 형법상 규정된 낙태죄에 대한 논의이므로, ‘낙태’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되 필요에 따라 모자보건법에서 규정하는 ‘인공임신중절’, 또는 ‘인공유산’이라는 용어를 병용하기로 한다.

(2) 고경심(2010). 지정토론문: 여성의 건강과 재생산권의 관점에서 본 낙태, 한국법학원 『저스티스』 통권 제121호, p.415.

(3) 참고인 의견의 주요 논지는, 기존 헌법 재판의 논의에 나타나는 낙태를 둘러싼 논점, 즉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선택권(자기결정권)이라는 고식적인 프레임에서 뛰어넘어야 하며, 낙태 객체인 태아의 생명권을 태아의 발달단계에 따라 구분하는 논쟁보다는, 낙태로 인한 여성의 건강상의 위해성과 안전성을 검토하고, 여성의 건강권과 재생산 건강권을 존중하는 시각으로 낙태죄의 위헌성 여부를 검토할 것을 요청하였다.

(4) 하정옥(2017). 낙태에 대한 형사처벌의 시대착오: 건강권-사회권-인권 실천의 국제적 합의를 중심으로. 의료와 사회. 8: 64-79. 재생산권 관련 글은 주로 하정옥의 글을 인용하였다.

(5) 국가인권위원회 국제인권팀(2006). 유엔인권조약 감시기구의 일반논평 및 일반권고.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위원회. 서울.

(6) 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2016). General Comment no.22 on the right to 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article 12 of the International Covenant oa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4 March 2016, E/C, 12/GC/22.

(7) 이주영(2016). 사회권규약의 발전과 국내적 함의. 국제법학회 논통 61(2):125-157.

(8) 위의 하정옥(2017).

 

건강미디어  mediahealth2015@gmail.com
<저작권자 © 건강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강미디어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미디어소개기사제보후원안내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광진구 동일로 18길 118  |  대표전화 : 010-4749-4511  |  팩스 : 02-6974-1026
사업자등록번호 : 제206-82-13114호  |  이메일 : mediahealth2015@gmail.com  |  발행인 겸 편집인 : 백재중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재중
Copyright © 2018 건강미디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