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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가 말하는 대리사회, 대리노동

이보라l승인2017.08.16l수정2017.09.2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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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 3명이 모였다. GP는 general practitioner의 약자로 ‘일반의’라는 뜻이다. 의사면허증은 있지만 전문의는 아닌 의사를 뜻한다. 우리나라의 병원 문화는 전문의 중심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사라면 당연히 ‘무슨 과’ 의사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무슨 과’가 없는 의사도 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반의가 된 젊은 의사 3명이 모여 [대리사회]를 읽고 의료계의 [대리 노동]을 이야기했다.

 

소개

GP1: 저는 졸업하고 작년에 모교 병원에서 인턴을 했어요. 하고 싶은 과에 지망을 했지만 떨어져서 올해 1년 쉬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2차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하지만 작년에 비해서는 몸도, 마음도 훨씬 편합니다.

GP2: 저는 올해 졸업하고 인턴을 들어갔어요. 그런데 생각한 것 이상으로 너무 근무가 힘들어서 3개월만에 그만두게 되었어요. 저는 잠이 부족하면 아무것도 못하는데요, 수면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어요. 지금은 피부 미용 전문 의원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당연히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하나하나 배워 가면서 일하고 있어요.

GP3: 저는 올해 졸업했고 과감하게 일단 올해는 쉬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너무 여유 없이 살았던 것 같아서요. 저도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턴 지원을 안 했고 인천의 한 요양병원 당직의로 취직해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기들의 인턴 생활에 대해 단톡방을 통해 실시간으로 알고 있지요.

대리 사회, 대리 노동, 대리 병원

GP2: 이번에 처음 함께 읽은 책은 [대리 사회]였어요.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 줄여서 ‘지방시’라는 책으로 유명한 김민섭씨가 대학을 나와 대리 운전을 하며 쓴 책이죠. 저도 인턴을 나오면서 그때 가졌던 생각들을 매일 일지처럼 써볼까 하다가 귀찮아서 별로 못했는데 벌써 당시의 생각이나 감정이 희미해져서 이제는 잘 기억이 안 나더라구요. 저자는 기본적으로 글솜씨가 좋은 분이긴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주체로 견디게 해 주는 수단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GP1: 저도 인턴을 하면서 정말 힘들었는데 생각해보면 저자가 있었던 대학과 마찬가지로 대학병원도 하나의 대리 사회 같아요. 모두가 행복하지 않죠. 인턴은 당연하고, 레지던트는 레지던트대로, 교수님은 교수님들대로, 간호사도 마찬가지고 모두 엄청난 노동 강도와 경쟁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아요. 환자들도 당연히 괴롭구요. 병원은 한사람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시켜요. 특히 인턴에게 도저히 한 사람이 해낼 수 없는 일을 시키는 거죠. 인턴들끼리 어떻게든 알아서 하라는 것 같은데, 엄청 외딴 곳에 있는 자기 집에 가자고 대리를 부르는 사람들과 같은 것 같아요. 밤늦은 시간에 외진 곳까지 가면 대리 기사는 어떻게 돌아가라는건지...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시키면 인턴이 어떻게 그 일을 해내라는건지...

GP2: 대학병원에서 수련받는 사람들이 자기 시간을 거의 가지지 못한다는 점은 책을 보고 생각해 보면 스스로 주체로 존재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것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러다 보면 스스로의 입장을 병원의 입장과 동일시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구요. 그리고 책에서 보면 사람들의 욕망을 얘기하고 있는데 대학병원이 학문의 장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정말 돈을 버는 목적인 병원들보다 더 많은 욕망이 돌아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 것 같아요.

GP3: 저는 요양병원에서 한달에 15일을 밤에 근무를 해요. 간호사들이 저를 당직 과장님이라고 부르는데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어요. 당직실이 따로 없어서 가정의학과 과장님 방에 있어요. 낮에는 가정의학과 과장님의 진료실이죠. 내 자리가 아닌 곳에 앉아 있는 것 같아 뭔가 불편했는데 대리 기사가 느끼는 불편함과 비슷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대리 노동의 정의에서, 말과 생각까지도 규정된다는 말이 무서웠습니다. 쉽게 말하면 눈치를 본다는건데, 제가 그동안 눈치를 보면서 상대방에게 아부했던 것은 보통 선배나 교수님 앞에서였거든요. 권력 관계잖아요. 그런데 이제 병원에서 노동을 통해서도 권력 관계가 재편될꺼라니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시키는 대리 노동

GP2: 책에서 대리기사나 환경 미화원, 밤에 도로 공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을 요정이라고 표현하잖아요. 눈에 보이지 않은 그들의 노동을 잘 비유하면서도 슬픈 단어인 것 같아요.

GP1: 병원에도 요정들이 많죠. 자기 부모를 병원에 데려다 놓고 무조건 큰 소리만 치는 보호자들이 있어요. 늙고 쇠약해져 움직이지도 못하고 정신도 왔다갔다 하는 노인 환자에겐 주치의나 인턴이 하는 일보다는 간호사나 간병인의 역할이 훨씬 중요하죠. 보호자는 낮에 잠깐 와서 보고 가면서 밤새도록 아니 하루 종일 먹이고 가래 뽑고 목욕시키고 똥오줌 치우는 간병인들의 노동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아요. 좋아지면 당연한거고 혹시 욕창이 생기거나 눈에 보이는 피부에 상처가 생기면 난리가 나죠. 간병인들도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는 요정들인 것 같아요.

GP3: 저도 대리 노동을 시킨다는 걸 느꼈던게 제 방에 청소하시는 분이 들어오실 때였던 것 같아요. 보통 아침 6시-7시경에 들어오셔서 청소해주시고 쓰레기 버려주시는데, 처음엔 기분이 미묘하더군요. 책을 읽으면서 가정의학과 과장님은 이 요정의 존재를 모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보면 저자가 손님의 태도에 따라 기분이 천차만별로 변하잖아요. 소위 요즘 말하는 '갑질 문화'가 생각났는데요. 특히 서비스업 종사자분들에게, 인격적으로 대우해드리는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저부터 말이죠.

을과 을의 전쟁

GP3: 을과 을의 전쟁 부분에선 병원 인턴과 간호사들의 전쟁이 떠올랐어요. 지금 인턴하고 있는 동기들 보니까 간호사들과 마찰이 있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내용을 보면 결국 로딩 문제인데 인력 부족이 원인이고 인력이 충원되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를 을끼리 싸우게 만들고, 을끼리의 갈등처럼 착각하게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GP1: 인턴들끼리도 갈등이 생기고 모두 힘든데도 공동의 요구를 할 수 없는 구조예요. 예를 들면 어떤 과에서 시키는 인턴 업무가 너무 과도하고 힘들어서 공식적으로 병원에 문제 제기를 했더니 그 과에서 픽스턴(다음해 레지던트가 되기로 확정된 인턴)들을 불러서 혼내고 물건을 막 부수면서 화를 냈대요. 같은 동기이자 친구가 그렇게 당하고 왔다는데, 그 친구가 우리들한테 뭐라고 하진 않았지만 결국 우리들의 요구는 흐지부지 되었어요. 을끼리 서로 입 다물게 하는 구조인 것 같아요.

GP2: 이 책을 읽고 나니 실제 현실이긴 하지만 현실의 민낯을 드러낸 영화 한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우리 사회의 어떤 핵심, 꼬이고 꼬여 뒤틀어진 핵심문제가 이 책 안에서 표현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의료계에서도 비슷한 아니 똑같은 문제들이 많이 있네요. 우리가 GP여서 더 많이 당하고 또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이런 마음, 예민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좋은 점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이런 생각과 문제 의식을 잊지 말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짝짝짝

이보라  lushbo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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