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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료사업의 경험 (4)

인의협 대우재단 삼도의료사업 박태훈l승인2015.03.23l수정2015.04.0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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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차보건의료의 원칙과 응급의료체계

 

  학창시절에 ‘알마아타 선언’을 읽었고, 필리핀의 “탄 박사”의 활약, 중국 맨발의 의사의 활약상도 접할 수가 있었다. 학창시절에는 일차보건 사업이 민중의 건강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개혁을 동시에 이끌어 낼 수 있는 적합한 의료운동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의료를 매개로한 지역 공동체의 건설이 가능하며(medical oriented community organization),  이를 토대로 민주화의 지역적 기틀을 마련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이바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의사는 의료인임과 동시에 조직가이고 사회운동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기틀로 하여, 광주에서 사회운동을 하고 있었던 외과의사로부터 자연의학과 외과적 기본적인 술기를 좀 더 배우고, 1988년 광주 서구의 빈민촌에서 아주 작은 의원을 개설하여, 지역의료운동을 시작했었다.

  필자가 정리한 현장의 일차보건의료의사의 실천 원칙은, 많은 나라의 일차보건사업의 원칙에서 빌려왔고, 인의협 섬의료사업에도 가능하면 적용하고 싶었던 원칙이었기도 하다.

 

첫째, 지역 마을에 들어가 주민과 함께 산다. 함께 삶을 통해 구체적인 문제를 바라보고 주민의 진정한 신뢰가 형성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둘째, 지역의 구성원 모두 존중하지만, 특히 지역의 힘없고 소외 받고 가난한 계층을 만나고, 여기로부터 사회(의료) 개혁의 힘을 부여한다.

셋째, 지역의 발전과 개혁의 방향은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넷째, 지역의료를 통한 민주적 발전 과정에 의한 지역주민 공동체의 형성을 추구한다. 이 지역 공동체는 올바른 사회개혁을 지향한다.

다섯째, 지역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어 모임을 만들고 병의원 운영에 참여하게 하고, 지역의 조건에 기인하는 지역주민의 일차의료 요구를 찾아내고, 이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여섯째, 지역주민 모두에게 포괄적이고 평등한 원칙으로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일곱째, 의료사업의 경험과 모델화를 통해, 지자체와 국가의 지원을 이끌어내고, 국가의  발전적인 보건정책을 이끌어낸다.

 

▲ 섬의료세미나 표지그림

  일차보건의료의 입장에서 섬의료사업의 목적은 섬과 오지라는 국가의 보건의료 사각지대의 올바른 보건의료체계의 구축이 될 것이다. 대우재단이 시작했던 낙도의료사업이 어려움에 처한 이유는 섬지역의 보건의료의 요구를 올바르게 충족시키지 못했고, 또한 일차보건사업에 있어서 주민의 참여의 중요성과 주체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일차보건사업은 돈이 어느 정도 들어가는 사업이지만 돈을 들이 붓는다고 성공하는 사업은 절대 아니다. (섬에서의 공공의료 또한 일차보건의료의 원칙에 입각해야 효율적이고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섬의료사업의 성과를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사람이다. 의사가 들어가서 지역주민과 부대끼며 살며, 지역주민이 요청하는 올바른 의료 내용을 제공하는 일이다. 의사의 순수한 열정과 양질의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실력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지역주민의 참여와 협력이다. 그리고 외적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 섬의료세미나 자료집에서

  신안대우의원의 이충열 선생님과  부인 장용선 두분 선생님은 주민 건강에 대한 열정과 헌신성, 실력 그리고 리더쉽을 모두 갖춘 준비된 인물이었다.  신안대우병원이 급속도로 적자를 만회하게 된 것은, 빠른 시간 안에 지역주민의 협조를 이끌어 냈고, 일부 지역주민의 냉대와 방해를 올바른 리더쉽을 통해 극복하고, 자원으로 이끌어 냈으며, 일차의료에 적합하고 다양한 술기를 갖추고, 지역주민의 건강을 위해 헌신했었기 때문이었다.

  섬의 특성상 일차보건의료와 함께 응급치료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필자가 의료사업 협의를 위해 신안 비금도에 갔을 때, 갑자기 새벽에 예정하지 못했던 임산부가 아이를 난산을 통해 어렵게 분만을 했지만, 이완성 자궁출혈로 자궁수축제를 맞아도 자궁 출혈이 멎지 않은 응급상태를 맞게 되었다. 바로 119에 헬기요청을 하고, 수액 두 개를 풀드롭핑(full dropping) 하면서 헬기를 기다려 목포 성골롬반 병원으로 이송을 하게 되었다. 필자가 이송을 담당했는데, 주기적 혈압 체크를 하면서 헬기가 빨리 병원으로 이송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헬기를 기다리고 병원까지 이송하는 시간이 아마 3시간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산모는 헬기 안에서 혈압이 한때 80이하로 떨어지고 의식이 희미해지기도 하였으나, 골롬반 산부인과 의사의 응급조치로 생명을 구할 수가 있었다.

  이충열 선생님은 낙도에서의 필수 응급치료 항목에 대한 대처 방안 및 응급후송 방안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는데, 우리 현실에서는 헬기 후송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악천후에는 헬기조차도 뜨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에 처하게 된다. 전남이 가장 많은 섬들을 가지고 있지만, 응급구조 헬기 한 대로 운영하고 있고, 119대원들은 헬기를 자신의 목숨보다도 아끼고 있음을 알았다.

  필자도 진도 조도에 있을 때, 충수염 천공이 의심되는 20대 여자 환자가 방문하여 진단을 내렸지만, 폭풍주의보로 어떤 배도 띄울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 119에 연락하였지만 헬기도 심한 바람에 뜨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 119기장의 용기로 조도에 헬기가 왔다. 같이 헬기를 타고 후송을 하는 과정에서, 헬기가 산언덕을 넘어갈 때 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자신들도 악천후 시 후송을 하는 경우는 목숨을 걸고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목숨보다도 전남에 하나밖에 없는 119헬기가 더 걱정이 된다는 얘기다. 고맙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였지만, 이는 국가의 낙도지역의 국민 건강에 심각한 허점을 드러내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낙도지역의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였고, 이충열 선생님은 응급구조헬기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호소하여, 헬기지원의 약속을 얻어내기도 했다.

▲ 조도 면민들과 함께

  섬의료사업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가장 어려운 분야가 바로 응급의료 문제이다. 섬의 유일한 의료기관으로서, 크고 작은 응급환자가 매일 발생한다. 지역주민의 생명을 직접 담당하는 의료분야이다.

  응급의료의 가장 큰 문제는 응급 후송 수단의 문제로, 섬은 일년중 1/6(연간60일정도) 정도는 악천후로 뱃길이 끊긴다는 문제이다. 뱃길이 끊길 때 헬기 후송을 의뢰해야 하지만 헬기 또한 악천후에 취약한 운송수단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점은 후송시간의 문제이다. 도서지역의 평균 응급후송 시간은 3시간 이상 걸린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의경우는 증상 발현 후 2~3시간이 골든타임이다. 과다출혈, 심폐기능 저하의 경우 1~2시간 안에 후송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후송중 환자가 사망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섬에서 악천후의 경우 아무런 운송수단이 없게 되는 참담한 상황에 처한다. 이럴 때는 완전히 단절된 섬의 경우는 환자가 간단한 충수염 천공으로 돌아가시게 되는 경우도 있다. 목숨을 걸고 악천후에 섬에 있는 사선을 띄우기도 한다. 사선을 빌리는 비용은 말할 것도 없다. 평소의 수배의 비용이 든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점은 선주나 환자 보호자 의료인 모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아직도 대부분의 섬은 헬기 전용 이착륙장이 없다는 사실은 헬기 후송의 취약점을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이는 김창엽 선생님의 섬의료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 결과로, 섬의 지리적 분류(근접, 군집, 고립형 섬 등)에 따른  권역별 응급의료후송체계 등을 정부에 제시하였으나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신안 비금도나, 완도 노화도 정도의 규모가 있는 섬은, 어느 정도의 응급치료와 진단이 가능한 공공병원의 배치가 필요하며, 전천후 군용헬기의 배치나 119에 대한 국가지원 등 응급후송체계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섬의료의 경험으로 볼 때, 노화도와 비금도처럼 인근 섬지역 주민이 6-7천명이 넘는 경우는 응급환자를 위해...

  첫째, 각종 사고로 인한 응급지혈 및 응급을 요하는 심혈관 질환에 대한 치료를 위한 응급 시설이 필요하다. 제세동기(DF)는 물론이고, 수혈이나 대체혈액에 대한 대책이나 준비가 필요하다. 물론 응급후송체계가 매우 정교하고 확실하게 정비된다면 시설과 인력의 문제는 다소 조정될 수는 있다고 본다. 

둘째, 충수염 및 제왕절개수술을 위한 전문 외과 시설과 인력이 필요하다.  

셋째, 올바른 진단을 위한 응급진단 장비 중, CT장비(특히 뇌단층촬영), 초음파, 내시경, 심혈관질환 모니터링 세트 및 응급진단키트 등이 필요했다.

넷째, 이러한 시설을 민간이 운영하는 것은 적자를 감당하기 힘들다. 다양한 섬주민의 의료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응급실과 병실을 운영하는 것도 적자 요인인데다가 위와 같은 시설과 인력은 민간이 운영하기 힘들 것으로 판단했다. 공공의료의 확충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다섯째, 만약 민간이 이러한 공익적 의료기관을 운영할 경우는, 정부의 협력과 지원이 필수라는 점을 절감하였다.

여섯째, 필자가 관할했던 진도 조도의 경우는 상하조도 합하여 인구 2500여명에 관매도 등 인근 섬을 합하면 3200여명이 된다. 이 경우에도 간단한 충수염 수술을 할 수 있는 외과 인력과 심혈관 질환 진단 및 응급 항혈전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인구가 적은 도서지방의 응급치료는 응급후송체계의 확충을 통해 해결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단 악천후의 후송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바람을 이겨내고 악천후시 안전하게 이착륙할 수 있는 레이더 장비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군용 첨단 전천후 헬기 등의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일곱째, 섬이라는 고립되고 특수한 환경은 질병 예방이나 치료 그리고 응급질환 문제에 있어서도 일차보건사업의 원칙이 매우 필요한 곳이다. 지역자원의 적절한 활용, 응급질환에 대한 교육, 섬에서 흔히 당할 수 있는 농기구에 의한 자상, 독뱀에 의한 교상, 위생 관념 등 단순한 위생교육과 응급치료에 대한 교육을 통해 많은 생명을 구할 수가 있다는 점이다.

 

  섬의료사업의 입장에서는, 심근경색, 뇌졸중 등 응급환자를 좀 더 전문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진단장비의 도입과 좀 더 전문적인 학습이 절실했고, 긴급한 응급진료키트를 완비하는 것이 필요했다. 의료기술적인 연구와 준비 작업은 이충열 선생님이 많은 수고를 하였고, 섬의 응급의료체계에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지만, 재정자립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한계로 인해 의료기기 구입비는 한정이 되어 있어, 이충열 선생님이 요청했던 기기들에 대해 충분히 지원하지 못했던 점이 너무 아쉽다.

  필자도 진도 조도에서 응급의료체계의 미비와, 여러 가지 사유로 악천후 후송의 실패로 아까운 환자의 생명을 잃은 경험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것이 의사로서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외로웠던 경우이다. 한사람의 환자가 육지의 큰 병의원에 가기 전에, 작은 의사의 품에서 숨을 거두어야 할 때가 가장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악천후로 고립된 섬에서 환자의 생명과 응급 진료 상황 사이에서 의사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데, 어려운 문제의 하나가 진단 장비의 미비로 정확한 진단이 힘들다는 점이며, 의사의 교과서적이고 순수한 결정을 막는 또 하나의 요인은 바로 주민의 가난의 문제이며, 가장 혼란스럽게 만드는 문제이며, 두가지 문제가 항상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아 참으로 어려운 문제였다.

   의사는 어떤 경우라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지만, 환자보호자의 완강하고 고집스러운 반대에 놓일 때가 있다. 또한 구급 헬기조차도 올 수 없을 때, 때로는 사선을 빌려 악천후에서 환자나 의사 보호자 선장 모두 목숨을 걸고 출항해야 하지만 이런 경우 환자 보호자의 반대를 이길 방법이 없었고, 추후에 인터뷰나 조사를 통해 알고 보면 그 이면에는 가난의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가난의 문제로 응급 의료건 어떤 치료방법이건 받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은 비극이다. 섬의 경험은 전국민 무상진료의 필요성과, 섬 오지의 응급의료 후송체계 확충, 그리고 섬 오지에는 적절한 기능과 규모의 공공의료기관의 설치가 필수적인 것임을 깊이 깨닫게 하였다.

 

박태훈  saenalpa@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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