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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는 반핵> 히다 슌타로의 반핵 인생

공동 저자 오오쿠보 켄이치의 서문 건강미디어l승인2015.04.16l수정2018.09.2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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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는 반핵> 서문

오오쿠보 켄이치(大久保 賢一)

피폭의사 히다슌타로(肥田舜太郞)씨는 2011년 3월11일 이후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핵시대]라 할 수 있는 지금,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좋은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들은 현재 ‘평화적 이용’으로 얘기되는 원자력발전소가 한번사고가 발생하면 우리들의 현재와 미래에 가늠할 수 없는 악영향을 파급한다는 점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악영향은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종식될 기미가 없다.

우리들은 이번의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원자력발전은 “안전하고, 깨끗하며, 싼 비용으로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는 캐치플레이즈가 허위라는 점을 배우고 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우라늄광산의 채굴로부터 핵연료의 사용에서 폐기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중대한 위험을 수반하는 공정인 가에 대한 지적이나, 원자력발전소가 지진이나 해일에 얼마나 취약한지에 대한 경고에도 충분히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들은 지금 핵에너지에 대해 어떤 대응을 해야 할 것인지 스스로 대답을 마련해야만 하는 입장에 있다. 대답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이유는 정부나 전력회사나 일부 ‘전문가’들에게 맡겨버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바보 같은 짓인가를 우리가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들이 스스로 답변을 찾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지난 세월 많은 원폭피해자를 임상의로서 진찰해 온 의사의 경험을 근거로 했기 때문이다.

물론 원폭피해와 원전피해를 동일한 내용으로 논의하는 것은 원폭피해의 실상을 과소평가할 수 있어서 부적절하다. 그러나 방사선피해라는 면에서는 공통적이다. 이것은 비키니 환초 등에서 핵실험피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원전사고의 최대 특징은 방사선피해를 수반한다는 점에 있다. 우리들은 방사능에 불안이나 공포를 느끼고 있다. 불안이나 공포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불안이나 공포감은 원폭투하나 핵실험 등으로 인한 방사선피해로부터 파생되었다.

이런 불안이나 공포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문제가 우리들의 과제이다.

히다선생은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 원폭투하를 직접 체험하였다. 당시 히다선생은 28세의 육군군의관으로서 히로시마 육군병원에 근무하고 있었으며, 원폭투하 당일, 우연히 새벽부터 히로시마 시 외곽에 있는 ‘헤사카(戶坂)’라는 마을에 출장 진료를 가서 그곳에서 아침을 맞이했던 것이다.

히다선생은 당일 원폭의 섬광이나 폭풍을 몸으로 체험하진 않았으나, 피폭직후의 피폭자, 예를들면 전신화상으로 손을 쓸 수 없는 환자의 치료도 경험하였다. 이런 환자를 치료할 때 히다선생 자신도 빈혈증상이 밀려와 구사일생하는 경험도 하였다. 젊은 군인이나 간호사들로부터 수혈을 받아 살아났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히다선생은 ‘피폭의사’인 것이다.

그 후 수십 년간, 몇 천 명에 달하는 원폭피해자를 임상의로서 진료해왔다. 원폭투하직후부터 피폭자의 진찰이나 치료에 종사했던 의사는 이미 누구도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히다선생은 ‘살아있는 증인’인 것이다. 피폭의사로서 경험은 [원폭증 인정집단소송]의 법정(오사카지방법원 등)에서 증인으로 진술하여 피폭자원고의 승소판결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히다선생은 96세인 지금도 전국각지에서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 방사선피해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강연을 하고 있다.

히다선생의 문제의식 기저에 있는 것은 방사선 내부피폭의 위험성에 대한 것이다. 문제의식의 맹아는 원폭투하 후에 남편을 찾아 시내로 들어왔던 여성이 남편보다 먼저 혀가 괴사하는 증상을 보이면서 사망했던 광경에 있다.

“선생님, 저는 폭탄 터질 때는 있지 않았어요”라는 환자가, 점차 탈모, 설사, 자줏빛 반점 등의 증상을 보이면서 사망해 갔다. 전신화상이나 외상 등으로 사망하는 것이 아니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환자들이 그때까지의 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으로 사망하는 현실에 직면한 히다선생의 곤혹스러움은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원폭피해자의 죽음에는 핵폭탄에 의한 치명적인 열선이나 열폭풍만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의문을 밝히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1975년 히다선생은 미국에서 스턴글라스 박사와 만난다. 박사는 히다선생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미국의 핵실험에 동원된 사람들 중에 히다선생이 경험한 증상이 나타났던 사례를 알려준 것이다.

이때가 히다선생이 저선량(低線量) 피폭이라는 말에 처음으로 접하게 된 계기였다. 직접피폭은 아니지만, 저선량의 방사선을 외부 혹은 내부에 피폭하여 방사능피해가 발생한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원거리 피폭” 이나 “입시피폭(入市被爆)” 혹은 “구호피폭(救護被爆)”등도 설명할 수 있다. 이리하여 히다선생은 저선량 피폭, 특히 내부피폭의 두려움을 자각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이러한 피폭형태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미국정부도 일본정부도 인정하지 않았다. 원폭피해를 축소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축소 의도는 원폭피해만이 아니라, 원전피해에 대해서도 공통된다. 핵분열에너지가 무기이건, 혹은 거대한 “끓는 물 장치”이건 인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은폐하고 싶어 하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이들의 지배력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히다선생의 문제의식이나 행동은 피폭자를 위한 의료활동 만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피폭자에게 중대한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피해를 초래하고 있는 핵무기 실험이나 핵전쟁 준비 등에 반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면적인 폐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더 나아가 핵무기에 의존하고 있는 세력의 지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요구해왔던 것이다.

동기는 단순히 “정치적 의혹”때문이 아니다.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고 잔혹한 형태로 빼앗아가는 핵무기에 대한 분노이다. 이것을 인도적 분노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히다선생의 인도주의에 뿌리내린 분노가 도덕적 ․ 윤리적인 감성이라면, 각 사람이 개인으로 존중받는 것을 권리라고 하는 것은 헌법이나 법의 분야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헌법은 국가의 행동을, 법은 국가나 기업이나 개인의 행동을 규제하는 힘을 갖고 있다

히다선생은 핵무기문제를 인도적과제로 한정하지 않고, 인권문제로서 자리 잡아야 할 필요가 있음을 스스로의 행동 속에서 실감하고, 확신해 왔던 것이다.

이처럼 핵문제를 인도주의나 인권과 관련하여 보편적으로 사고하는 히다선생에게 피폭자문제를 생각하는 관점은 원폭피해자만이 아니라, 후쿠시마의 피폭자에 대해서도 공통된 것이다. 자신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는 원인으로 방사선피해를 당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원폭에 의한 것인가, 원전에 의한 것인가를 불문하고, 방사선 피폭으로 건강장해를 걱정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방사능이 무섭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방사능피해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서 패닉에 빠져버리는 사람들이 있어도 이들을 질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불행한 점은 이러한 불안을 해소할 지혜나 경험이 누구에게도 없는 것에 있다. 그러나 건강하게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에게 거의 본능에 해당된다. 이러한 기본적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진실로 문제인 것이다.

히다선생의 대답은 단순하다. 즉 이미 피폭한 상태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피폭이 발생한 경우, 피폭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자신이나 자신의 자식만을 도울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피폭이 발생해서 모든 사람이 즉시 죽는 것은 아니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기초체력, 면역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해뜰 때 일어나고, 해질 때 쉬어야 한다. 음식물을 꼭꼭 씹어먹어야 한다. 담배는 끊어야 한다. 술은 많이 마시지 않아야 한다. 섹스도 지나치면 좋지 않다. 업무도 무리 하지 않는다. 등등이다. 히다선생은 인간을 자연속의 생명체로서 생각하고 있다.

히다선생의 의견에 대해서는 물론 비판이나 반대의견도 있다. 원래 피폭을 전제로 주장하는 것이 이상하다던가, 면역력만이 아니라 현대 의학의 진보에도 눈을 돌려야 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여하튼 경청해야할 의견일 것이다. 미증유의 대사건의 와중에 “하늘의 소리”라거나 “신의 계시”등은 오히려 해가 될지도 모르며, 신중한 과학적 검토가 불가결하다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 요구되고 있는 것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 아닐까? 엄청난 사태가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닥쳤을 때 누군가 위대한 사람에게 맡겨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확신이 있다면 살아갈 수 있는 희망으로 연결되지 않겠는가?

히다선생의 이야기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28세에 피폭을 경험한 의사가 의사로서의 개인적 경험을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행복을 위협하는 정체를 끝까지 확인하려는 노력과, 정치적 사회적 운동의 필요성을 자각하여 행동하고, 96세인 지금도 직접 사람들 속에서 활동하는 것에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삶의 자세 자체가 히다선생이 이야기하는 “유일한 사람,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이 인권의 의미”라는 점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거대한 공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확실히 전력회사를 필두로, 거대자본이 안전성을 무시하고 이윤추구를 해 온 결과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일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를 국가안전보장의 핵심으로 생각하는 세력이 원자력의 “평화이용”을 추진해 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핵에너지는 이윤추구만이 아니라, “힘에 의한 지배”도구로서도 이용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원전사고는 자본의 무책임하고 횡포에 가까운 이윤추구의 결과로서 발생한 공해와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들은 핵무기가 존재하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두려움뿐만 아니라, 세계각지에서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는 “핵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미증유의 원전사고가 발생한 2011년 3월11일 이후 “새로운 핵시대”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핵에너지와 인류는 공존할 수 있는 가”라는 인류의 미래가 걸린 큰 과제에 주체적으로 참여해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이미 핵무기는 국제사회에서 위법한 존재로 취급되어, “핵무기금지조약”제정 요구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원전으로부터 탈출을 국가정책으로 삼고 있는 나라도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일본정부는 핵무기와 원전에 더 의존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사회는 과연 이런 상태로 좋은 것인가?

독자여러분들에게는 히로시마 ․ 나가사키의 원폭피해자와 함께 핵무기 폐지를 지향하고, 지금도 여전히 후쿠시마의 피폭자를 돌보고, 생명의 불꽃을 계속해서 피워나가고 있는 초고령“피폭의사”의 말을 음미하면서, 스스로 생명의 존엄성과 인류의 미래를 함께 생각해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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