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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생협 운동의 시작

우리나라 의료 협동조합의 역사와 현황(4) 백재중l승인2017.12.25l수정2018.04.0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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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의료 협동조합의 역사와 현황(4)

의료생협 운동의 시작

 

▲ <의료 협동조합을 그리다> 표지

우리나라 의료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의료 협동조합을 그리다>(백재중 지음, 건강미디어협동조합, 2017) 5장 '우리나라 의료 협동조합의 역사와 현황'을 몇 차례 나누어 연재한다......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시행되기 이전 재정 조달의 일차적 과제였던 시기에 민간 의료보험 단체로 설립된 청십자와 난곡희망의료협동조합이 1989년 거의 동시에 해산함으로써 의료 협동조합은 한동안 공백기를 맞게 된다. 이제 국가가 운영하는 의료보험 체제 아래 의료 협동조합은 다른 철학과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1987년 경기도 안성군 고삼면에서 연세대학교 기독학생회 의료인들이 주말 진료소를 차렸다. 당시만 해도 농촌 지역에는 의료 기관이 없어 제대로 된 의료 기관을 만들자는 지역의 요구가 있었다. 지역 주민 300여 명과 2명의 의료인이 뭉쳤다. 당시 농협의 경험이 있는 농민들은 협동조합 형태로 병원 만들기를 제안하여 1994년 안성의료생활협동조합이 탄생하게 된다. 안성 의료생협은 20년이 지난 지금 안성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5천여 명이 조합에 가입해 있다. 일반 의원 3곳, 한의원 2곳, 치과 의원 1곳 총 6곳에 15명의 의사가 일하고 있으며 재가 장기 요양 기관도 운영하고 있다.25)

1989년 기독청년의료인회 회원 40명이 공동으로 출연하여 만든 산재, 직업병 전문인 평화의원은 1996년 평화의료생협으로 재창립되었다. 1991년부터 지역에서 건강 문제를 고민하던 지역 주민 조직이 1996년 안산에서 의료생협을 추진하였으나 1년 만에 활동을 중단하고 이후 2000년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26)

1998년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생협법) 제정 이후 제도로부터 오는 공신력과 안성, 인천평화 등의 사례가 있어 의료생협을 지역에서 만들 수 있는 외부 환경이 조성된다. 

이러한 외부 조건은 2002년 원주, 서울, 대전에서 다양한 협동조합, 영등포산업선교회 중심의 노동자 활동, 지역 화폐의 경험과 만나면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나갔다. 새로이 서울시 노원구 함께걸음, 전주, 청주 3곳의 준비위와 함께 인적 교류를 넘어선 조직적인 연대 활동을 펼치기 위해 2003년 6월 의료협동조합연대가 창립되
었다. 마침 KBS 일요스페셜에 보도되면서 의료 협동조합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 주요 사업은 한일 의대생 교류회, 시민사회 단체, 의료인들에게 의료 협동조합 존재 홍보였다. 이때부터 의료 협동조합 설립 문의들이 증가했으며, 연대를 통한 설립 지원이 이루어졌다. 이 무렵 연대 소속 외 의료 협동조합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27

2000년대 의료생협이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사무장병원’이라는 곳이 의료생협을 이용해 영리병원을 차리기 시작한다. 당시 의료생협 병원을 열기 위해서는 조합원 300명에 3,000만 원 이상의 출자금이 필요한데 설립을 대행해 주는 브로커들도 활개를 치기 시작한다. 보건복지부는 의료생협 의료 기관을 부속 의료 기관으로 규정하고 비조합원 이용 금지를 지침으로 삼아 신규 의료생협 설립을 차단한다. 

한국의료생협연대는 의료생협 부속 의료기관 지침을 철회시키기 위해 노력하여 2008년 생협법 개정 시 일부 반영된다. 연합회 소속 의료협동조합들은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재가 요양 기관을 설립하여 노인 돌봄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자활 지원 센터 등 정부 위탁 사업도 하게 된다.

의료생협의 확산과 더불어 유사 의료생협도 확산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의료생협은 인가가 지자체에 맡겨져 있고 감독도 허술하여 속칭 사무장병원들이 법인격을 취득하는 통로로 활용되었다. 이들은 온갖 불법과 탈법의 온상이 되었는데 이러한 일들이 의료생협의 간판을 달고 이루어져 사회적 비난이 일기도 하였다. 2008년 61)개에 불과하던 의료생협이 2013년 340여 개에 이를 정도로 급증하게 된다. 의료생협연합회 소속 의료생협이 18개였던데 비추어보면 나머지 320개 의료생협의 상당수가 유사의료생협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28 의료생협연합회는 의료생협의 관리 감독을 강화하도록 공정거래위원회, 보건복지부, 지자체에 알리는 작업을 시작했으며 유사 의료생협과 구별하여 사회 책임성과 운영의 투명성이 더욱 강화된 사회적 협동조합을 추진하기로 하였다.29)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의료생협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협동조합기본법 논의가 시작되어 한국의료생협연합회 쪽에서는 사회적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당시 의료생협들은 1998년 제정된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 근거하여 운영되고 있었으나 딱 맞지는 않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유사 의료생협과 구별 짓고 사회적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자 2013년부터 연합회 소속 의료생협들은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해 갔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의료생협에서는 조합원 300명에 출자금 3000만 원이던 최소 설립 기준이 사회적 협동조합에서는 조합원 500명, 출자금 1억 원, 1인당 출자금도 5만 원 이상으로 강화되었다. 이에 조합원과 출자금이 모자란 의료생협들은 출자금을 추가로 걷고 조합원을 늘리는 작업을 선행해야 했다.30) 한국의료생협연합회도 2013년 10월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로 전환한다. 1994년 안성에서 시작된 새로운 의료 협동조합 운동은 외형적으로 조합 20개, 세대 조합원 3만 명, 출자금 67억 원, 활동 조합원 1,555여 명, 직원 430명을 갖는 큰 조직으로 성장하였다.31)

 

참고문헌

25. 김하영, 「‘의료생협’이 간판을 바꾸는 이유는?」, 『프레시안』 2013.11.20.
26. 박봉희, 『건강도시』, 한울, 2014
27. 박봉희, 「한국의료협동운동의 현황과 전망」. http://cafe.daum.net/educoop
28. 김하영, 「‘의료생협’이 간판을 바꾸는 이유는?」, 『프레시안』 2013.11.20.
29. 임종한 외, 『참 좋은 의료공동체를 소개합니다』, 스토리플래너, 2015.
30. 김하영, 「‘의료생협’이 간판을 바꾸는 이유는?」, 『프레시안』 2013.11.20.
31. 임종한 외, 『참 좋은 의료공동체를 소개합니다』, 스토리플래너, 2015.

 

 

백재중  jjbaik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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