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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붉은 의료 - 소련의 사회화한 건강

옮긴이의 글 건강미디어l승인2017.11.11l수정2017.11.2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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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 이미라

  소련의 의료제도라니, 생경했다. 현실 공산주의가 거의 사라진 지금에 와서 다시 그들의 ‘실패한’ 제도를 살펴 볼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가진 자원에 비해 탁월한 효율을 보이고 있는 쿠바의 의료 제도도 소련의 모델을 적용했으므로, 소련의 초기 의료제도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무척 궁금해졌다.
  이 책은 영국 출신 공중 보건 학자인 아서 뉴스홈과 미국 출신 공중 보건활동가인 존 아담스 킹스베리가 1932년 소련을 방문한 후 소련의 사회상과 보건 의료 체계를 분석, 소개한 보고서이다. 
  아서 뉴스홈은 밀뱅크메모리얼기금의 지원을 받아 유럽 18개국의 의료제도를 살피고 분석하는 작업을 막 끝낸 참이었고, 원래 이 프로젝트에 포함되지 않았던 소련을 추가로 방문하게 된 건, 당시 밀뱅크메모리얼기금의 사무국장이었던 킹스베리의 역할이 컸다. 근대 이후 보건 의료를 전적으로 민간 영역에 기댄 두 나라의 의료제도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무르익던 시점이었고, 이들은 국민 건강 개선을 위해 공공 의료, 즉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의기투합하여 도와주는 이들이 많았고, 밀뱅크메모리얼기금이 재정 지원을 하는 등 소련 방문은 준비부터 실행까지 순조로웠다. 
  그들이 직접 경험한 소련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의료의 접근성은 높았다. 거주지에서든, 일터에서든 어렵지 않게 의사를 만날 수 있었고, 일터마다 마련된 탁아소에는 간호사와 교사들이 아이들을 돌보며 위생 교육을 담당했고, 노동자들이 근무 중에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허용되었다. 결핵이나 성병 등 특수 관리가 필요한 질병은 전담 요양소가 따로 마련되었고, 경증 환자들은 낮에는 일터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 요양소에 머물면서 치료를 받았다. 특수 식이가 필요하면 일터에 마련된 식당에서 특수 식이를 제공 받았고, 충분한 요양이 필요하면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위치한 요양소로 전원되기도 했다. 
  아프지 않더라도 노동자들은 일 년에 2주, 요양소에서 휴가를 지낼 기회를 누렸다. 제정 러시아 시대의 황제나 귀족들이 별장으로 이용하던 크림 반도의 화려한 공간들이 요양소로 운영되었다. 
  여성은 혁명 이전보다 독립적인 개체로 사회에 참여하였다. 노동의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졌고, 불행한 결혼을 그만두는 과정은 전보다 쉬워졌다. 임신 기간 동안에는 지역 일차 의사가 건강 관리를 하고 분만은 종합병원으로 전원되어 이루어지며, 병원에서의 의료 기록은 분만 후 일차 의사에게 다시 전달되었다. 분만 후에는 두 달 간의 유급 휴가가 주어졌다.
  저자들은 중앙정부가 정책을 입안하고, 지역정부가 실행을 분담하는 중앙집권적 방식을 소련 의료제도가 광대한 국토에도 불구하고 높은 효율과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동력으로 이해했다. 
  물론, 기간산업에 필요한 기계 등의 수입이 공산품의 수입에 우선하고, 산업화가 계획처럼 빨리 진전되지 않는 등의 계획경제의 단점 때문에 먹거리나 공산품은 늘 부족했다.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의 탄생에 전적 지지를 보내던 앙드레 지드가 소련 방문 후 쓴 여행기에서 ‘치즈가 다양하지 않다’ 같은 불평을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앙드레 지드의 다른 비판에는 사회의 획일성도 있었다. 어딜 가나 비슷한 구성의 무리를 만나고, 비슷한 형식의 답변을 듣는 데 지쳤는지, 여행기의 후반에는 그런 답변들이 훈련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기도 하는데, 이런 의문은 이 책의 저자들도 가졌던 듯하다. 공장 등의 생산 기본단위에서 구성원들의 의견이 잘 반영되고 있는지, 높은 생산성에 대한 기대가 자발적인 것인지 등에 대한 의문이 반복적으로 제기되는데, 인터뷰에 참여한 소련 사람들의 대답은 언제나 비슷하게 긍정적이었던 걸로 기록된다.
  소련에서 돌아온 후, 이들은 각자의 기록과 자료들을 취합해 보고서 작성을 시작했다. 뉴스홈은 어느 정도 비판적인 의견을 표현했던 반면, 킹스베리는 매우 우호적이었다. 킹스베리는 소련식 의료제도를 미국에 도입해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고, 미국인들의 의식이 그만큼 여물었다고 생각했으므로, 보고서의 책 출판 이전부터 미국 전역을 돌며 강연에 나섰다. 마침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사회 전반에 적용될 사회보장 제도를 구체화하고 있었고, 킹스베리와의 개인적 친분이 작용했는지 사회보장 제도의 한 부분으로의 공공 의료보험 현실화 계획도 담당 위원회에서 검토되고 있었다. 킹스베리가 당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본 이유일 수도 있다. 
  출판 직전에서야 원고를 확인한 밀뱅크메모리얼기금은 소련에 우호적인 책의 어조와 여러 번 인용된 시드니 웹의 정치성을 문제 삼아 출판을 마뜩치 않아 했다. 저자들은 소련의 보건 의료 제도가 정치 체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해석했으므로, 보건 의료 제도에의 긍정적인 평가는 정치체계의 지지로 연결되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우려였다. 어느 정도 조율을 거쳐, 1934년 보고서는 마침내 출판이 되었지만, 킹스베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러시아 혁명 즈음부터 나타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Red Scare는 여전했고, ‘사회화한 의료’라는 정면 승부를 택한 킹스베리는 곧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미국 주류사회의 극심한 비판에 부딪힌다. 국가의 개입을 의료인의 자주권 박탈로 판단한 미국의사협회와 서비스의 공공화가 자본주의를 해친다고 주장하는 월가의 저항은 강력했다. 『미국의사협회지 JAMA: Journal of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에서는 책의 출판 직후 살벌한 서평을 계속 썼다. 공중 보건 관련 연구를 지원하던 밀뱅크메모리얼기금의 모기업에 대한 보이콧 운동이 일어나고, 킹스베리를 해고하라는 압력이 가해졌다. 
  이후 두 저자의 운명은 출신 국가의 공공 의료제도와 궤를 같이 한다. 영국의 의료제도가 국민건강서비스 NHS: National Health Service로 개편되면서 뉴스홈의 작업은 유효성을 인정받은 반면, 킹스베리의 운명은 그렇지 못했다. 1935년 루즈벨트 대통령은 사회보장 제도를 통과시키기 위해 공공 의료보험을 협상카드로 이용하고 폐기하였으며, 킹스베리는 14년간 일했던 밀뱅크메모리얼기금에서 해고 당했다. 이후 미국의 반공산주의는 매카시즘으로까지 이어지며 극력해졌고, 의료제도의 공공화는 어떤 식으로든 ‘사회주의자들의 의료’라는 이름으로 폄훼되며 진지하게 논의되지 못했다. 
  그런 시대였다. 1937년 소련을 방문하고 『소련의 사회화한 의료Socialized Medicine in the Soviet Union』라는 책을 낸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의사학과 학장 헨리 지거리스트 Henry Sigerist 박사는 몇 년 후 반강제적으로 미국을 떠나 고향인 스위스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의 영향으로 캐나다 서스캐처원 주에 공공의료가 도입되고, 나아가 캐나다 공공의료제도의 근간이 된 사실과 씁쓸한 대조를 이룬다. 

  책의 전반부에는 이들이 여행을 하며 보고 겪은 소련의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후반부에는 보건 의료 세부 분야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책을 옮기는 과정은, 캅카스며 크림 반도 같은 아름다운 자연과 흔히 신생 국가가 그러하듯 건강한 의욕이 충만한 사회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는 즐거운 기회였다. 종종 모스크바로 향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면 이들이 보고 겪었던 것을 지도 삼아 여행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공상하기도 했지만, 벌써 85년 전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5년 전 이들의 시도는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모든 사람들이 건강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희망했던 1978년의 알마아타 선언이 겨냥했던 2000년도 벌써 17년이나 지났지만, 모든 사람이 건강할 수 있는 사회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목표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죽지 않아도 될 병으로 죽고, 노동으로 말미암아 죽기도 하며, 감당할 수 없는 치료비에 고통받는다. 그러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제도를 고민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이들의 시도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는 우리의 몫이겠다.

 

   지은이 : 아서 뉴스홈, 존 아담스 킹스베리
   옮긴이 : 이미라, 신영전
   출판사 : 건강미디어협동조합
   반양장/ 154x225mm/ 328쪽/ 값 18,000원
   ISBN : 979-11-87387-07-7
   초판 발행일 : 2017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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