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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타오 클리닉과 신시아 마웅 원장

백재중l승인2015.05.25l수정2018.09.20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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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타오 클리닉과 신시아 마웅 원장

백재중

태국의 방콕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7-8시간 밤새 달리면 버마(미얀마)*와 국경을 접한 국경 도시 매솟에 도착한다. 다리 하나를 건너면 버마로 갈 수 있는 이 도시의 한편에 매타오클리닉이 있다. 이 클리닉은 버마 난민들을 위한 무료 진료소로 태국 정부 입장에서 보면 불법 진료소이지만 묵인하고 있는 곳이다. 

이 진료소는 버마 출신의 난민이며 의사인 신시아 마웅 박사에 의해 설립되고 운영되고 있다. 난민, 이주 노동자들 그리고 버마에서 태국으로 국경을 넘어 온 많은 사람들을 위해 무상으로 의료 보건 서비스를 제공해 주고 있는데 인종과 종교 모두 상관없이 누구든지 클리닉에서 환영받는다. 그러나 주로 버마 난민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이 병원은 1988년에 버마에서 있었던 학생 민주화 운동과 이를 억압하기 위한 버마 정부의 잔혹한 탄압 과정에서 탄생하게 된다. 쫓겨 도망 다니던 학생들은 매솟에 있는 작은 집에 모이게 되었고 여기서 클리닉이 시작되었다.

1989년 이래로 매타오 클리닉은 이 작은 집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매타오 클리닉 태국과 버마 국경의 약 150,000명의 타겟 인구에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인구의 유동성 때문에 정확한 수치를 계산하기는 어렵다. 

매타오 클리닉의 역사는 원장인 신시아 마웅 박사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녀는 버마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Moulmein General hospital에서 1년 간의 인턴쉽을 하는데 이 기간 동안에 신시아 마웅은 사람들이 얼마나 가난한지 알았고 그 이유로 그들이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선 스스로 얼마나 희생을 하는 지에 관한 문제를 깨닫게 되었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가족 중 누군가를 치료받게 하기 위하여 집, 재산 그리고 땅이나 동물들을 팔아야 했다. 하지만 만약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비누, 수술칼, 수술복에 대한 값도 따로 지불해야 했다. 장비들은 낡았고 고장이 빈번했으며 주사기와 같은 의료기구들은 일회용이 아니고 반복 사용되었다.

▲ 신시아 마웅 원장@매타오 클리닉 홈페이지

이후 그녀는 버마 삼각주 지역의 Bassein 이라는 곳에 있는 개인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때 버마 정부는 화폐개혁을 한다. 어떤 화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일생동안 저축해온 돈을 잃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고 특히 학생과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더욱 심했다. 몇몇 학교는 아예 문을 닫았고 이에따라 학생운동은 점점 거대해지고 있었다. 이때 그녀의 어머니가 아파서 어머니를 돌보고 가족들 가까이 있기 위해 Moulmein 으로 되돌아갔다.

1987년에 그녀는 카렌주의 Eain Du Village 의 한 병원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Pa An 과 Myawaddy 의 교통로 있는 이 마을은 3개의 주요 인종으로 구성되었다. 직물을 짜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파오 족, 작은 가계나 사업체를 운영하는 몬 족, 작은 농장경영과 농업을 하는 카렌족이 있다. 이 모든 사람들의 생계는 어려웠고 그들은 하루하루 생존하기위해 분투를 했다. 신시아 마웅은 그들이 얼마나 가난에 시달리는지 깨달았고 적은양의 월급을 받기위해 군인이나 잡역부로 군에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였다. 세금은 높았고 결핵과 같은 질병이 만연해 있었다. 그 마을에는 작은 병원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가 머무르는 동안에는 2-3개월 정도 근무하는 의사가 있었을 뿐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약이나 의료기구들은 없었다.

1988년 민주화운동과 시위가 커져갔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과 그리고 마을로 돌아온 고등학교, 대학생들과 힘을 모았다. 그들은 다른 지역의 민주화운동 그룹과 연대하여 버마를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였다. 갈등과 싸움이 빈번했고 부모들은 그들의 자식이 위험에 처할까 걱정했다. 통신수단과 운송로가 차단되었고 쌀과 생필품의 가격은 끝없이 올랐다. 사람들 사이에서 혼돈과 두려움이 생겨났다.

1988년 9월 19일 군부가 정권을 잡았고 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은 나라를 떠나거나 은신하게 된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태국과 버마의 국경쪽으로 몰려들었다. 9월21일 신시아 마웅과 14명의 동료들은 약간의 식량과 개인 소지품을 챙겨 7일 동안 정글 속으로 도망쳤다. 그들은 주로 밤에 이동했는데 의료진이나 병원등의 의료서비스를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마을에서 병을 앓고 있거나 부상당한 사람들을 그들이 가진 한정된 약으로 치료해 주었다.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와 동료들은 Mae La opposite Tha Song Yars district 의 Be Claw refugee camp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그는 전쟁을 피하여 도망쳐온 사람들을 치료하며 한 작은 병원에서 일했다. 이곳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가족과 친지를 찾으려고 해서 엄청난 혼란 상태였다.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이 만연해 있었다. 그후 신시아 마웅은 Hway Ka Loke refugee camp 로 갔는데 그곳에서 학생 운동 관련 일을 담당하고 있는 카렌 지도자와 이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는 태국 지방당국과 교회 단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후 그녀는 이들과 함께 혼란을 줄이고 지역의 상황에 어떤 질서를 세우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1988년 11월 신시아 마웅은 매솟으로 향했다. 그녀는 머물 공간이 필요하거나 차후의 의료 서비스를 받기위해 이송 되어야하는 학생군을 위한 센터를 세우고자 했다. 1989년 12월 매솟 외곽에 흙바닥으로 된 낡은 건물을 얻었다. 그녀의 임시 진료소는 필요한 비품이 거의 없었고 자금도 부족했다. 밥솥으로 기구를 소독하였으며 그 지역에서 일하는 카톨릭 구호기관으로부터 식량과 약을 구했다. 그녀와 동료들은 검소한 생활을 하며 진료소를 찾아오는 환자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주로 말라리아, 호흡기병, 설사 병을 앓거나 총상과 지뢰로 인해 부상을 당해 진료소를 찾았다. 이중 말라리아는 메타오클리닉에서 여전히 많이 치료하는 질병의 하나이다.

몇해가 지나감에 따라 진료소를 찾는 환자 또한 바뀌었다. 처음 이곳을 찾는 이들은 주로 전쟁을 피해 도망쳐온 학생들이나 젊은 사람들이었다. 그후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는 이주노동자들이 매솟지역으로 들어와 점점 늘어났다. 시간이 지나자 그들의 부인과 가족들이 와 함께 살았다. 오늘날 우리는 학교를 자퇴하고 안전하게 지낼만한 곳이 필요한 많은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본다. 인구구성이 변함에 따라 그들을 위한 의료서비스 또한 변해갔다. 요즘 비중이 가장 큰 분야는 산부인과와 모자보건과 관련한 분야이다. 수천 명의  신생아가 여기서 태어나기도 하였다. 

신시아 미웅 원장은 막사이사이 상을 비롯한 많은 인권상을 수상하였고 노벨평화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  공식적인 국가 명칭은 버마에서 미얀마로 변경되었으나 민주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버마라고 부르고 있어 이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이 글에서도 버마라고 부른다.

참고 : 매타오 클리닉 홈페이지 

백재중  jjbaik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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