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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곡희망의료협동조합

우리나라 의료 협동조합의 역사와 현황(3) 백재중l승인2017.12.25l수정2018.02.08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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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곡희망의료협동조합

우리나라 의료 협동조합의 역사와 현황(3)

우리나라 의료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의료 협동조합을 그리다>(백재중 지음, 건강미디어협동조합, 2017) 5장 '우리나라 의료 협동조합의 역사와 현황'을 몇 차례 나누어 연재한다......

난곡은 1960년대 이후 군사독재 정권이 추진한 경제 정책에 의해 농촌에서 쫓겨난 농민들, 그리고 서울 용산, 이촌, 창신동 등지에서 재개발로 강제 철거당한 철거민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다. 여기에 1976년 3월 13일 난곡희망의료협동조합이 설립된다.17)

▲ 진료를 기다리는 난곡 주민들

청십자의료협동조합에 장기려가 있었다면 난곡희망협동조합에는 김혜경이 있었다. 가톨릭교회에서 지역 사회 조직가 훈련을 받은 김혜경은 1969년 창신동 철거 촌 싸움에 참여해 승리하는 데 중요 역할을 담당한다. 이후 난곡으로 옮긴 김혜경은 마을 아낙들과 함께 국수모임을 만든다. 서울 곳곳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이 옮겨
온 것이니18) ‘서울에서 가장 못 사는 곳’이라 할 만했다. 

1974년 9월 15일부터 서울의대 가톨릭 학생회가 성당의 소개로 의료 봉사를 나오기 시작한다.19 아파도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던 주민들은 일주일 100원을 내고 진료를 받았고 100원이 없는 사람은 상담 후 무료 진료를 받기도 했다. 100원씩 모은 돈은 당시 비싸서 구하기 어려웠던 결핵약을 사서 간호사 수녀들과 함께 결핵 환자 집을 순회하며 나눠주는 데 사용하였다. 소문이 나면서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늘고 비교적 여유 있는 사람들까지 몰리기 시작한다. 난곡 주민들과 김혜경은 대책을 찾다가 협동조합 방식을 강구하기로 하고 그해 겨울부터 협동조합 회원들을 모으기 시작하여 6개월 만에 100원의 조합비를 내는 118세대를 모으게 된다. 마침내 1976년 3월 13일 김혜경의 집안 마당에서 난곡희망의료협동조합 창립 총회를 열게 되었다.20 김혜경은 1960년대 초반에 인천의 성당에서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가 강의하는 교육에 참여하여 협동조합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21)

협동조합은 한 달에 한 번씩 각 반 대표들이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를 개최하고 철저하게 주민들이 중심이 되는 조직 체계와 운영 원칙을 고수해 나갔다. 5인 가족 이상 월수입 3만 원 이하 세대부터 조합원으로 받았는데 10시간의 협동조합 교육을 받지 않으면 조합에 가입시키지 않았다. 설립 당시 118가구로 시작한 협동조합은 10년 만에 2,200가구로 늘었다. 당시 조합원들에게 매달 100원씩 걷어 목돈이 필요한 사람들의 치료비로 사용하였다. 이들의 진료는 서울의대 가톨릭 학생회 학생들과 몇몇 종교인들의 자원 봉사로 운영되는 주말 진료소에서 이루어졌다.

1983년에 이르러서는 3만 명의 주민들 중 1만여 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하게 된다. 10주년이 되던 해인 1986년 4월 20일 총회에서는 병원 설립을 결의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7,000만 원의 돈을 모아 신림1동 시장 상가 건물을 임대하고 성모병원에서 보내 준 의료 장비 등으로 병원을 꾸며 1988년 8월 29일 요셉의원을 개원하게 된다. 그러나 1년 후인 1989년 7월부터 전 국민 의료보험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의료보험 체계 하에서 협동조합의 새로운 방향 설정에 실패하면서 협동조합은 해산되고 요셉의원은 가톨릭교회의 관리로 넘어간다.22) 23)

청십자의료협동조합과 난곡희망의료협동조합은 국가 의료보험이 시행되기 이전 주민들의 입장에서 의료비 조달의 문제가 심각했던 상황에서 의료비 공제의 성격을 우선하는 협동조합의 형태로 설립되고 운영되었다. 이후 자체 소유의 의료기관을 설립하는 데까지 이르기는 하지만 전 국민 의료보험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1989년을 기점으로 의료 협동조합으로서의 자체 동력을 잃고 문을 닫게 된다. 협동조합에 의료보험료 명목으로 조합비를 내다가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시행되면서 여기에도 보험료를 납부하면서 이중 부담이 발생하는데 조합원들 사이에 혼란이 발생하고 이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서 협동조합 폐쇄에 이르게 된다.

이외에도 1972년에는 성남에서 주민교회 이해학 목사 등이 중심이 되어 ‘주민교회의료협동조합’을 시도하였으나 유신 정권의 시작으로 좌절되었다. 이후 주민교회는 1979년 12월에 주민교회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한다. 1974년에는 서울 신설동 판자촌에서 허병섭 목사 등이 의료 협동조합을 설립하려고 하였으나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1980년대 초 인천산업선교회에서 무료 주말 진료를 통해 주민과 가까워지면서 조합원 200세대를 조직한 민들레의료협동조합(200세대) 결성 시도가 있었다.24)

 

참고문헌 

17. 김형미 외, 『한국생활협동조합운동의 기원과 전개』, 푸른나무, 2012.
18. 달동네 난곡이 재개발로 완전히 사라진 것은 2004년이다. 
19. 의대 출신인 김중호 신부가 가톨릭학생회 지도신부가 되었고 그 전에는 성남에서 주말 진료를 갔는데 학교에서 너무 멀어서 가까운 난곡으로 변경하게 되었다고 한다.(김형미 외, 『한국생활협동조합운동의 기원과 전개』, 푸른나무, 2012.)
20. 심재옥, 「여성진보정치 열전. 김혜경」, 『미래에서 온 편지』, 2013.
21. 김형미 외, 『한국생활협동조합운동의 기원과 전개』, 푸른나무, 2012.
22. 심재옥, 「여성진보정치 열전, 김혜경」, 『미래에서 온 편지』, 2013.
23. 김지원, 「우리 동네 난곡. 함께하는 100원의 힘 즐겁게 가난 이겨냈다」, 『오마이뉴스』, 2008.7.8.
24. 한국의료사협연합회 보건복지위원회, ‘간호사네트워크’ 간담회, 2016.

 

 

백재중  jjbaik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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