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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두 번째 방문

2016원수폭금지 세계대회 참석 후기 김미정l승인2016.08.24l수정2016.11.0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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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두 번째 방문

2016원수폭금지 세계대회 참석 후기

1.

2016년 8월 4일 히로시마행 10시 30분 비행기를 탔다. 인의협에서 히로시마의 그라운드 제로를 가겠다는 포스터를 보았고 참가신청을 했다. 히로시마에 가는 기회가 생긴다면 나의 모든 일정을 멈추고 가려고 마음 먹은 바 있는데 그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회를 날쌔게 낚아 채었다.

2. 

▲ <히로시마 원수폭금지 세계대회 참가 사전모임>

두 번째 방문할 때 준비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함께 갈 동지 구하기, 나머지는 오에 겐자부로가 쓴 <히로시마 노트> 다시 읽기였다. 인의협과 반핵의사회를 통해 함계 갈 동지가 생겼다. 최영아 선생과 김현숙선생, 이미옥 선생, 이보라 선생!!!.

7월 23일 토요일 사전모임을 하면서 각자 방문의 목적들과 준비하고 있는 것들을 공유하였다. 최영아 선생은 좀 더 진지한 여행을 원하였고, 이참에 일본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싶어 하였다. 김현숙 선생은 인의협과 민의련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을 충실히 따라가면 좋은 시간을 보낼 거라는 기대를 하였다. 이미옥 선생은 이번 기회를 통해 일본을 좀 더 깊게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보라 선생은 못나왔지만 이번 방문 전체를 책임지고 있어서 우리가 이보라 선생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히로시마 노트>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여러 사람들과 이 책을 읽게 되어 기분이 벅찼다. 60년대초 오에 겐자부로는 세 번의 히로시마 방문을 정리한 이 책을 쓰며 자신의 사상의 기틀을 잡았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인 친구들에게 이 책을 검수받아 전쟁 피해자들의 시각으로 다시 한번 쓰기도 했다고 했다. 책의 소제목에 <인간다운 위엄>에서 그는 자신이 인간적인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히로시마의 원폭증 환자들과 이들을 치료하려는 의사들은 인간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죽음을 향해’ 용감히 싸우고 있다하였다.

3.

▲ <우리학교 후원회 밤>

7월 26일 남산 문학의 집에서 열린 <우리학교 후원을 위한 후원의밤>에 참석하였다. 히로시마 여정을 짜면서 히로시마조선인고등학교에 들르려하였는데 이 학교와 연결이 되는 국내단체를 찾아보던 중 이 행사를 알게 되었다. 2007년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가 개봉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재일동포들이 다니는 조선학교가 소개되었다. 이 다큐의 ost에 실린 <하나>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그들이 태어난 때부터 “조국은 둘”이었고, 재일동포사회도 둘이 되어 싸우게 되었다. 그래도 재일동포들은 조선인은 조선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학교를 지켜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를 차별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으며 재정적 지원을 일체하고 있지 않고, 정규 고등학교 과정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일본으로 귀하하지 않고 재동동포 5세, 6세가 되어 학교를 지키는 그들에게 조국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나에게 숙제가 되었다. 10월에는 이 모음을 통해 조선학교와 교류를 한다고 하는데 시간이 날 것 같지는 않다. 아니 80년대처럼 재일동포와 교류하면 국정원에 의해 조작사건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아직도 나는 이런 공포 속에 살고 있다.

4. 

▲ <히로시마 공립병원 아오키 가츠아키 선생님의 강연 모습>

8월 4일 12시 40분 히로시마에 도착 후부터 민의련 선생님들이 준비한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민의련 소속 병원인 히로시마 공립병원에 도착하여 아오키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다. 선생의 강의를 통해 원폭증 환자 치료의 중요한 점은 원폭증 환자로 인정받기까지가 어렵다는 점, 그리고 조선인 등 외국인 등에 대해서는 치료 및 개호 등에서 차별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알기로도 원폭투하 후 1년이 지나서 일본에 주둔하던 미국 조사단은 원폭증 피해는 더 이상 없다라는 망언을 했으며 이후 수년이 지나서 나타난 백혈병 환자들에 대해서는 원폭에 의한 피해임을 인정하지 않으려했다. 80년대 말이 되서야 45년 원폭투하 후 다음날 내린 검은비에 의해 피폭된 사람들의 내부피폭에 대한 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되었으며, 일본 정부는 끊임없이 비용과 국적을 핑계로 원폭증 원호 범위를 축소하려 하고 있고, 재일조선인 피해자를 차별하였다. 히로시마 공립병원의 선생님들은 수십 년 동안 원폭증 환자들의 ‘구체적인 치료와 실질적인 이익’을 위하여 애써오셨고, 아오키 선생님의 강연 속에 녹아들었다.

5. 

▲ <피폭자분과의 대화를 마치고>

8월 5일 오후에는 민의련 병원에서 치료받고 계신 피폭자 한분 (84세)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그 분은 민의련 후지하라 선생님의 환자였는데 선생님의 부탁으로 나오신 것이었다. 먼 나라에서 온 의사들과 의대생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시기 위해 써 온 것들을 읽어주시는데 너무 감사했다. 피폭당한 그 날과 이후의 상황, 자신의 인생에 파고든 시련과 아픔 등을 담담히 읽어나가시는 모습 속에서 혹시 우리로 인해 아픔을 다시 한번 경험하시는 것이 아닌가라는 죄책감이 들었다. 마지막 말씀으로 이러한 아픔을 딛고 자신은 운좋게 살아났으며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전후 평화헌법을 지켜나가고, 후쿠시마 사고처럼 피폭에 의한 고통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핵발전소 재가동을 반대한다고 하셨다. 의대생들의 질문 중에 할머니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를 물으니 아이들을 낳았을 때라고 하셨다. <히로시마 노트>를 읽다보면 50년대 피폭자들 중에 출산을 하다가 기형아를 낳은 경우들이 알려지게 되고 이로 인한 공포들에 대단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건강한 아이를 낳으셨을 때 평범한 인생으로 돌아간 안도감이 상상이 되었다. 질문이 끝나고 할머님이 자신이 대답을 잘 했는지 모르겠다며 수줍게 웃으시는 모습 속에 담겨진 순수함이 학생들과 나를 감동시킨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만남을 갖을 수 있는 것은 민의련 병원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라는 짐작을 했다.

 

6.

우리의 히로시마 여행 중 한국의 성주에서는 사드 배치 반대를 위한 싸움이 계속 되고 있었다. 일본 반핵의사회 초청으로 한국의 밀양에서 벌어진 송전탑 설치 반대운동을 위해 진료소를 꾸렸던 노태맹 선생님이 후쿠오카에서 발표 하신게 작년이었다. 한해 만에 성주에서 근무하는 노태맹 선생님은 발행인으로 일하는 뉴스민과 함께 성주투쟁의 중심에 섰다. 과련 노선생님의 일상을 바꾸어 놓은 것은 누구 때문일까. 이런 변화는 노선생님에게만일까.

밀양 투쟁은 핵발전소와 관련이 되어 있고, 성주 투쟁은 핵무기 방어체계와 관련되어 있다. 한반도의 남동해안 지역은 갑자기 피카돈(ぴかどん)을 맞은 상황이다. 히로시마에 피카돈이 떨어졌을 때 그 정체에 대해 파악할 겨를도 없이 수십만이 죽었다. 한국전쟁에서는 핵무기 사용에 대한 거론이 나왔으며 지금도 핵무기 사용에 대한 미국의 권한과 압력은 우리에게 피카돈처럼 나타난다.

<히로시마 노트>의 에필로그에서 오에 선생은 “ 나는 오늘 히로시마를 방문하여 원폭기념제를 참석했다. 그것은 나에게 귀중한 체험이다. 이 체험의 무게는 점점 커져서 나를 한없이 지배할 것이다. ... 좀 더 일찍 히로시마를 찾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하지만 올해라도 결코 늦은 것은 아니다”라고 쓰고 있다. 히로시마에 오지 않았더라면, 히로시마에 오는 준비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성주와 밀양의 의미를 이만큼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이해한 만큼, 경험한 만큼만 움직이는 부끄러운 사람이지만 말이다.

 

7.

뉴스민 후원자가 되었고,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으로 13년간 옥고를 치루고 이번에 대법원 무죄를 선고받고 지금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일문제 연구소를 운영하고 계신 분을 만나 일본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반핵의사회에서 한국인 원폭증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현황을 살펴봐야한다. 히로시마의 경험은 생각의 증폭을 낳고 갈 길을 일러준다.

김미정  bnwhit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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