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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경치가 정말 좋지요?"

기아차 고공농성장 방문기 건강미디어l승인2015.08.06l수정2015.09.20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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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경치가 정말 좋지요?"

감대희 (인의협 사무국장)

여느 때와 같이 야간 근무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려고 하는데, 전화기에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 통화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른 아침에 누구인가 싶어서 전화를 걸어보니, 그 날 퇴근 후 방문하기로 했던 고공농성장에서 농성 중인 한규협 동지라고 자신을 밝혔다. 그는 자신이 발가락이 조금 다쳤으니 방문 때 간단한 소독 기구를 가져다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냥 간단히 드레싱 세트를 챙겨갈까 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처 부위를 찍어서 전화기로 보내달라고 하였다. 5분 정도 뒤에 사진이 도착하였는데, 좌측 5번째 발가락의 중족지절 관절 부위가 심하게 찢어진 상태였다. 갑작스레 급한 마음이 들면서 봉합을 할 수 있는 기구들을 챙겨서 병원을 나섰다.

한 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한 시청 광장에서 바라본, 국가인권위 옥상의 옥외 광고판은 의외로 생소하였다. 국가인권위에서 작은 일을 맡고 있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들리는데도 한 번도 눈여겨 본 적이 없었다. 너무도 높아서 광장에서는 시선도 잘 닿지 않는 그런 곳에서 누군가는 외롭게 싸우고 있었다.

국가인권위 앞에서 일행을 만난 뒤 국가인권위 옥상에 오르자, 많은 경찰들이 안내를 자청하면서 일행을 둘러쌌다. 일단은 광고판 위의 상황이 급하였기에, 고분고분한 태도로 경찰들의 안내 지시에 따르면서 광고판 아래 문까지 오르는 사다리에 올라섰다. 잠시 후 잠긴 문이 열렸고, 또 다른 고공농성자인 최정명 동지가 웃는 얼굴로 일행을 맞이하여 주셨다.

최정명 동지를 따라서 올라간 옥외 광고판 꼭대기는 상상 이상으로 환경이 열악하였다. 70m 정도의 높이만으로도 무서운데, 상판의 폭이 1.7m에 불과하였고, 난관마저 없어서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의 폭은 상판 가운데 부분의 1m 정도가 전부였다. 두 분은 그런 공간에서 직사광선을 가릴 수 있는 차양 하나만을 의지하며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계셨다.

이런저런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한규협 동지의 상처 부위를 살펴보았다. 사진에서 본 것보다도 좋지 않았다. 상처의 깊이가 예상 외로 깊어서 근육층은 물론이고, 골막까지 드러나 있었다. 게다가 수상 후 며칠이 지나서 이미 상피화가 진행 중이었고, 주변 조직으로는 염증 소견도 보였다. 광범위한 변연부 절제 및 봉합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을 한규협 동지에게 설명 후 파상풍 예방 주사와 항생제 주사를 놓았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던 최정명 동지가 너무 위험해 보인다면서, 봉합은 광고판 내부에 들어가서 하는 것이 어떠한지 나의 의견을 물었다. 깊게 생각할 여유도 없이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하였다. 지금 다시 생각하면, 고공농성장이 처음도 아니라면서 여유로운 척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많이 무서웠던 것 같다.

아무튼 최정명 동지의 배려 덕분에 한규협 동지와 함께 안전한 광고판 내부로 내려와서 봉합을 시작하였다. 제대로 된 빛도 없고, 맨 바닥에 앉아서 봉합을 하려니 이만저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더욱이 평소와 다르게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 봉합을 하려니 시간도 몇 배나 오래 걸렸다. 봉합을 마쳤을 때는 어느새 한 시간이나 흘러가 있었다.

한규협 동지에게 봉합 부위 드레싱 요령을 설명한 뒤, 함께 광고판 상판에 다시 올라갔다. 두 분께 고공농성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기립성 저혈압, 탈수증 등 건강상의 문제들과 그에 따른 주의사항과 대처 방안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드렸다. 그리고 이런저런 덕담 섞인 대화들을 나누고 있는데, 최정명 동지가 갑자기 내게 물었다.

"여기, 경치가 정말 좋지요?"

그 곳의 환경이 그토록 열악한데, 하루하루가 힘겨운 것을 알고 있는데, 갑자기 그런 질문을 받으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순간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나까지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경치가 좋다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어서 조만간에 상처 보러 다시 오겠다는 마지막 인사말을 하고 사다리를 내려오는데, 최정명 동지가 환하게 웃으면서 다시 내게 말했다.

"조심해서 내려가세요. 그런데 여기, 밤에 별까지 뜨면 더욱 좋습니다."

 

이 글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뉴스레터에 실린 글로 글쓴이의 동의를 얻어 여기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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