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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신과 의사와 신비주의

건강미디어l승인2017.11.11l수정2018.04.06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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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와 신비주의
                                           인권의학연구소 소장 손 창 호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자신을 정신과 의사라고 밝히고 나면 열에 아홉은 내 앞에서는 말 조심 해야겠다고 농담반 진담반의 얘기를 한다.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는 남의 말 몇 마디와 행동 몇 가지를 통해 그 사람의 내면 깊숙한 약점과 비밀을 간파하도록 훈련받은 사람으로 종종 믿는다.

  또 다른 정신과 의사에 대한 흔한 믿음은 정신과 의사도 정신적으로 살짝 맛이 간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그럴듯한 근거중 하나는 의사들이 전공을 선택할 때 자기가 실제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과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 논리에 따르면 무릎이 신통찮은 사람은 정형외과를 하고 외모가 안 되는 사람들이 성형외과를 한다. 이런 믿음은 특히 의사사회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나의 부모님은 모두 의사이시다. 내가 수련의를 마친 후 정신과를 전공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다. 아버님은 “너는 내가 보기에는 상당히 정상적인 편인데...” 라고 하셨다.

  또 다른 흔한 믿음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간 본들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정신적인 문제는 자기 마음먹기 나름인데 내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를 만난 본 들 별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나중에 마음만 고쳐먹으면 되니 의사에게 갈 필요 없다고 하여 이래저래 정신과 의사는 필요 없게 된다.

  정신과 의사는 말 그대로 정신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에 대한 훈련을 받고, 그 지식을 제대로 이해하여 이를 사용하는 방법을 체득하였다는 자격을 취득한 사람이다. 그리고 수련 기간 중 정신과의사는 환자를 이해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배운다. 환자가 아닌 사람들과 대화하고 교류하는 것은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차 마시고 술 마시면서 한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병원에 오지도 않을 것이고 아프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신경 쓰기에는 정신과 전공의 시절이 너무 바쁘기도 하다.

  이런 정신과 의사에 대한 오해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 것 같다. 첫째는 무엇보다 오랜 기간 정신질환의 원인에 대해 인류가 무지하였다는 점이다. 원래 사람이란 것이 모를 때가 제일 두려운 법이다. 공포영화에서 제일 두려운 장면은 괴물이나 귀신의 실체가 보이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 아니라 그냥 그림자만 보이는 영화 중반부까지이다. 1984년 사망 당시 유럽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언론에 소개되었던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이런 정신질환에 대한 사람의 공포를 분석한 바 있다. 푸코는 인간은 자신이 정상(normal)이란 것을 입증하기 위해 항상 비정상(abnormal)을 필요로 한다고 하였다. 과거에는 정상이란 것은 모습 또는 외모에 의해 결정하였으며 그래서 유럽에서 외모가 차이가 나는 한센씨병 환자를 비정상의 대상으로 삼아 그들을 두려워하고 배척하고 격리 수용하였다. 그러나 한센씨병 환자가 17세기에 급격히 줄어서 거의 유럽에서 사라지자 비정상인이 없는 정상인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하여 다시 다른 종류의 비정상인을 새로 지목 하였는데 그 대상이 바로 광인(狂人)이었다. 이제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외모(外貌)에서 이성(理性)이 된 것이다. 그때부터 유럽 사람들은 정신질환자를 한센씨병 환자를 수용하였던 시설에 감금하고 두려움이 큰 만큼 학대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 푸코의 분석이다. 어쨌든 잘 모르다 보니 두렵고, 그러다 보니 두려운 대상과 같이 생활하는 정신과 의사까지도 다소 두렵게 여기거나 아니면 별종 취급하게 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두 번째의 원인은 정신치료 또는 정신분석이란 다소 신비스러워 보이는 치료법의 존재이다. 정신과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약물은 1949년 호주에서 케이드(Cade)가 사용한 리튬(lithium)이란 약이다. 불과 7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실제 정신질환에 대해 약물치료가 광범위하게 사용된 것은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 부터이다. 이 시기 전에 정신과에서 할 수 있었던 근대적 치료법은 프로이드(1856-1939)와 그의 영향을 받은 후학들에 의해 만들어진 각종 정신치료기법이 거의 전부였다. 이런 종류의 정신치료들은 대부분 의사와 환자 단 둘만이 밀실에서 그것도 한번에 50분에서 1시간가량 진행된다. 이 안에서 있었던 모든 대화 내용은 환자의 프라이버시 그 이상의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경우 예를 들어 같은 정신과 의사 내에서 환자에 대한 치료를 상의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것도 은밀하게 토의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는다. 더구나 이런 방식의 치료는 나도 모르는 내 마음속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이란 인식, 즉 정신과의사는 나의 이면의 부끄럽고 어두운 면을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신비감과 공포감을 더하게 되었다.

   세 번째로는 정신과 병동이 폐쇄병동이란 점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자유를 구속한다는 점에서 감옥과 폐쇄병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폐쇄병동에 이해할 수 없는 광인을 가두어 놓은 곳이 정신과 병동이란 인식은 제법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요즘은 최소한 감옥보다 정신과 병동이 덜 공포스러울 것이라 생각되나 아직도 실습을 위해 정신과 병동에 처음 들어서는 의대생이나 간호실습생들의 모습에서 공포감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신이나 마음속에는 사실 남들이 모르는 구린 구석이나 병적인 구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자신의 병적인 부분을 알아채 바로 정신과 병동에 가두어 버릴 정신과 의사는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주로 의사나 간호사와 같이 의료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데 실습과정에서 생기는 편견이다. 흔히 정신과 실습이라 함은 정신과 폐쇄병동에 들어가서 환자와 이런 저런 얘기 좀 하고 같이 탁구 좀 치고 하면서 2주에서 4주 정도 지내는 것이 의대생들의 정신과 실습의 대종이다. 이 기간 중 정신과 전문의의 환자에 대한 면담은 정신치료가 가지는 폐쇄성으로 인해 제대로 구경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문제는 정신과 약물치료의 대부분이 치료효과를 보이는 데 최소 4주 이상을 요한다는 점이다. 결국 2-4주간의 실습은 환자의 호전을 경험하기에는 턱없이 짧고 일부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약물치료의 부작용만을 충분히 경험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사실 정신과 의사 외의 의사들에게 있어서는 이 실습이 평생에 가지는 유일한 정신과 경험이다 보니 많은 의사들이 정신과에 대해 부정적 편견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도 할 법하다. 이런 실습과정의 폐해 때문인지는 몰라도 국내에서나 외국에서나 정신과에 대한 편견은 일반인보다는 의사들이 더 크다고 알려져 있다(임상행동과학, 조두영, 일조각 1985).

  10년 전이었다. 처음 병원을 방문한 젊은 여성이 약 30분 정도 자신의 증상과 어려운 처지를 얘기하였다. 내가 참 힘들었겠다고 응답하자 그 여성이 갑자기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사실은 이제까지 자기가 한 얘기는 모두 지어낸 이야기란다. “정신과 의사라면 자신의 거짓말을 눈치 챌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속는 것을 보니 정신과 의사도 별거 아니네요.” 라고 얘기하였다. 사실 맞다. 정신과의사도 그냥 정신질환이라는 일부 질병에 대한 지식을 더 많이 가질 뿐이지 별 거 아니다. 두려워 할 것도 거리를 둘 것도 없는 그냥 당신의 정신적 괴로운 증상을 도와주는 의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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