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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아픔을 고뇌하시던 의사선생님

고 배기영 선생님을 기리며 엄주현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사무처장l승인2015.07.27l수정2015.09.2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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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4일 밤 배기영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이하 지원본부) 전 이사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향년 63세.

배기영 선생님은 2012년 신장암 발병으로 수술과 항암치료 등 투병생활을 했습니다. 
2013년 2월 14일 배기영 선생님께 지원본부 감사패를 전달하기 위해 직접 뵈었을 때, 예전의 건장한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모습에 걱정을 했으나 선생님은 ‘수술도 잘 됐고, 항암치료도 성공적이라 잠깐씩이나마 병원에 나와 환자도 보고 있다’며 오히려 걱정을 덜어주셨습니다. 2014년, 2015년을 보내며 예전처럼 많은 활동을 하지는 못하지만 지원본부 곁에 오래 함께 계실 줄 알았습니다.

선생님은 그 연배에 비해 키도 컸고 건장하셨습니다. 그래서 단체사진을 찍을 때 선생님 자리는 항상 뒤쪽 또는 가장자리였습니다. 그렇게 건강하셨던 분이 2012년 너무나 마른 모습으로 회의에 오셨을 때 깜짝 놀라 ‘선생님 살이 너무 빠지신 거 같아요’라고 하니, ‘일부러 살을 빼는 겁니다’라고 농담처럼 답을 하셨습니다. 걱정을 하면서도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실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운동으로 살을 뺐다고 하기엔 뭔가 미심쩍었던 기억이 납니다.

배기영 선생님은 지원본부가 1997년 [북한어린이살리기의약품지원본부]라는 임의단체를 설립했을 때부터 함께 했습니다. 특히 1998년에는 북녘 어린이들을 직접 진료하고자 방북진료단 추진위원회를 결성했을 때 ‘큰 고통을 겪고 있는 북녘 어린이들에게 정신과 의사도 필요할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셨습니다.

아래줄 맨 오른쪽.

물론 당시 방북진료단은 북녘에 갈 수 없었지만 그 소원은 2007년 철도성병원 의료장비 기증식을 위한 대규모 방북 때 성사되었습니다. 2007년 대규모 방북 당시 배기영 선생님은 사모님과 두 따님을 모두 데리고 온 가족이 함께 가셨습니다.
1997년부터의 북녘 어린이 사랑이 10년 만에 북녘 땅을 밟으며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2007년 11월 대규모 방북 당시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부지 방문.

2007년 11월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부지를 본 뒤 사업과 관련해 북측과 협의하는 모습.

 

2007년 11월 철도성병원 의료장비 기증식 모습.

 

2007년 11월 대규모 평양 방문 만경대 생가 앞에서 / 고려항공 내에서 가족과 함께.

지원본부는 2007년 11월 8일부터 11일까지 3박4일 동안 평양 철도성병원 의료장비 기증식을 위한 대규모 방북을 추진했을 때 92명이 고려항공으로 김포와 평양 서해직항을 이용해 방문했습니다.
배기영 선생님은 가장 사랑한다는 세 사람의 여성분들과 함께 가셨습니다.
선생님은 당시 지원본부 이사를 맡고 계셨기 때문에 임원으로서 기증식 연단에 북측 민화협 부회장과 함께 서셨고, 2008년 북측이 지원본부에 새롭게 사업을 요청했던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부지를 방문해 북측 민화협 담당 참사들과 협의도 했습니다.
또한 평양 방문 기간 내내 가족 하나하나를 챙기는 모습에서 요란하진 않지만 그 사랑이 베어나 보였고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배기영 선생님은 북녘 어린이와 가족, 어려운 이웃에 대한 사랑이 많으셨습니다.


배기영 선생님이 지원본부 이사를 맡으신 것은 지원본부가 2001년 [북한어린이살리기의약품지원본부]라는 임의단체에서 사단법인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로 전환한 이후인 2004년부터입니다. 암투병을 하시면서 보다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분이 이사를 맡아야 한다며 이사직을 고사하셨던 것이 2014년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사로 10년 간 활동하셨습니다. 이사로 활동하시며 선생님께서는 지원본부의 각종 회의, 행사, 모임 등에 참여해 지원본부의 큰 버팀목이 되어 주셨습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인도적 대북사업과 관련해 차츰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부터 시작한 평양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건립사업은 건물완공 뒤 북측의 핵실험이 빌미가 되어 2009년부터 의료장비와 의약품 등 물자반출이 가다서다를 반복했고, 급기야 2010년 3월 천안함 사태로 인해 남측 정부의 5.24 조치로 평양으로 물자도 사람도 보낼 수도 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은 평양 대동강구역병원의 의료장비 기증, 철도성병원의 의료장비 및 건물 리모델링에 이어 지원본부가 처음으로 병원 건물을 새롭게 건축하는 사업으로 남과 북 보건의료인들이 함께 운영하면서 북녘 어린이들의 건강을 책임지고자 꿈을 키웠던 병원이었습니다.
2009년 4월 병원 건물 완공 이후 지원본부는 병원에 어떤 물자가 들어가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고, 수 백 가지의 장비와 기구, 의약품 등의 목록을 완성해 북측 보건의료인들과 협의해 결정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당국 간의 경색으로 결실을 맺기 어려웠고, 2011년 6월 14일 ‘북녘 보건의료지원 정상화를 촉구하는 보건의료인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총 534명의 보건의료인들이 선언에 동참했고 지원본부 선생들은 거리에 나가 인도적 지원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현실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이 보건의료인 선언에도 배기영 선생님은 당연히 참여해 주셨습니다.
2009년, 2010년, 2011년 내내 북녘 어린이들을 치료할 수 있기 위한 고민의 자리에 선생님은 항상 함께 계셨고, 걱정을 하는 지원본부 사람들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전문가로 얘기하는데 걱정해야 정신 건강만 나빠진다. 우리가 건강해서 오래 살아야 북녘 어린이들도 좋아할 것’이라며 심각한 회의 자리를 가볍게 해주시곤 했습니다.

2012년 신장암 진단을 받으셨지만 지원본부에 알리지 않으셨고 다만 회의 및 행사 참석이 뜸하시면서 마지막 회의 때 살이 너무 빠진 모습의 걱정이 현실화 되었습니다.
그동안 지원본부에 힘이 되셨던 배기영 선생님께 힘이 되어드릴 방법이 별로 없었고 2013년 1월 총회를 통해 그동안의 활동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감사패를 전해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총회 참석이 어려워 2013년 2월 14일 병원에 직접 찾아가 감사패를 전달하면서 본 선생님의 모습에서 암투병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2013년, 2014년을 거치면서 환자 진료도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고 곧 찾아뵈리라 생각만 하면서도 오래 함께 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2015년 6월 5일 오전, 동교정신과의원에서 배기영 선생님께서 6월 4일 밤 폐렴이 악화되어 합병증으로 돌아가셨고 발인이 6월 6일이라고 전해왔을 때, ‘찾아뵐 걸, 찾아뵐 걸, 웃는 모습을 더 뵈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으며 많이 후회했습니다.

향년 63세. 너무 빨리 가셨습니다. 지원본부 선생들도 선생님의 따뜻함과 든든함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거라 합니다.
대북지원을 위해 항상 돈 걱정을 할 때 ‘정신과는 볼펜과 종이 만 있으면 된다’며 북녘 사람들에게 볼펜과 종이를 챙겨 항상 달려가고 싶으셨던 배기영 선생님.
선생님 바람대로 이명박 정부는 끝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으나 인도적 대북지원 사업의 현실은 더욱 암담해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말씀대로 마음 편히 하지만 북녘의 아픔을 계속 기억하며 잘 견디도록 하겠습니다.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서로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 날이 올 때까지 하늘나라에서도 지원본부와 함께 해 주세요.
선생님 18년 동안 지원본부를 지켜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배기영 전 이사님 약력

1997년 [북한어린이살리기의약품지원본부] 후원회원으로 활동.
1998년 11월 남북어린이사랑 방북진료단 추진위원회 결성식 참여.
2003년 12월 4차 정기 총회를 통해 이사로 선임.
2007년 11월 평양 대규모 방북 가족 모두 방문.
2011년 6월 북녘 보건의료지원 정상화를 촉구하는 보건의료인 선언 참여.
2014년 2월까지 이사 역임.
2013년 2월 14일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감사패 수여.
2015년 6월 4일 향년 63세로 타개.

엄주현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사무처장  nkchild@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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