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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목숨에 ‘꾀’를 부리지 말자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정상화를 요구한다 일과건강l승인2016.06.12l수정2016.09.02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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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목숨에 ‘꾀’를 부리지 말자

- 화평법 정상화를 요구한다

글 :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

 

규제라는 게 그렇다. 기업활동을 규제하는 법률을 어떤 기업이 좋아하겠는가? 그래서 법이 제정되지 않도록 하거나 법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기업의 큰 관심사이다. 하지만 기업을 견제하기 원하는 노동자나 소비자가 있기 때문에 기업의 마음대로 법을 주무르지는 못한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국민들은 더 강력한 법률을 제정하고 싶지만 기업이 수용할 수 있는 것을 고려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서로 양보해서 규제가 탄생하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타협에 의해 규제를 만든 다음에는 필요에 따라 규제를 완화할 수도 있고, 더 강화할 수도 있다. 그것 역시 의논하고 타협할 일이다.

 

인도 보팔사고 이후, 미국에 번진 거대한 분노,

기업에게 돌아간 더 큰 규제 부메랑

기업이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질 때가 있다. 정부의 최고 책임자가 전적으로 기업 편에 있을 때이다. 1980년대 미국이 그랬다. 민주당 카터 대통령에 이어서 집권한 공화당 레이건 대통령은 규제완화와 작은 정부를 내세웠다. 기업은 카터행정부 때 만들어진 법률을 후퇴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첫번째 타깃은 노동자의 화학물질 알권리법이었다. 카터 대통령이 임기 말에 입법안을 제출하였는데, 레이건 대통령은 집권 30일도 지나지 않아 노동부 장관 도노번을 통해 카터 입법안을 폐기한다. 기업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노동자와 시민들은 분노했다. 제품에 어떤 화학물질이 들어있고 독성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1년에 십 만명이 직업성 질환에 걸리는 것으로 추정되던 상황이었다.

노동자와 시민들은 연방법을 포기하고 주법에 도전했다. 뉴저지, 메사추세츠, 메인 같은 주에서 노동자와 주민을 위한 알권리법이 제정되기 시작했다. 카터 행정부에서 입법예고했던 내용보다 더 강력한 것이 등장하기도 했다. 기업들은 전략을 바꿔야했다. 미국의 기업들은 레이건에게 연방법을 제정하자고 제안했다. 기업의 책임이 아주 약한 연방 알권리법을 제정해 놓으면, 주법보다 연방법이 우선하는 원칙을 이용하여 각 주별로 제정된 강력한 알권리법들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3년 레이건 대통령은 ‘유해물질정보제공기준’을 제정했다. 그리고 각 주의 알권리법보다 연방법이 우선한다고 선언하였다. 기업은 다시 환호하였고, 노동자와 시민들은 깊은 절망에 빠져들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노력을 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연방법 선점을 무력화하기 위한 소송을 걸었지만, 뒤집을 수 없었다.

▲ 1984년 인도 보팔 가스폭발 사고현장 출처: 전국교육신문

그런데 이 때, 인도에서 보팔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이후 몇 시간만에 4천명이 사망했고,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람들은 1만 5천명에 달한다. 보팔사고를 일으킨 유니온 카바이드는 미국 기업이었다. 1985년 유니온 카바이드는 미국 공장에서 보팔사고와 똑같은 물질이 누출되는 사고를 일으켜 주민들이 대피하기에 이른다. 거대한 분노가 미국사회에 번져나갔다. 그리고 단일한 요구로 이어졌다. 화학사고에 대한 대응은 제대로 된 알권리법 제정이라는 목소리가 모아졌다. 결국 1986년 비상대응계획 수립과 지역사회 알권리법이 제정되었다.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알권리법이 가장 보수적이고 기업친화적인 레이건 행정부 시절에 만들어지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1981년 카터의 알권리법을 폐기처분하고, 1983년 주별 알권리법을 무력화하면서 기업은 국민의 안전과 건강은 고려하지 않는 파렴치한 존재로 여겨지더라도 상관하지 않고 힘으로 규제를 봉쇄해버렸다. 그리고 보팔사고로 폭발한 분노는 이전의 어떤 법률보다도 더 강력한 법률로 기업을 규제하게 되었다. 피한 줄 알았던 규제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것이고,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된 것이다.

 

악마의 법률이된 화평법,

거대한 위험으로부터 국민들을 지킬 수 없어

2013년 우리나라에서 화학물질의 독성과 용도만큼은 등록하고 사용하자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제정되었다. 2011년 알려진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한다는 취지도 있었다. 하지만, 말만 그랬다. 기업들은 기업프렌들리한 박근혜 대통령과 긴밀하게 호흡하면서 환경부를 압박하였다. 모든 화학물질의 독성과 용도를 등록해야 한다던 환경부의 의지가 꺾였다.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만들 때는 기업이 더 노골적으로 압력을 행사하였다.

필자는 당시 화평법 하위법령 협의체 위원으로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만드는데 참여하였다. 2013년 9월 3일 첫 번째 회의가 열렸는데, 9월 25일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며 화평법을 기업을 죽이는 악마의 법률로 만들어버렸다. 회의가 비공개로 열렸기 때문에 기업들은 거리낌 없이 말했다. “지금까지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었는데, 갑자기 법을 지키라 그러는 게 말이 됩니까?” 입이 딱 벌어졌고 한 동안 다물 수 없었다. “화학물질 독성정보를 다 파악하다가는 기업 경영을 못합니다. 독성을 모르더라도 일단 쓸 수 있는 건 써야 합니다.” 그 때 생각했다. 이들에게 분명 더 큰 규제가 돌아가게 되리라. 이들은 국민을 거대한 위험에 빠뜨릴 것이며, 더 이상 당신들의 말을 국민들이 믿지 않을 날이 오리라.

그 날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2016년 오늘의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를 보자. 국민들 중 누가 옥시를 제대로 된 기업이라 여기겠는가? 옥시를 통해 기업의 민낯을 보게 된 국민들은 이제 어떤 기업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설마 우리가 국민을 위태롭게 만들 줄 알면서도 관리를 안하겠습니까? 기업을 믿어주세요. 규제로 기업을 망하게 하지 마세요.”라고 점잖게 기업이 말한들, 누가 그 말을 믿어줄까? 경총과 전경련과 상공회의소, 그리고 신문마다 화평법으로 기업을 죽이는 환경부를 비난하던 사설을 쓴 언론들은 지금 너무도 조용하다. 그들은 옥시의 불똥이 화평법으로 또 다른 규제로 이어지지 않기만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업이 자초한 일이다. 국민의 목숨이 걸린 일에 꾀를 부린 탓에 화를 입게 된 것이다.

 

화평법 정상화로 안전을 도모하고,

기업과 정부, 국민의 관계도 회복될 수 있어

이제 화학물질 규제의 기본 중의 기본인 화평법을 정상화하자. 모든 화학물질의 독성과 용도가 정부에 등록되도록 하여, 안전이 검증된 용도로만 화학물질이 사용되게 하자. 발암물질이나 생식독성물질 같은 고독성물질은 허가와 제한이라는 화평법 장치를 사용하여, 최대한 안전한 화학물질을 사용하도록 이끌어 내자.

물론, 국민들은 타협할 수 있다. 한꺼번에 모든 화학물질을 등록하는 일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이제부터 십년간의 계획을 수립하여 점차적으로 등록을 확대하는 로드맵을 수립하자고 한다면 그것을 싫다고 말할 국민들이 있겠는가? 기업과 정부와 국민의 관계가 일그러져 있다가 정상화될 기회를 맞이하였다. 화평법 정상화는 그 출발이 되어야 한다. 

 

[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위한 국민선언 서명하기]  http://safedu.org/sign_tox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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