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7.11.30 목 10:55

후쿠시마의 사이토 오사무 선생은 말한다. 후쿠시마는 진행중이라고.

후쿠시마 민의련 잼버리 참가기 3 이준수 기자l승인2017.10.05l수정2017.11.11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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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의 첫 아침이 밝았다. 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피곤했음에도 이리저리 뒤척이느라 개운치 않았다. 현재 시각 아침 6시. 전날 아이스크림과 고로케로 저녁을 해결해선지 배가 몹시 고팠다.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호텔 조식 오픈 시간에 맞춰 식당에 입장했다. 일행들은 여전히 꿈나라. 뒤늦게 내려온 일행 한 명과 식사를 함께 하고 다시 객실로 올라가 짐을 꾸렸다. 오늘은 예정됐던 대로 후쿠시마로 가는 날이다.

9시 30분. 각자의 짐을 챙겨 호텔로비에서 만났다. 우리를 이끌어주실 황 선생님도 함께였다. 도쿄에서 길 잃은 아이가 엄마를 만나는 느낌. 이 얘길 입 밖으로 꺼냈다가 기간 내내 구박을 받았다.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엄마가 뭐냐고. 황 선생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곳 도쿄에 거주하시며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를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계신다. 어제도 한국에서의 일정 때문에 밤늦게 도쿄로 오신 거였다.

반가움도 잠시, 우린 택시를 타고 도쿄 중앙역으로 향했다. 일본 각지로 향하는 신칸센은 물론 도쿄를 지나는 지하철들이 다수 지나는 환승센터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역과 같은 곳인데, 개인적으로 서울역보다 더 웅장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의 행선지는 후쿠시마 현에 위치한 코오리야마 역으로, 그곳까지 신칸센으로 이동한다.

신칸센 티켓을 받아들며 가격을 확인했더니 편도 13만원 꼴. 부산까지 가는 KTX 가격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다. 1시간 30분을 타고 이동하는데 이 가격. 웬만한 서민들은 꿈도 못 꿀 가격이다. 민의련 측의 초대가 아니었으면 신칸센은 구경도 못했을 거다. KTX도 못 타본 서울 촌놈이 신칸센부터 타다니. 황송할 따름이다.

 

▲ 일본의 신칸센

황 선생님이 신칸센의 특징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신칸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수십 년 동안 무사고를 자랑하는 데다, 기술력을 해외로 수출까지 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열차의 각 량을 이어주는 접합 부분이 교차로에서 분리되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얘길 들었을 땐 실로 꽤 큰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신칸센을 타고 코오리야마로 이동하는 시간 동안, 나와 황 선생님은 무척 바빴다. 잼버리 대회 개회식 때 전할 인사말을 맞춰야했다. 내가 한국어로 말하면, 황 선생님은 일본어로 통역해주셔야 했다. 그래도 사전에 말을 맞춰봐야 제한된 시간 동안 깔끔하게 마칠 수 있기에 열심히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그러는 동안 열차는 이미 코오리야마 역에 도착했다.

코오리야마 역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여파를 반영하듯 한산했다. 단지 몇몇 젊은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들 또한 우리처럼 잼버리 참가자들 같았다. 코오리야마 역에서 메밀 소바로 점심을 해결하고, 민의련 측에서 마련해 준 단체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잼버리 대회장소는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60km 떨어진 ‘하나노유‘ 라는 고급 호텔이다. 호텔에 다다르고 버스에서 내리자 민의련 플래카드가 사방에 눈에 띄었고, 잼버리 대회를 준비한 실행위원들이 단체복을 맞춰 입고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한국에서 온 걸 알았는지, 한국어로 “안녕 하세요” 하며 반기는 사람들. 이런 환대는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다.

 

▲ 민의련 잼버리 대회가 열리는 호텔 하나노유 대강당

짐 정리를 마치고 모든 잼버리 참가자들이 호텔 대강당에 모였다. 전국 민의련 소속 의료기관마다 1~2명씩 참가해서 모두 700여명에 달했다. 강당은 발 딛을 틈 없이 가득 찼고, 민의련 관계자 분들이 차례로 연단에 올라 인사말을 했다.

내 차례가 다가왔다. 연단에 뚜벅뚜벅 걸어올라 청중들을 바라봤다. 50~100명 앞에서 얘기해 본 경험은 있지만, 700명, 그것도 모두 일본인이라니. 생애 다시는 없을 놀라운 경험에 뇌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준비한 인사말을 모두 마치자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왔고, 박수소리와 함께 연단을 내려왔다.

이제부터 강연 시간이다. 강연자는 현재 후쿠시마 의료생협 와타리병원 내과의로 근무하고 있는 사이토 오사무 선생님이다. 사이토 오사무 선생님은 후쿠시마 현립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히로시마 대학 원폭 방사능 의학 연구소에서 내과. 임상 혈액학을 연구한 경력을 갖고 있다.

▲ 후쿠시마 의료생협 내과의 사이토 오사무 선생님이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강연자는 후쿠시마의 현 상황에 대해 여러 데이터를 보여주며 차근차근 설명해나갔다. 첫 번째로 원전으로 인한 토양오염을 언급했다. “후쿠시마에서 생산되는 쌀 2000가마니 모두 전량 조사가 이뤄지고 있고, 그 결과 방사능 수치가 타 지역에서 생산된 쌀과 크게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들이 회피하고 있다” 며 말문을 열었다. 이에 따라 “점차적으로 수확량이 줄어 농사가 점점 힘들어지는 상황”이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바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음을 토로했다. “오염된 방사수가 바다로 방류되었지만 오염제거 작업을 꾸준히 한 결과 97가지 종류의 오염도를 측정해서 기준치 이하로 오염도를 낮췄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시장에서 어떻게 볼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라며 발표를 이어갔다.

강연자는 마지막으로 심리조사 결과를 보여줬다. 현 내의 가설 주택이나 피난자들 582만 가구를 조사한 결과, 동거 가족 중에 심신 불안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67.5%에 달해 우울 진단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였다. 원전 사고로 인해 지역 경제가 붕괴됨과 동시에 지역민들의 정신 건강에도 큰 피해를 줬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강당에 모인 대다수 참가자들이 모두 숙연해졌다.

1시간 30분 동안 강연을 듣고, 각자 배정된 ‘조’를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같은 조(22조)에 배정되었다. 우리 조원은 13명이었으며, 전국 각지에서 모인 탓에 서로 초면이라 어색해했다. 그런데다 한국에서 온 이방인들까지 같은 조에 편성됐으니 그들 입장에선 더 어려웠을 것이다. 민주의료기관 연합 청년 잼버리였기에 이들의 연령은 20대가 대다수였고, 직업들은 각 의료기관의 사무처, 의료기사, 간호사 등등 의료직을 총 망라했다.

우린 곧바로 조별 교류회에 들어갔다. 일본에선 토론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는데, 이번 잼버리 기간에도 한 session이 끝날 때 마다 조별로 SDG(small group discussion)를 한다. 일단 자기소개 시간. 별명을 지어주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이름의 ‘준’ 이 그들에게 불리기 쉬웠는지 ‘준상’ 으로 지어졌고, 그들도 각자 개성 넘치는 별명을 지어내 웃음을 자아냈다. 이렇게 우리 22조 13명의 잼버리 팀이 공식적으로 닻을 올렸다. 이를 기념하여 기념촬영까지 마무리.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인근에서 꽤 큰 규모의 호텔인데, 원전 사고이후 발길이 줄어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 같았다. 이곳 호텔은 구석구석 고급스런 자태와 일본특유의 분위기가 잘 조화되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내가 민의련 잼버리 대회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이곳에 올 수 있었을까 싶은 마음에 감사하기도.

 

우린 곧바로 조별 교류회에 들어갔다. 22시 부터 24시 까지 지정된 장소에서 음주를 할 수 있다. 우리가 갖고 간 간식들과 주류를 조원들에게 나눠줬다. 또한 그들에게 각인될 만한 기념품들도 갖고 가서 나눠줬다. 기념품은 주로 세월호 뱃지, 촛불 승리 뱃지, 휴대폰 액세서리 등이었는데 세월호 뱃지와 촛불 승리 뱃지가 인기를 끌었다.

 

간식과 기념품을 나눠줬는데,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아무리 출중한 능력의 통역 전문가 황 선생님이 있다 하더라도, 개개인에 붙어 일일이 통역을 해줄 수는 없는 일. 그렇지만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AI 인공지능 시대를 앞두고 우린 새로운 기술을 경험하고 있지 않나. 통역 어플을 이용해 대화를 했고, 번역 기능이 탑재된 라인 대화창을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완벽한 의사소통은 힘들었지만, 서로 의미를 전달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 조별 교류회 시간. 우리는 삿포로 맥주를 마셨다

24시가 가까워지면서, 대화의 즐거움도 잠시. 아재 특유의 체력저하가 몰려왔다. 마침 교류회를 정리하고 취침에 들어가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쏜살같이 방으로 향할 수 있었다. 다음 날로 예정된 후쿠시마 현장 답사를 위해 편안히 숙면을 해야 한다. 후쿠시마 현에서의 첫날밤은 이렇게 가고. 

이준수 기자  loverjuns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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