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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침몰하지 않기 위한 대가

46일간 단식한 유민아빠 김영오씨의 진료 후기 이보라l승인2014.12.18l수정2015.04.2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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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은폐되거나 수십년 후에야 밝혀질 수 있습니다. 각종 조작 간첩단 사건들과 광주민주화항쟁만 봐도 수십년이 지나 진상이 규명되고 보상이 이루어져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이미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신이 피폐해져 버렸고, 가해자들은 승승장구하여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수준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304명의 소중한 생명이 국가가 구조하지 못하여 희생된 사건입니다. 게다가 한 학교 한 학년 학생들이 몰살되다시피 한 정말 끔찍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래서 더 외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월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가끔 만납니다. 사실 저도 그랬습니다. 사고 후 동네를 지나가는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니 괜시리 눈물이 나고, 설거지할 때 그릇이 물에 가라앉은 것만 봐도 세월호 생각이 나서 저도 한동안 뉴스를 멀리 했었습니다. 하지만 인의협 회원이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도망만 다닐 수 없죠. 7월 14일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농성을 시작하였고 인의협으로 진료요청이 왔습니다. 그리고 저도 7월 19일 처음 진료를 가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단원고 학생들의 아버지들은 밝고 굳건해 보였습니다. 처음엔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가 단식을 하며 요구하는데 설마 들어 주겠지 하며 3일만 버텨보자 라는 마음으로 시작하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지지부진해지며 단식은 기약 없이 길어졌고 굳건했던 아버지들도 하나 둘 단식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단식 25일째인 8월 7일 의사출신인 새누리당 안홍준 의원이 ‘단식을 제대로 했으면 벌써 실려 갔어야 했다’라고 말한 것이 보도되었습니다. 현장과 동떨어지고 약자의 입장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새누리당과 보수층의 마음이 솔직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당시 유일하게 혼자 남아 단식을 하던 유민아빠 김영오씨는 앞으로 모든 진료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정말 죽기를 각오하고 단식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하셨죠. 안홍준 의원의 말을 처음 보도한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고 저 역시 너무 화가 나서 반박하는 편지를 써서 제 페이스북과 안홍준 의원의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이후 여러 언론에서 안의원의 발언과 저의 반박을 인용하는 기사가 나왔고 며칠 후 안의원이 공식사과를 한 후에야 김영오씨는 우리 의료진의 진료를 다시 받겠다고 하였습니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기약할 수 없는 상태에서 김영오씨는 단식을 이어가고 있었고 저와 최규진 선생님, 청한 김이종 선생님이 진료를 지속하고 있었는데 8월 21일 국정원 직원이 저희 병원 김경일 원장님을 찾아와서 저에 대해 물어보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왜 나를 찾아왔을까? 생각해보니 8월 18일 기자회견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8월 16일 교황까지 유민아빠를 찾아와 위로를 하는 모습이 전세계에 보도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단식 36일째에 ‘교황이한에 즈음한 유민아빠 입장표명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그 때 제가 기자들 앞에서 김영오씨는 장기간 단식으로 근육까지 소모되고 있으며 앞으로 단식을 중단하더라도 복식증후군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발언을 했었습니다. 그 이후 동대문구 지역 담당 국정원 직원이 원장님을 찾아와 저에 대해 물어보고 간 것은 당연히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었겠죠. 하지만 이상하게 저는 놀라거나 두려운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국정원이 나를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실질적인 압박은 전혀 다른 곳에서 들어왔습니다. 아니 크게 보면 한통속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바로 조선일보와 TV조선, 채널A 같은 일부언론과 블로거들의 신상털기, 그리고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국회의원의 공문 한 장이었습니다.

 

8월 22일 아침 단식 40일째 아침 김영오씨가 제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이송되어 입원하셨습니다. 그날 아침 김영오씨가 많이 힘들어하니까 빨리 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광화문에 가서 김영오씨와 같이 앰뷸런스를 타고 제가 근무하는 동부병원에 와서 제 환자로 입원시켰습니다. 그리고 김영오씨 병실에서 처음 나오는데 카메라를 들고 수십명의 기자들이 병실 앞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황급히 계단 쪽으로 걸어가는데 전날 밤에 JTBC 9시 뉴스 인터뷰 때문에 만났던 안면이 있는 기자가 간단히 상태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하여 어쩔 수 없이 수십대의 카메라 앞에 서서 여러 방송사 기자들이 하는 질문들에 대답해야 하는 취재를 당하였습니다. 이 때 한 기자가 단식을 중단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아마도 그럴 것이다, 병원에서는 식사가 제공될 것 이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 보도가 나가자 김영오씨와 유가족 상황실장이 펄쩍 뛰며 아니라고 단식을 지속할 것이라고 하여 제가 좀 난감해지기도 했습니다. 이 날 문재인 의원, 박원순 시장 등 정치인들이 병문안을 왔고 김경일 원장님과 함께 이 분들의 방문에 간단히 인사를 해야 했습니다. 이후 며칠간 기자들이 김영오씨 병실 앞에 상주하며 병실을 오갈 때마다 붙잡혀 김영오씨의 상태를 물어보는 기자들에게 시달렸지만 조중동을 제외한 언론사 기자들의 질문에는 되도록 친절하게 대답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유가족대책위에서 매일 김영오씨의 상태에 대한 간단한 보고를 요구하여 정말로 간단히 문자로 상태를 알려드렸습니다.

 

김영오씨는 입원 후 수액치료를 받고 조용한 병실에서 휴식을 취하자 광화문에 있을 때보다는 상태가 나아졌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8월 28일, 단식 46일만에 단식 중단 기자회견 후 식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기자회견은 김영오씨의 병실 앞, 늘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던 장소에서 진행되었는데 그 날 마침 아침날씨가 쌀쌀해서 제가 보라색 긴팔 면티를 입고 출근을 했고 그 위에 가운을 입은 상태로 기자회견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장기간의 단식도 위험했지만 복식과정에서 합병증이 더 잘 생긴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주의 깊게 식이를 진행할 것이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아마 이 기자회견이 주요언론에 속보로 보도가 되었나 봅니다. 그리고 다음날 ‘보라색 상의에 흰 가운을 걸친’ 제가 통합진보당 전 대의원이었다는 것이 조선일보에 보도되었고 이후 한동안 TV조선, 채널A, MBN 등 종합편성채널에서 소위 정치평론가라는 사람들이 나와 이것을 문제 삼으며 ‘의사면 환자 치료나 할 것이지…’ 라며 평론을 했다고 합니다. (이 조선일보 기사는 9월 24일 한국신문윤리위원회로부터 신문윤리실천요강 제12조「사생활 보호」④공인의 사생활 보도 위반으로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3일 뒤인 9월 1일에 새누리당 이노근의원이 서울시로 공문을 보내 이보라 과장의 노조경력, 당적 등 이력과 동부병원에서 언제부터 무슨 직함을 가지고 있는지, 계약직이지만 공무원법 위반은 아닌지에 대한 검토 의견을 보내라는 자료를 요구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는 유가족대책위에서 ‘김영오씨 주치의 국정원 사찰’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여 언론에 오르내린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이 사건 때문에 또 한번 뉴스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는 저도 많은 피로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국정원이 찾아왔다고 했을 때는 ‘그럼 나도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 가서 죽을 수도 있겠네.’ 하는 비아냥 섞인 저항감이 컸다면 국회의원의 공문요청은 ‘내년에 재계약 안되는 것 아니야?’ 하는 보다 구체적인 압박이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 병원에서 잘려도 일할 곳은 많겠지만 국회의원과 서울시, 그리고 법규정을 들이대며 휘두르는 권력과 맞닥뜨렸다고 생각하니 한 개인으로서 심한 무력감에 느껴졌습니다.

 

당시 김영오씨 말고도 흉관삽입 후에도 기흉이 펴지지 않는데 상급병원으로 전원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할아버지와 요양병원에서 열이 나서 전원된 와상환자, 대장암 말기 환자 등 약 15~20명의 입원환자가 있었는데, 김영오씨 때문에 자신을 잘 봐주지 않았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유난히 회진을 더 열심히 돌았었습니다. 그런데 회진을 가면 병실 텔레비전에 제가 나오고 있고 외래환자들도 텔레비전에서 봤다는 인사를 할 때는 현기증이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조선일보 보도 후 병원으로 몇 통의 항의전화가 왔었는데 그 이후에는 환자들이 건내는 요즘 유명하시다는 인사가 호의적인 느낌이 아니라 왠지 비난 혹은 비웃음을 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아무튼 파도에 휩쓸리는 것 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너무나 큰 파도여서 도저히 제 힘과 의지로는 통제할 수 없이 여기 쿵, 저기 쿵 부딪히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제껏 여러 명의 단식 투쟁하는 분들을 진료해 봤지만 이렇게 이슈가 된 적은 없었습니다. 세월호 사건, 그리고 유가족 단식자 김영오씨가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까지 이렇게 관심을 받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김영오씨의 주치의를 자처 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일베들이 퍼나르는 예전 당활동 사진은 진작 지워버릴 걸 하는 후회가 조금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제가 진보정당 활동을 했던 것은 하나도 숨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는 사실이고 저의 신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파도였기에 휩쓸리듯 그렇게 기자회견에 나가고 수십대의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언론사들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손석희, 김현정, 정관용, 강지원 등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지요.

 

김영오씨는 2주간 입원 후 안산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가끔 연락을 하거나 광화문에서 만나보면 건강을 조금씩 회복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유가족들의 제안은 거의 반영되지 않고 통과된 세월호 특별법은 아직도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화문 농성장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미흡한 특별법이지만 시행령, 시행규칙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이 엄동설한에도 광장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문장을 현실화하려면 아직도 많은 관심과 실천이 필요합니다. 저 역시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언제까지나 유가족들의 편에 서겠습니다.

 

* 단식자 진료에 도움을 주신 김경일, 김미경, 김정은, 백재중, 조계성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보라  lushbo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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